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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수 10% 확대는 나경원도 합의'는 정말 가짜뉴스일까?

"나경원 대표도 합의" vs "왜 없는 말을 하는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27일, 당 대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선거제 개혁의 경우에는 지역구 의석을 몇 석 줄이고 비례의석을 몇 석 늘릴 것인가 하는 것이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까지 함께 합의했던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그런 합의가 이뤄진다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는 28일, ”왜 없는 말을 하는가. 없는 합의를 왜 있다고 하는가”라며 ”지난번 합의서를 똑똑히 읽어보라. 권력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서 정치 허언증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뉴스1

 

양측의 발언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정말 ‘의원 정수 10% 확대’를 합의했는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양 측의 발언에 근거가 되는 내용은 지난해 12월 15일 공개된 정개특위 5당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 2번째 항목에는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고 적혀있다.

즉 심상정 대표의 주장은 ‘의원 정수를 10% 늘리는 것까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로 요약할 수 있으며 나 원내대표의 반박은 ‘의원 정수를 10% 늘리는 것은 합의하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심 대표의 발언이 불분명한 것은 있다. 심 대표는 ”의원정수 확대를 검토하자는 것은 오래된 논의”라며 ”그런 논의가 바탕이 돼서 여야 5당 원내대표의 합의로 10% 이내의 확대를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다음 멘트는 이렇다.

″자유한국당이 사실상 선거제도 개혁을 전면 반대하면서 여야 4당 테이블만 만들어지게 됐다. 의원정수 확대는 여야5당 합의로 추진될 때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원정수 확대는 고려하지 않았다. 다시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에 동참한다면 지난 1월 합의사항에 기초해서 추가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심상정 대표는 의원정수 확대가 ‘논의사항’임을 분명히 못박고 있다. 심 대표는 5당 합의가 이루어지던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이었다. 그때도 심 대표는 합의사항을 전달하며 ”(그동안 나온 여러가지 안 중에는) 360석도 있고 300석도 있다. 이 의견을 다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10%로 이야기를 한 것이지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의해 10%라고 결론을 낸 것은 아니”라며 ”정개특위 차원에서 안을 만들고 남는 쟁점은 각 당 지도부와 협상을 통해 추진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발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니다. 심 대표가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합의가 됐다‘는 식으로 잘못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정의당의 호도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정의당이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며 정개특위에서의 논의 가능성 자체를 파기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김현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10% 이내 확대 여부 등을 포함해 검토하겠다는 합의문에 대해 이해력 부족이 아니면 고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어려운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낡은 정치꼼수에 불과하다”며 ”여·야4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패스트트랙을 밀어 붙였을 때부터 한국당은 한결 같이 국민 뜻에 따라 비례대표를 없애고 의석수를 10% 줄일 것을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논의 가능성 자체를 합의하지 않았단 식이다.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의원 정수 확대는 정의당의 밥그릇 지키기’ 주장에 대해서도 타당한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심상정 대표의 발언에 대해 ”드디어 밥그릇(지키기)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며 ”정치개혁, 선거개혁 전부 핑계들이었다. 결국 속내는 국회의원 배지 욕심, 정의당 의석수 늘리기 욕심이었다”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의 각론과 관련해서 각 당의 셈법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비례대표의 숫자가 넉넉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득표율’과 가깝게 보정할 수 있다. 만약 현행 의석수와 비례/지역구 비율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 있다.

ⓒ뉴스1

정의당 측은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은 한국의 여론을 고려하여 의원 정수 확대의 전제조건으로 ‘의원 세비 총액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더 뽑는 대신 1인당 국회의원 세비를 줄이며 ‘국회의원 특권 확대 논란’을 줄이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현재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은 전체 의석수를 그대로 둔 채 지역구 의석을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는 방향이다. 정의당은 당대표인 심상정과 지난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된 여영국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례대표다. 지역구를 축소한다고 해서 별로 손해볼 게 없다. 그런데 왜 정의당은 총대를 멘 것일까?

숫자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선거제 개편안 비례대표 의석수 75석에 기존 지역구 의석 253석을 더하면 328석이 나온다. 심 의원이 주장한 10% 확대와 거의 일치하는 숫자다. 즉 정의당의 주장은 ‘지역구를 축소하지 말자’는 것에 가깝다. 앞서 말한 대로 정의당은 지역구 숫자를 줄인다고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영향이 큰 것은 상당수의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다.

여기서 정의당과 자유한국당의 의도가 갈린다. 원안대로 가도 크게 손해 보지 않을 정의당이 굳이 의원수 확대를 주장하는 의도와 원안대로 가면 지역구 의석 수 손해를 줄일 수 있는 자유한국당이 굳이 반대하는 의도다. 바로 선거제 개편의 ‘통과 가능성’ 여부다.

사실 현행 선거제 개편안은 곳곳에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먼저 현행대로 전체 의석을 유지한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되면 기존 지역구 축소는 피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가 축소되거나 통폐합되는 지역구의 의원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세종시에 새로운 지역구를 추가하기 위해 다른 지역구 한 석을 줄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하지만 국회는 결국 지역구 축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전체 의석수를 1석 늘리는 것으로 결론냈다. 국회의원 수가 300석이 된 것도 이때였다. 정치권에서 “지역구 1석 줄이는데도 난리가 나는데, 28석을 줄인다?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구 축소가 의원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지역구를 통폐합 하게 되면 인구 비례상 수도권보다는 지방 농어촌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전남, 경남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4개 지역을 대표하는 경우가 많고 강원 지역 국회의원의 경우 태백시, 횡성군, 영월군, 평창군, 정선군 총 5개 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이게 되면 여섯일곱개 시군에서 국회의원 하나를 뽑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농어촌 지역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농어촌 지역 유권자들이 반길만한 내용은 아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지역구 축소 자체가 자칫하면 선거제 개편안 부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선거제 개편안은 패스트트랙에 올랐지만 패스트트랙이 법안 통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저 해당 법안이 최장 33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만을 강제한다. 아직까지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선거제 개편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이들 중 일부가 지역구 축소에 반발하며 반대표를 던지게 되면 선거제 개편은 통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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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은 선거제 개편안을 반대해왔다. 지난 4월 국회가 물리적 충돌을 빚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자유한국당은 계속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며 선거제 개편과 관련된 논의 일체를 거부했다. 선거제 개편은 ’2020 총선‘과 ‘패스트트랙’이라는 시간제한을 갖고 있는 주제다. 안그래도 절대적인 논의시간이 부족했지만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시간은 더 촉박해졌다. 이제 막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려는 찰나, 자유한국당이 심상정 대표의 의원정수 확대 발언에 대해 ”해서는 안 될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저희는 여론조사에 드러난 국민 뜻을 받들겠다. 국민의 뜻대로 하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선거제 개편 자체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논의가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 내부 반발로 개편안 자체가 부결되는 게 가장 좋은 결말이다. 그러려면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는 게 좋다. 반대로 정의당은 바로 그런 위험요소를 줄여야 한다. 큰 쟁점을 빨리 던지고 정리해야 한다.

한시가 급한 상태에서 여야4당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고 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한국당의 한결같은 반대 때문에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국회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와 국정을 마비시켜 반사이익을 노리는 특정정당의 정략에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식물국회를 끝내야 한다”면서 ”이제 가보지 않은 길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선거제가 ‘게임의 룰‘이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상태로 합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8일 ”자유한국당은 대국민 약속이었던 여야5당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을 것이면, 여야4당 패스트트랙 공조를 방해하지 말라”며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논의테이블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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