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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존중' 표방하는 고용노동부 전화 상담원이 받는 처우는 아이러니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는 이들이 정작 차별을 겪고 있었다

고용노동부 위탁 전화상담원들이 지난 4일 집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쓴 손편지
고용노동부 위탁 전화상담원들이 지난 4일 집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쓴 손편지 ⓒ한겨레/전국여성노동조합 제공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전화 1350을 누르면 자동응답 음성이 나온다. ‘지방관서 안내 1번, 고용·노동 분야 2번, 민원 확인 3번, 외국어 상담 4번.’ 전국 고용센터 대표번호로 전화해도 마찬가지다. 상담 전화는 울산과 광주, 경기도 안양, 충남 천안 등 전국 4곳의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전화상담원에게 연결된다. 임금 체불 등 근로기준법과 실업급여, 고용보험, 출산휴가·육아휴직급여, 청년 고용, 직업훈련, 고용허가제 등 고용·노동 관련 정책·제도를 상담해주는 이들이다. 그런데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표방하는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는 이들이 정작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

이슬기(44)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광주고객상담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고용노동부 전화상담원이다. 그는 ‘호주기’라고 불리는 1~3월이 오는 게 두렵다. 상담 전화가 폭주하는 달이다. 반나절 동안 전화 100~120통을 받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매주 월요일과 휴일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새 예산이 1월1일부터 풀리잖아요. 실업급여나 취업지원 예산이 10~11월부터 소진되기 시작하면서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던 분들의 상담이 한꺼번에 몰려요. 새해부터 새로 시행되거나 바뀌는 정책도 굉장히 많고요. 통화대기가 길어지다 보니 민원인들이 항의도 많이 해요.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멘트를 입에 달고 살죠. 이명 증세도 흔하고, 인후염이나 목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도 출근을 해야 해요.”

임금은 최저임금(시급 8350원)이다. 매일 4시간씩 일해 80여만원을 손에 쥔다. 급식비나 복지포인트 등은 받아본 적이 없다. 임금을 보충하려면 ‘성과급 경쟁’을 외면하기 어렵다. 매달 전화량, 통화 시간 등을 점수로 매겨 1등부터 꼴등까지 명단을 공개하는데, 5개 등급 가운데 최고 등급은 성과급 11만8천원이 지급된다. 최하 등급은 한 푼도 못 받는다. “일 단위 프로모션도 해요. 그날 콜을 제일 많이 받은 한 명을 뽑아서 덜 바쁜 시기에 퇴근을 10분 일찍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쌓아주는 거죠.”


노조 결성 뒤 들은 어이없는 이야기

전화상담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이지만, 고용노동부 전화상담원들은 ‘압축노동’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다. 짧은 근무시간 동안 응답률 목표치와 ‘서비스 레벨’(통화대기음이 울린 뒤 20초 이내 응답하는 비율)을 맞춰야 하는 건 물론이고, 프로모션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6월 이후 전화량이 다소 줄어들면 여기저기 아픈 동료들이 늘어난다. 성대결절과 성대폴립으로 수술을 하고 산업재해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전화상담원도 있다.

‘압축노동’에 시달리던 이씨는 지난해 초 노동조합이 결성된 뒤 “정말 어이없는 얘기”를 들었다. 전국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4곳 가운데 울산센터의 근무 조건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급여뿐 아니라 식비, 명절포인트 등의 차이가 너무 크더라고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안 돼요. 고용노동부는 아무 말이 없고요.”

직접고용(공무직)된 울산센터 전화상담원(120명)들과 달리, 광주·안양·천안센터 상담원(500여명)들은 민간위탁 노동자다. 거의 대부분 시간제(4시간)로 일한다. 고용 형태가 다르다 보니 4곳의 전화상담원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임금과 노동 조건에서 차이가 난다. 안양센터의 경우 올해 전화상담원 기본급을 7년차 이상은 동결하고, 그 이하는 경력에 상관없이 최저임금(시급 8350원)으로 지급했다.

울산센터는 경력에 따라 8678원부터 1만981원까지 차등 지급한다. 울산센터는 월 13만원의 급식비와 연 40만원의 복지포인트를 지급하지만, 다른 곳은 없다. 명절 상여금도 울산센터는 설과 추석에 40만원씩 지급하는데, 다른 곳은 2만~3만원 수준이다. 직접고용과 민간위탁의 차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위탁업체(케이티시에스)가 운영하는 천안센터에 있는 근속수당이 광주센터에는 없고, 다른 위탁업체(케이티아이에스)가 운영하는 안양센터는 휴게시간이 유급이지만 천안·광주센터는 무급이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위탁 전화상담원들이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위탁 전화상담원들이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전국여성노동조합 제공

우옥자(53)씨는 2004년 12월부터 고용노동부 전화상담원으로 일했다. 그해 4월 노동부 종합상담센터가 경기도 안양시에 문을 열었고, 우씨는 10년 가까이 ‘고용노동부 직원’으로 근무했다. 2013년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도시 이전 정책에 따라 상담센터가 울산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같이 일하던 전화상담원 50여명 중 대여섯명만 울산으로 갔고, 안양센터는 민간위탁 운영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처음 상담센터를 열 때 ‘일·가정 양립’을 한다면서 여성들을 시간제로 직접고용했거든요. 울산에 내려가기 힘든 사람들이 많았죠. 남은 사람들은 일을 그만두든지 위탁으로 가든지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 했어요.”

고용노동부는 2009년 천안센터, 2014년 광주센터를 개소했는데, 이 두 곳은 처음부터 민간업체에 위탁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민원상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콜센터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경제적인 효율성 차원에서 직접고용으로 하지 않고 위탁운영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고용노동부 공무직에서 위탁노동자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 현재는 낮은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연장근무를 신청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한다. 그는 “지난 2월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7년차 이하 전화상담원은 경력별 시급 차이(70원)마저 없어지고 최저임금이 지급됐고, 7년차 이상은 임금이 동결됐다. 게다가 위탁전화상담원이라는 이유로 식대와 명절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콜(민원전화) 처리 실적을 등수로 매겨 커피 쿠폰 한 장을 지급하는 프로모션이 복지의 전부”라며 “같은 업무를 하는데 직접고용인 울산센터와 다른 처우를 받고 있는 게 억울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받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소속된 위탁전화상담원들은 차별한다”고 말했다.

우씨는 지난해 3월 설립된 전국여성노동조합 고용노동부지부 안양고객상담센터 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4일 안양고객상담센터 지회는 하루 파업을 선언하고,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직접고용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전화상담원들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보내는 손편지를 썼다. “고용노동부는 동일노동·동일임금에 대해 우리한테는 적용해 주지 않는다.”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은 각자 알아서?

전화상담원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상담 품질’과도 맞닿아 있다. 고용노동 정책 변화에 따라 매년 상담 전화가 크게 늘고 있지만, 인력 충원 없이 ‘경쟁으로 쥐어짜는 방식’으로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2014년 678만건이던 전화 상담은 지난해 960만건으로 증가했다. 응답률은 2014년 87.3%에서 지난해 81.4%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도 전화 상담 건수(276만건)는 지난해 같은 기간(267만건)에 견줘 10만건 늘었는데, 민원인이 상담원 연결을 기다리며 대기하다가 포기한 건수가 86만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만건)보다 67% 늘었다.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누리집에 “1350 전화 인입량이 많을 경우 안내멘트 없이 종료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창이 떠 있지만, 민원인들로부터 ‘어제부터 전화했다’ ‘40분이나 기다렸다’는 항의를 받는 건 전화상담원들이다.

서명순 전국여성노조 고용노동부지부장은 4일 집회에서 “전화상담원 중 화장실에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 없다. 서로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앉아서 대기 중인 민원 처리를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민원을 맡게 되면 신속 처리하라는 메시지가 바로 오고, 예기치 못한 불만사항이 발생하면 전부 상담원들의 잘못으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민원 상담 1건의 평균 통화시간은 2~3분이다. “인사하고, 필수 안내 멘트 하고, 민원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도 1분 가까이 걸려요. 충분히 상담하려면 시간도 충분해야 하는데, 응답률과 서비스 레벨을 맞추려면 오래 통화하기 어렵죠. 정책이 바뀌면 교육을 받지만, 실제로는 상담원들이 혼자 공부를 더 해야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어요. 고용노동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내면 민원인들이 뉴스를 보고 내용을 문의해오는데, 세부사항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실제로 시행되기 전까지는 두루뭉술하게 답할 수밖에 없기도 해요.”(이슬기씨)

전국여성노조는 고용노동부에 이들의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최순임 전국여성노조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 전화상담원 업무는 상시지속적인 고용노동부의 중요 사업이고, 4개 센터 모두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 이름으로 운영되는데도 고용노동부는 위탁업체에 모두 떠넘기고 차별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전화상담원 직종을 3단계(민간위탁)로 분류했다.

그리고 지난 2월27일 ‘민간위탁 정책 추진방향’을 내놓으면서 개별 기관이 ‘자율적으로’ 민간위탁의 타당성을 검토하라고 했다. “민간위탁은 법령 근거, 자치분권, 사무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위탁 업무를 직접 수행(정규직화)하는 방안에 대해 일률적 기준 설정과 구속력 있는 지침 시달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민주노총 등은 “정부가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크게 반발했지만, 이후 공공부문 민간위탁 노동자의 직접고용 여부는 ‘기관마다 알아서’ 결정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민간위탁 사무는 총 1만99개, 수탁기관은 2만2743개, 노동자 수는 19만5736명에 이른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전화상담원 직종을 ‘심층논의사무’로 선정해 직접고용으로 전환할지를 10월 말까지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직영센터와 위탁센터의 근로조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요청하는 등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현재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 기구에서 직접고용으로 전환할지 위탁운영을 유지할지를 검토 중이고, 비정규직 티에프에 보고해 연말까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순임 전국여성노조 부위원장은 “고용노동부가 위탁 전화상담원을 직접고용하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적용해 민원인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근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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