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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왜 교통 혼잡을 무릅쓰고 광화문을 파헤치고 있는가?

'전시행정'에 지쳤다는 주민들의 원성이 있다

  • 박세회
  • 입력 2019.11.12 16:00
  • 수정 2019.11.12 16:23
광화문 삼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문화재 시굴조사 현장의 가림막. 11월 12일.
광화문 삼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문화재 시굴조사 현장의 가림막. 11월 12일. ⓒ박세회/허프포스트코리아

2019년 광화문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보수 단체들의 연이은 시위로 주말이면 교통 체증이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광화문광장 앞에서 땅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복궁 서쪽의 통의동 진입로부터 광화문 동쪽의 삼청동 진입로까지 여기를 팠다 덮고 또 저기를 팠다 또 덮었다. 2주 전께부터는 광화문 삼거리에서 안국역으로 좌회전하는 구간의 도로 한복판을 파고 현수막을 둘렀다. 이 도로의 양방향 1차선을 막았다. 광화문 앞에서 시청 방향으로 좌회전하는 차선과 경복궁 사거리에서 동십자각 쪽으로 좌회전하는 차량들이 하나로 줄어든 차선 탓에 혼잡하다. 

대체 왜 누가 그렇지 않아도 혼잡한 이 도로를 파헤치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서울시가 추진 중인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준비 단계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청사진 자체가 반대에 떠밀려 흔들리는 사이 사업 부지에 문화재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시굴 조사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광화문광장 일대는 법이 정한 매장문화재 보존지역(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이다. 쉽게 얘기하면 ‘땅을 파면 문화재가 나올 수 있으니 뭔가를 짓기 전에 시굴정밀 조사를 통해 문화재가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땅’이라는 뜻이다. 문화재 유존지역에서 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지표조사, 시굴조사, 정밀조사를 거쳐 사업 계획 안에 포함된 부지에 문화재가 없거나 문화재를 안전하게 이동 보전했다는 문화재청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서울시는 내년 착공을 목표로 올해 3월부터 (재)한울문화재연구원, (재)수도문물연구원 두 개 원에 시굴조사를 의뢰해 문화재위원회에서 정한 시굴 조사를 실시했다. 

시굴조사는 보통 전체 사업면적의 10% 내외로 정한다. 아래 지도를 보면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올 한해 동안 시굴 작업이 시행된 현장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안국역 쪽으로 이어지는 율곡로와 경복궁역 사직로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그리고 시청쪽을 향하는 세종대로 곳곳이 파헤쳐졌다.  

광화문 광장 문화재 시굴 조사 현황. 빨간색 작은 네모가 시굴 트렌치.
광화문 광장 문화재 시굴 조사 현황. 빨간색 작은 네모가 시굴 트렌치. ⓒ서울시 제공

당초에는 서울시가 제출한 최초 사업계획에 근거해 10% 정도인 128개소를 예정했으나 매장분과소위원회와 면적을 조정해 103개로 줄였다. 103개소 중 행정안전부 부지에 포함된 영역 및 혼잡 등의 이유로 시굴이 힘들다고 판단되는 32개소의 시굴을 보류했다. 올 한해 71개소를 팠고 66개소는 다시 덮었으며, 5개소 시굴 트렌치(구덩이)가 현재 학술 자문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파 놓은 시굴지에 직접 가서 정밀발굴이 필요한지를 살피는 과정이다.

사실상 시굴 조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사업계획은 크게 변경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 발표 이후 행정안전부는 행정안전부의 부지 일부가 포함된 사실에 대해 ”합의된 바가 없다”, ”수용이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 앞 서편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사옥 부지 일부가 사업 면적에 포함되어 있다.

서울시 ‘광장 재구조화’의 골자는 ‘보행 중심’이다. 지난 2017년 40여 명의 전문가로 이뤄진 ‘광화문 포럼’은 율곡로와 세종로를 전면 지하화하고 현재의 광화문광장과 인근 5차선 도로 전부를 전면 보행 공간으로 바꾸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계획이 구체화 되어 이후 서울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양측에 상하행선 5차로를 상행(광화문 방향) 2차로 하행(용산 방향) 3차로로 미국 대사관과 교보문고 측에 붙이고 나머지 공간을 전면 보행 공간으로 하는 안을 내놨다. 사실상 경복궁 양옆에 있는 사직동, 삼청동, 가회동, 원서동 일대를 교통혼잡으로 고립시키는 안이다.

서울시가 제공한 광화문 광장 조감도.
서울시가 제공한 광화문 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1일 박원순 시장이 삼청동 및 사직동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민 A씨는 ”집회·시위로 장사가 되질 않아 삼청동에 있는 상점 50%는 빠져나갔다”며 ”광화문광장이 원인인데, 이걸 확장까지 한다고 하니 삼청동 사람들은 다 죽으라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광화문광장을 거쳐 종로로 출퇴근을 하는 종로구 주민 B씨는 허프포스트에 ”광화문광장을 만들겠다는 건 오세훈 시장의 전시행정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일”이라며 ”지금 휴일마다 광화문 세종대로를 막는 ‘차 없는 거리’ 행사 역시 오세훈 시장이 광화문광장에 이벤트로 세웠던 스키 점프대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4월 7일을 시작으로 혹서기 7, 8월을 제외하고 10월 말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이 지역의 교통을 통제했다. 이 기간에 서울 시민들은 토요일에는 시위로 일요일에는 차 없는 거리로 율곡로와 종로를 잇는 한 가운데 있는 가장 넓은 남북 통행로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시굴 조사 이후의 사업 전개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시굴 조사 이후 문화재위원회에서 광화문광장 지층 아래 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정밀 발굴이 필요하다”고 결정한다면 시는 정밀 발굴을 시행하거나, 사업을 접어야 한다. 시굴 조사 이후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사업을 곧바로 시행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지금으로써는 제대로 합의된 사업 계획안이 없다.

만약 정밀 발굴로 들어가면 그 영역은 시굴 조사보다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밀 조사에 들어가면 1~2년 안에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만약 시굴 조사와 정밀 조사 이후 사업 시행에까지는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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