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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9일 14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0월 29일 15시 18분 KST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92년생 여성들에게 물었다 "세상은 더 좋아진건가요?"

87년생 여성, 79년생 남성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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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소설, 그리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은 차고 넘친다. 이 이야기가 모두에게 공감을 일으켰다면, 질문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82년생 출생의 여성에게도 성차별이 있었냐고 묻는다. 또 어떤 이들은 ”나도 82년생 여성이지만,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성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데, 이건 누구의 이야기냐”고 묻는다. 같은 질문의 다른 형식으로는 ”여성의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라면 82년생이 아니라, 42년생이나 52년생 여성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냐”는 것도 있다. 이 질문들은 또 하나의 질문을 파생시킨다. 그렇다면 세상은 정말 과거보다 더 좋아진걸까?

 

세상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42년생이나 52년생의 여성보다는 72년생의 여성이, 그녀보다는 82년생의 김지영이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 살기 좋아졌다는 건, 이제는 더 이상 불합리하고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 세계가 시간과 함께 더 좋아지는 것이 당연하다면, 불합리하고 불편한 일들도 계속 사라져야 하는 것이 맞다. ’82년생 김지영’이 소설과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던진 파장은 그러한 흐름을 가속시키는 중이다. 사라져야 할 것은 빨리 사라지는 게 좋다.

 

’82년생 김지영’을 본 1979년생의 남성이 1992년의 여성들에게 묻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의 흐름이라면 82년생 김지영보다는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어야 할 그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직장동료들을 찾았다. 92년생의 동료들이 마침 있었고, 87년생의 동료도 함께 대화했다. 다행히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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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강병진(1979년생, 남성) : 1979년생 남성의 입장이지만, 나는 원작소설을 읽었을 때부터 누나와 여자친구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아주 어렸을 때는 누나가 자신이 집 밖에서 겪는 일들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는데, 둘 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종종 이야기를 했었죠. 그런데 우리 누나가 1972년생이에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나 싶었어요. 여러분들은 영화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

김태우(1992년생) : 영화를 보고나면 분노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어도, 주변에서 듣고 뉴스로 보는 게 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분노하기도 했지만, 사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라효진(1987년생) : 사실 저는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한 방울도 안흘렸어요. 내가 여성인데도, 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 많이 무뎌져 있던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김지영의 엄마 때문에 많이 울었다고 하는데, 저희 집에서는 없었던 이야기니까, 공감하는 게 조금은 어려웠어요.

 

김지영의 남편은 정말 좋은 남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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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병진 : 김지영 말고 인상적인 캐릭터가 있었다면?

효진 : 일단 공유가 연기한 남편이... 그런 남편이 현실에서는 거의 없지 않나요?

태우 : 남편이 그 정도만 되어도 아내들이 겪는 안좋은 일들이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김현유(1992년생, 기혼) : 그런데 요즘 남편들은 대부분 그 정도는 하지 않나요? 물론 저희 남편하고는 스타일이 완전 달라요.(웃음) 영화로 보면 그런 남편이 어디 있나 싶지만, 그래도 김지영은 고통을 겪잖아요. 그런 걸 보면 자상한 듯 보여도 자신이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 아내에게 진짜 공감을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태우 : 아내가 겪어온 성차별과 같은 피해를 온전히 이해한다기 보다는, 일단 아내가 아프니까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접근한 것처럼 보였어요.

병진 : 명절날 시댁에서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만약 다른 영화나 TV드라마였으면 이 남편이 얼마나 잘생기고, 자상한 사람인지 보여주었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시어머니 눈치를 보느라 난처한 김지영의 얼굴을 보여주니까요. 남편이 자상한 사람인 건 맞는데, 그래도 아내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일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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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효진 : 저는 그 장면에서 김지영이 좀 이상했어요. 결혼을 안해서 시댁 생활이 어떤 걸 잘모르지만, 그 장면에서 보면 남편이 나서준 거잖아요. 그 때문에 시어머니도 지영에게 함부로 못하는 상황이 된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지영이는 저렇게 바들바들 하나, 그렇게 보였어요.

태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시어머니가 워낙에 가부장적인데, ‘감히 우리 아들에게 설거지를 시켜?’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현유 : 아내 입장에서는 그냥 시댁에서 나혼자 ‘존버‘했다가 나중에 친정가서 푹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도 있어요. 남편이 일단 그 상황에서는 자기가 아이를 보면서 엄마 기분 맞춰주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자기가 누나가 왔을 때는 ‘얼굴 봤으니 우리 이제 간다’ 하고 나오는 게 더 센스가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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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병진: 김현유씨는 결혼을 했고, 실제 명절에 시댁에 가잖아요. 실제로는 어때요?

현유 : 저는 시어머니가 워낙 쿨한 성격이셔서 영화 속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시어머니의 태도가 너무한 거 아니야?, 요즘도 저런 시어머니가 있어?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네이트판 같은 곳을 보면 아직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나만의 기준으로 이 내용을 볼 수는 없겠구나 싶었어요.

태우: 결혼을 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직 신혼이어서 그런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은 거 같아요.

현유: 제 친구 중에서 오빠가 결혼한 친구가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우리 엄마가 그럴 줄 몰랐는데, 며느리한테 흔히 생각하는 시어머니처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한테 직접 새언니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속상해서 우시더래요. 예전 드라마 같은 걸 보면 시누이가 시어머니랑 편먹고 며느리를 괴롭히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시대가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아들과 딸이 집안에서 자라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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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효진 : 그런데 1979년생인 선배는 영화에 나오는 김지영의 남자동생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병진 : 영화를 보면 할머니가 특히 손자를 예뻐하잖아요? 나도 우리 집안에서는 장손이라서 다른 손주들 보다는 좀 우대받은 게 있기는 했어요. 한번은 할머니 생신 케이크에 올려진 과자 인형을 나와 우리 큰고모의 아들이 함께 탐을 냈는데, 할머니가 나타나서 ”이건 할머니거다!” 하고 가져가시고는 나중에 내 손에 쥐어주시고 그랬어요. 그런 걸 보면 장손을 아껴주신 거기는 한데, 사실 아들과 딸의 자식을 차별한 거기도 하죠. 할머니한테는 그랬지만, 우리 집에서는 전혀 달랐어요. 우리 누나가 공부를 너무 잘해서 부모님이 누나한테 더 많이 신경쓰셨죠.

현유 : 저희 집은 종갓집이어 가지고, 영화 속 상황이랑 비슷했어요. 할머니가 1920년대 생이셨어요. 아빠가 형제 중 막내였는데, 딸만 5명 낳고 나온 종손이세요. 완전히 예쁨받는 아들이셨는데, 그런 아들이 아들을 낳았으니 할머니가 정말 이뻐하셨죠. 제가 어릴 때 동생이랑 싸우다가 동생을 한대 때린 일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7살이었는데, 할머니한테 정말 어마어마한 욕을 들었어요. 저희 어머니도 할머니한테 욕을 들으신 적이 있어요. 남동생한테 설거지를 시켰는데, 할머니가 그걸 보셨던 거죠.

태우 : 영화에 나온 것 같은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사실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첫째딸이고, 말 잘듣는 스타일이어서 동생보다 더 우대받는 편이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저런 집안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동시에 동생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효진: 저희 집도 우리 네 가족만 있을 때는 부모님이 오히려 저한테 좀 더 많이 신경쓰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제 친가나 외갓집에 가면 달랐죠. 저에 대한 다른 대우가 그냥 대놓고 하는 거라면, ‘아이씨, 할머니 안봐!’ 이럴텐데...(웃음) 이게 정말 은근히 나오는 거라 더 짜증이 났었어요.

현유: 그런데 그런 차별이 남자한테도 힘든 경우가 있어요. 제 남동생도 성격이 부드러운 편인데,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남자가 누나한테 혼났다고 울면 안돼” 이러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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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병진 : 엄마 이야기가 나와서 물어보면, 극중에서 김지영의 엄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어요? 이 엄마와 함께 나오는 장면이 특히 많은 눈물이 나는 장면이잖아요.

현유 : 저희 세대의 엄마들 이야기는 아닌 거 같아요. 저희 엄마보다는 10살 이상 많으신 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렇게 공감이 크지는 않았어요. 대신 이 영화가 여성의 삶을 다루는 동시에 어떤 가족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었죠.

태우 : 저도 크게 공감한 건 아니에요. 영화를 보면 엄마도 평소에 김지영의 고통에 크게 신경 쓰지는 못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전화를 걸어도 일 때문에 통화를 오래 못하잖아요. 딸이 알아서 잘 살거라고 생각했을테고, 나중에 그게 아닌 걸 알았을때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효진 : 저도 김지영이랑 엄마가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요. 그때 딸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여성’ 보다는 ‘딸’이 더 큰 거 같아요. 당장 내가 낳은 내 새끼가 아프니까 그걸 슬퍼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장면이 ’82년생 김지영’이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병진: 언뜻 보면 가족관계의 장면인데, 나는 이 장면에서도 영화의 주제가 드러난다고 봤어요. 김지영이 외할머니의 목소리로 엄마에게 다시는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은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결국 엄마나 자신이나 가족 때문에 원하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거니까요.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두려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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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병진 : 원작에도 나오는 부분이지만, 영화에서 여성이 당하는 가장 직접적인 일을 보여준 장면 중 하나가 ‘남자가 같이 버스타고 쫓아오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들이 있어요?

태우 : 그게 성추행하는 장면인 거죠?

효진 : 스토킹 같은 거 아니에요?

병진 :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성추행’ 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원작을 보면 성추행은 아니에요. 남자애가 학원에서 본 김지영한테 ”너가 나한테 프린트도 웃으면서 주잖아”이러면서 말하자면 ”너가 먼저 흘려놓고 왜 치한 취급을 하냐”는 식으로 나와요. 영화 속 상황은 아니더라도, 주변의 남성들이 일종의 비즈니스적인 호의를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있었을 거 같아요.

효진 : 많이 있었죠.

태우: 그런데 그렇게 착각을 하고 고백을 해오잖아요? 그런데 받아주지 않으면 제가 ‘나쁜 년’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경우들이 있었죠.

병진 : 대학 다닐 때, 지금봐도 흥미로운 일이 있었어요. 휴학했다가 복학했는데, 같은 동아리의 남자들이 한 여자 학우를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다들 좋아서 미치는 건 아니고, 어쨌든 다들 그녀와의 뭔가 하나씩의 끈이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어딜 가든 그 친구 이야기를 하고, 그러는 거에요. 나는 이제 막 복학한 처지라, 이게 뭔가 싶었던 거지. 그래서 한번 다같이 술을 마실 때, 물어봤어요. ”니네 왜 그래? 왜 쟤한테 다들 그래?”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 후배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형, 00이가 눈으로 말을 해요.” (좌중 폭소)

이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예를 들어서 동아리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술을 마시다보면 어쩌다가 눈이 마주친다는 거에요. 그런데 눈이 마주치면 그 친구가 계속 자기를 보고 있대.(또 한 번 좌중 폭소) 그러다보면 생각하는 거죠. ”쟤가 혹시 나를 좋아하나?” 뭐, 눈으로 말을 하는 그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도 다른 때에 다른 사람에게 그런 오해를 한 적이 있었고.

효진: 뭐, 오해를 할 수는 있죠. 그런데 그게 공격적인 상황까지 오는 건 다른 문제죠.

현유 : 저는 진짜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요. 과외를 하러 학생이 사는 아파트에 가는 길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고요. 길을 물어보는 거 같아서 친절하게 대답해 드리려고 했어요. 아저씨가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네? 뭐라고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여기 이 동네 사시나봐요” 이러면서 ”저도 이 동네 사는데 차나 한잔 해요”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저는 22살이었고, 그 아저씨는 정말 아저씨였거든요.

그래서 그냥 과외하는 아파트로 가는데, 그 아저씨가 계속 따라오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뛰다가 아파트 엘레베이터를 타고난 다음에 주저앉았어요. 그날 과외하는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한테 그 이야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옷이 너무 그래서 따라온 게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날 ‘크롭티’를 입기는 했는데...

효진 : 크롭티를 입을 수도 있는 거지!

현유: 그러니까요. 영화를 보면 김지영의 아버지가 항상 단정하게 하고 다니라고 하잖아요. 단정하게 입지도 않고, 함부로 웃어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이 안좋은 날이었어요.

태우 : 우리 그 팀장님 이야기좀 하면 안돼요?

병진 : ”저한테도 맞으셔야 겠네요”라고 한 그 팀장님? 원작을 읽어본 입장에서는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한방을 날리지만, 바로 다음에는 분위기를 풀려고 하니까요. 만약 그렇게 안했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 같았어요.

태우 : 저는 처음에 “저한테도 맞으셔야 겠네요?” 하는 순간 너무 ‘사이다’였어요. 저런 여자상사가 있으면 저 상사는 피곤한 삶을 살겠지만, 나는 뭔가 보호받는 느낌을 받겠구나란 생각도 했어요.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거기에 남자 후배들이 ”멋있다!”이러는 데, 그게 뭔가 조롱처럼 느껴졌어요. 여러가지로 울분에 차서 봤던 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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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김팀장이 보여주는 아이 있는 여성의 회사생활

효진: 저는 그게 생존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열받고 그런게 아니라, 체념이라고 해야하나? ‘나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야’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그렇게 한번이라도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걸 나는 할 수 있을까, 싶었죠.

현유 : 팀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다른 것보다 제 입장이 생각났어요. 저는 결혼을 했고, 언젠가는 아이를 낳을 건데, 아이를 낳은 후에 저 팀장처럼 일할 수 있을까, 싶은 거죠.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을 해서 그나마 팀장처럼 되면 모르겠는데, 영화에 나오는 공유 옆자리의 직원처럼 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다른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결국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 좋은 직원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걱정이 한 꺼번에 밀려왔어요.

병진: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할 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이란 가정을 하게 만드는 영화죠. 일단 영화를 보면 걱정부터 할 수 밖에 없는 거고. 여러분도 같은 걱정을 했을 거 같아요.

태우: 일단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죠. 저희 어머니가 봐주고 시어머니가 봐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잖아요. 영화를 보고 두려움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아이를 가지면 일이 끊길 거라는 두려움이 큰데, 영화에서도 그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화가 나기도 했어요. 남편의 육아휴직이 물론 힘든 결정이기는 한데, 그래도 남편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김지영에게는 아무런 옵션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찾은 해결책이 무산되니까.

효진: 저는 평소에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는데,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를 왜 낳아야 하나, 무엇을 위해서 낳나, 아이가 예쁘니까 낳는다면 그건 아이를 위한 건가? 우리나라의 정서상 아이를 20살까지 책임져야한다고 봤을 때, 그만큼 사랑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현유 :  비슷한 걱정이 많아요. 어머님들이 봐주신다고 해도 어려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김지영이 희망을 찾았듯이, 그때가 되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병진 : 영화에서도 그 뭔가를 하려고 하죠. 남편이 육아휴직을 결심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요. 그런 현실에서 다들 뭔가 방법을 찾지만, 거기에도 세상의 인식과 싸워야 하는 일이 있는 거죠. 나와 같은 79년생인 한 친구는 지금 부산에서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부로 살면서 육아을 맡으며 살아요. 부부 사이에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지만, 동네 사람들이나, 남자 쪽 집안에서는 안좋은 시선이 많았다고 헤요.

 

불법촬영은 이제 체념한 공포

병진 : 원작에도 나오지만, 영화에도 직장 내 불법촬영 문제가 묘사되죠. 사실 남성인 저로서는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를 여성들이 느끼는 것만큼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평소 불법촬영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 어떤 건지 궁금해요.

태우 : 사실 저도 공공화장실 안가거든요? 공공화장실을 가면 꼭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부분이 있어요. 문을 설치하다가 생긴 구멍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워낙 갯수가 많으니까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물론 그래도 정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데, 그럴 때면 그렇게 체념하는 제 자신이 싫어져요. 사실 저도 제가 어디선가 찍혔겠지? 이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효진 : ‘이미 찍혔겠지’란 체념이 큰 거 같아요. 이미 찍혔어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병진 : 공공장소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리고 내가 몰랐다면 체념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영화 속 상황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 건물에서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한 것이고, 얼굴 맞대고 일하는 직원들이 그 영상을 돌려봤다는 설정이죠. 이 상황에서는 ‘체념’이 안될 거 같아요.

현유 : 눈에 띄었던 게,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김지영과 이야기하면서 이제 화장실 가지 말아야 겠다며 ”지영아, 아영이 기저귀 남는 거 없니?”이라면서 농담을 하잖아요. 저는 그게 진짜 체념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친구들과 불법촬영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한 친구 말하기를 ”그런 거 보는 놈들은 다 변태들이라 일단 찍힐 거 같은 기를 죽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는 ”정말 급하면 카메라 있을 법한 곳을 향해 양손으로 ‘뻑큐’를 한다”고 했어요.(일동 웃음) 그때 다들 빵터졌는데, 그것도 사실 체념해서 웃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이 공감이 갔어요.

 

그래서 세상은 더 좋아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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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태우 : 영화의 결말도 사실 어느 정도의 ‘체념’인 거 같아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해결한 게 없고, 변한 게 없어요. 속시원하다는 느낌은 하나도 없었어요.

효진 : 그 장면에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거죠?

병진 : 사실 그 장면 보면서 혹시 평일이 아니라 주말 아닌가 싶기는 했어요.(웃음)

현유 : ’82년생 김지영’을 원작으로 했지만, 사실 넓게 보면 이 영화는 아픈 아내와 그녀를 지켜보는 남편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최대한 희망적인 결말을 뽑아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서 글을 쓰는 모습으로 끝낸 건 좀 뜬금없었어요.

효진 : 결말은 좀 게으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갑자기 갈등이 봉합된 느낌? 시어머니는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까 싶고. 결말에서는 김지영이 갖고 있는 생각을 좀 더 강하게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병진: 변한 건 없지만, 변할 거라는 암시를 준 건 있는 것 같았어요. 일단 아버지와 남동생의 작은 변화들이 있었으니까. 다만 내가 생각할 때는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은 김지영이 카페에서 자신을 ‘맘충‘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알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인 거 같아요. 거기서 끝내도 좋은 결말이라고 보는데, 아무래도 상업영화로서는 그래도 조금은 더 희망적인 내용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현유: 원작을 보면 수학문제를 풀면서 안정을 찾는 엄마가 나와요. 영화에도 같은 캐릭터가 나오는데,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엄마 생각이 났어요. 저희 부모님이 같은 대학 같은 과 커플이었어요. 성적은 엄마가 더 좋았지만, 아버지는 많은 일을 할수 있었고 엄마는 저와 동생들을 키우셔야 했죠. 그때 엄마의 입장이 김지영과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서 눈물이 났어요. 그래도 1992년생인 저는 희망을 본 게, 저는 김지영만큼 차별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영화를 보면서 저보다도 엄마를 생각했다는 게 그렇죠. 그래서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밖에 없을 거 같아요.

태우: 다들 엄마 생각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영화를 엄마랑 같이 볼까 하다가 혼자 본 게, 왠지 엄마가 영화를 보다가 우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플 거 같아서였어요.

효진 : 저도 김지영에게서 엄마가 떠올랐어요. 대학 졸업하시자마자 저를 가져가지고 바로 육아생활을 하셨거든요.

태우 : 그런 걸 보면 세상이 더 좋아진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금도 회사 면접에서 ‘결혼할 거예요? 아이 가질 거예요?’ 이런 질문이 나오잖아요. 그게 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깝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거 같아요.

현유 : 선배, 저 육아휴직 가도 책상빼지 마세요!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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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