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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0일 17시 01분 KST

2030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몰리고 있다

응시자 10명 중 4명은 2~30대

10월 말 치러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서 접수자 10명 중 4명은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이었다. 하루 종일 부동산학개론, 민법, 부동산공법, 공인중개사 중개실무 등 다섯 과목을 치르는 이 시험에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탈출구가 없는 저성장 시대에 부동산 공부만이 희망이라 말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북구 ㄱ중학교 앞. 나들이 가기 좋은 10월의 아침이었지만 학교 앞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르러 온 수험생들로 북적였다. 정문 앞 문구점엔 컴퓨터용 사인펜이 일찌감치 동났다. 9시가 되자 시험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린 정문 사이로 분주한 발걸음이 스쳐 지나갔다. 교실에선 20대 청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60대까지 진지한 표정의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렸다. 1년에 한 번 있는 이 순간을 위해 이들은 가져온 수험서에 다시 한 번 밑줄을 그었다.

 

 

서비스업 직종에서 일한 지 3년인 직장인 강민아(가명·27)씨는 지난 6개월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해왔다. 회사일이 바쁘지만 퇴근 뒤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틈틈이 공부했다. 강씨는 “전공이 법학인데 비교적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법 관련 자격증을 따 커리어를 잘 쌓고 싶다”며 “지금 직장도 안정적이지만 자격증을 갖고 아예 부동산 관련 업종으로 전직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싸 온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점심시간에도 보던 문제집을 반복해 읽었다. 옆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른 직장인 민지훈(가명·38)씨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시험을 보러 왔다. 병원 부동산 투자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업무가 부동산과 관련돼 있다 보니 정식 자격증이 있으면 회사에서 인정받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어 도전 중”이라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 공부가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하는 직장인 김이나(가명·36)씨는 최근 서울에서 아파트를 샀다. 직장 생활 12년을 맞은 그는 “처음엔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시점에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며 “월급만으론 노후가 보장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부동산학을 포함한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고 그 여세를 몰아 최근 집도 매입했다”고 말했다. 현금 2억원이 있었던 김씨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은 뒤 엄마에게 돈을 빌리고 매달 생활비를 드리는 ‘엄마 찬스’, 주택담보대출 등을 동원해 서울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 중 한 곳에 6억원대 아파트를 얻었다. 앞으로 20년간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써야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 김씨는 “언제까지 월세, 전세를 전전하며 무주택자로 살 수 없고 어차피 서울에서 평생 살 생각이면 서울 집값은 매년 오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매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시험 접수자 10명 중 4명은 2030

‘중년의 고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40대와 50대가 노후 일자리로 도전한다고 여겨졌던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에 2030이 몰리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관련 업종에 돈과 사람이 쏠리는 것이다. 20대와 30대는 당장 중개업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커리어 개발, 재테크 등을 위해 자격증 도전에 뛰어든다. 수험생 카페에는 2030들의 합격 후기와 시험 도전을 위한 진지한 상담글이 올라오고, 유튜브에는 ‘군대에서 6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딴 이야기’ 등 관련 영상물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중개고시’(공인중개사 고시의 줄임말)라는 말까지 생겼다.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 중 2030 비율

 

20대와 30대는 동영상 강의로 집에서 공부하거나 퇴근 후 학원을 가기도 한다. 공인중개사 시험 대비 학원인 ‘에듀윌’의 한영규 교수는 “취업난으로 젊은이들이 국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몰리는데, 이 시험은 누구나 응시가 가능하고 절대평가라 공무원 시험 같은 상대평가보다 합격하기 쉽다는 생각에 도전하는 것 같다”며 “부동산중개업은 20~30대가 적은 비용으로 창업할 수 있고 실패 부담이 적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1년에 한번 가을에 치러지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은 부동산학 개론과 민법 및 민사특별법 일부, 공인중개사 중개실무, 부동산 공법 등의 다섯 과목을 오지선다 객관식으로 치른다. 과목당 100점 만점 중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한다. 최근 3년 사이 합격률(2016~2018년 2차 시험 기준)은 21~31%였다.

시험 접수자 10명 중 4명 이상이 20대와 30대다. 20~30대 접수자는 2013년 4만2780명에서 2018년 8만1722명으로 5년 만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최종 합격자 중 비중도 2016년 34.1%, 2017년 34.5%, 2018년 37.8%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젊은층 사이에서 불고 있는 공인중개사 시험 열기의 주요 원인을 취업 스펙 쌓기, 재테크 경험 확대, 플랫폼 환경 다변화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요즘은 주택마련 등 재테크를 공부하는 차원에서 공인중개사 시험 같은 부동산 공부를 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 같다”며 “경매, 오피스텔 등 투자 상품도 많아진 편이고, 부동산 중개시장 플랫폼도 다양해져 젊은이들이 새롭게 뛰어들기 좋은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유튜브 부동산 채널도 다양하고 정보기술(IT)을 활성화한 거래정보망 등이 많다”는 장점도 생겼다.

 

여전히 깨지지 않는 ‘부동산 경험칙’

최근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 시세가 상승하면서 젊은이들은 일해서 버는 임금만으로는 오르는 집값을 따라잡기 힘든 현실에 직면했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보유만 하면 시장 가치가 상승하니, 저성장 시대에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근로소득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4년 전 서울의 한 개발구역에 오피스텔을 매입한 김지환(가명·30)씨는 보유한 오피스텔 시세가 1억여원 올랐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은행에 넣었던 적금을 모두 깨 종잣돈을 마련하고 각종 대출과 부모님 지원으로 결정한 매입이었다. 현재 부모 집에 사는 김씨는 오피스텔에서 월세 90만원을 받고 있다. 김씨는 “받는 월세만큼 원리금을 갚고 있어 당장 순수익이 크진 않지만, 낮은 은행 예금 금리를 보면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며 “그사이 주식시장도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일 인터넷 카페나 유튜브 부동산 채널 등을 모니터링하는 김씨는 앞으로 오피스텔을 팔아 차익을 남기고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했다.

서점가에는 근로소득만 성실히 모아서는 미래가 불안하니 부동산을 공부해야 한다는 지침서가 유행이다. <흔한 직장인, 마이너스 통장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투자>(투자캐스터), <부장님 몰래 하는 직장인 경매의 기술>(조장현), <10년 동안 적금밖에 모르던 39세 김 과장은 어떻게 1년 만에 부동산 천재가 됐을까?>(김재수) 등이 그 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내집을 마련했고 그렇게 장만한 집을 통해 자산을 형성했던 기성세대의 경험칙이 ‘끝나지 않는 부동산 신화’로 젊은층에게 전해내려오기도 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우리 과에 지원하는 학부생, 대학원생 면접에서 부동산학에 관심 갖게 된 계기를 물으면 부모님 권유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부동산에 투자해 성공한 부모가 자녀들에게 부동산학 공부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칙이 대물림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부동산 공부가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누군가가 열심히 일한 소득을 다시 취한 불로소득”이라며 “젊은이들이 부동산 공부에 몰리는 상황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분야 진로가 막혀 있다 보니 부동산 분야에 관심이 커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 공부와 투자 역시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해 안정적 소득이 있는 이른바 ‘총알’(자금)을 장착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다. 취업 후 7년간 성실히 일했지만 적은 월급 탓에 저축할 여력이 없었던 박지원(가명·33)씨는 줄곧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지냈지만 전세나 월세를 벗어나는 꿈은 꾸지 못한다. 최근 거리에서 받은 소형 아파트 홍보 전단지에 눈길이 갔지만 큰 대출이나 부모 도움을 받아야만 고려할 수 있는 액수였다. 박씨는 “불안한 마음에 올해부터 저축을 50만원 늘렸지만 오르는 집값을 따라잡기는 어림없다”며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지만 때로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씁쓸해했다.

 

중개사 10만명 시대에 살아남는 법

지난해 처음 전국의 개업 공인중개사가 10만명을 넘어섰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개업 공인중개사는 전국 10만2075명(올해 6월 기준)이다. 10년 전 7만4천여명, 20년 전 2만4천여명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대체로 영세한 규모로 파악된다. 더구나 온라인 플랫폼이 많아지고 직거래도 활발해지면서 단순 중개업만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됐다.

 

공인중개사 합격 설명회

 

최근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정보기술과 부동산업을 결합한 ‘프롭테크’(prop-tech) 산업에 젊은이들이 많이 진출한다. 중소형 빌딩 실거래가 정보 앱 ‘빌사남’(빌딩을 사랑하는 남자)을 개발한 김윤수(29) 대표는 19살 때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10년간 일하며 빌딩 중개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김 대표는 “앱을 개발하기 전에 블로그에 글을 올려 빌딩 중개를 시작했는데, 마케팅 비용을 일절 안 쓰니 오히려 신뢰를 얻었고 고객들이 먼저 찾아왔다. 부동산중개업도 적정 시세를 안내하고 서비스 품질을 높여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동산 질서를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대학생 셋이 2016년 창업한 스타트업 ‘집토스’는 집주인에게만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으로 현재 서울에 13곳의 직영점이 있다. 세입자에게 정보 비대칭성이 심한 기존의 부동산 시장 질서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대학생들이 세입자에게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는 원룸 중개 스타트업 회사를 차린 것이다. 직원이 100명 안팎인 이 회사에서는 20대와 30대 공인중개사 30여명이 일하고 있다.

이재윤(29) 집토스 대표는 “군인 시절 일병 휴가 때 집 앞 맥주 가게 사장님의 권유에 솔깃해 공인중개사 시험 교재를 사서 군에 복귀했는데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그는 군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뒤 졸업을 한 학기 남긴 2015년 7월 대학생 친구 두 명과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었다. 수요자들이 부동산 정보에 충분히 접근하도록 집토스는 세입자가 실제 살아본 집 후기를 플랫폼에 많이 올린다. 그러다보니 다른 공인중개사들한테 ‘시장을 교란한다’며 견제를 받기도 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집토스를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고 고발하기도 했지만, 검찰은 지난해 10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중개 일을 해보니 부동산 시장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문제점이 보였다. 기존 중개소의 서비스 질이 낮았고 허위매물 같은 정보 부풀리기가 심했다. 고객이 잘못된 정보에 속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원룸 중개 때 임대인에게만 중개 수수료를 받는 방식의 회사가 뒤따라 생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변해야 하며 정보도 투명화해야 한다. 업계 전반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