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10월 26일 11시 00분 KST

러시아는 조용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이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는 걸까?

EMMANUEL CROSET via Getty Images
TOPSHOT - A Russian Air Force Tupolev Tu-160 "Blackjack", a supersonic variable-sweep wing heavy strategic bomber, is parked on the tarmac at the Waterkloof Air force Base in Centurion, south of Pretoria, northeastern South Africa, on October 23, 2019. (Photo by Emmanuel CROSET / AFP) (Photo by EMMANUEL CROSET/AFP via Getty Images)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개입을 계기로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성공한 데 이어 아프리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소련 시절의 세력권 회복을 목표로 둔 듯한 거침없는 행보다.

러시아는 23일 흑해 연안 소치에서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및 경제포럼’을 열었다. 이틀간 열린 이 회의에는 아프리카 43개국 지도자와 11개국 정부 대표단, 1만여명의 기업인이 참석했다. 소련 붕괴 이후 아프리카와의 정치·경제 협력 확대를 회복하려는 본격적인 무대다.

회의가 열린 이날 러시아의 대표적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160 등은 장거리 비행을 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다. 수송기 일류신(IL)-62와 안토노프(An)-124가 동행한 이번 군용기 방문은 러시아를 출발해 카스피해-아라비아해-인도양을 거쳐 남아공까지 무려 1만1천㎞ 거리를 공중급유만 받으며 13시간 무착륙 비행하는 전략 능력을 과시했다.

러시아의 전략폭격기가 아프리카를 방문한 것은 소련 붕괴 이후 처음이다. 이번 방문은 1995년 러-남아공 양국 국방부가 체결한 군사협력협정 이행의 일환이라고 러시아는 설명한다. 하지만 냉전 시절 아프리카에서 소련의 진출을 막는 서방의 최대 동맹국인 남아공을 러시아 전폭기가 방문한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POOL New / Reuters
Egypt's President Abdel Fattah el-Sisi, Russia's President Vladimir Putin and South African President Cyril Ramaphosa attend a first plenary session of the 2019 Russia-Africa Summit at the Sirius Park of Science and Art in Sochi, Russia, October 24, 2019. Sergei Chirikov/Pool via REUTERS

 

같은 날 동시에 이뤄진 러-아프리카 정상회의와 러 폭격기의 남아공 방문은 올해부터 더욱 또렷해진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 확장 시도의 상징이다.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소치에서 시리아 북동부 지역의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공격 사태를 일단락짓는 합의를 했다. 이 합의로 러시아군은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터키군과 함께 합동순찰하는 등 영향력 및 중재 역할을 극적으로 확장했다.

러-아프리카 정상회의 개막연설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교역이 지난 5년 사이 갑절로 늘어 200억달러가 넘었다며 앞으로 4~5년 안에 최소한 두 배로 다시 늘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과거 아프리카 국가들이 러시아에 빚졌던 200억달러의 채무를 탕감해줬다며, 아프리카의 자원·기술 개발을 러시아가 다시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서진 전략’에 맞서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합병을 기점으로 지정학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행보를 시작했다. 2015년 이후 12개국의 아프리카 정상들이 모스크바를 국빈방문했는데, 이 중 6명은 지난해 방문이었다. 또한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28개 국가와 군사협력협정도 맺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중국의 세력권 다툼장이 된 아프리카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Natalia Fedosenko via Getty Images
BREST REGION, BELARUS - OCTOBER 22, 2019: Servicemen descending with parachutes from an Ilyushin Il-76 transport aircraft during a joint military drill held by Russia and Belarus, in the village of Muchavec. Natalia Fedosenko/TASS (Photo by Natalia Fedosenko\TASS via Getty Images)

 

소련 시절 러시아는 미국의 봉쇄에 대항하는 ‘봉쇄 뛰어넘기 전략’의 주요 대상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를 설정했다. 중동에선 이집트와 시리아, 아프리카에선 에티오피아·앙골라·모잠비크가 주요 협력 목표였다. 중동의 서방 동맹국인 터키와 이란, 아프리카에서의 남아공이 대척점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며칠 동안의 사태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과거의 소련 동맹국과 적성국들에까지 러시아가 관계 개선을 이뤘음을 보여줬다.

러시아의 이런 세력권 회복 행보는 올해 들어 강화된 주변국들과의 대규모 합동훈련과도 연결돼 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는 자신들의 군구와 연관시킨 네 지역의 군사훈련인 ‘보스토크’(동방), ‘자파트’(서방), ‘첸트르’(중앙), ‘캅카스’(남방) 훈련을 순차적으로 진행해왔는데, 2015년 이후 그 규모는 해마다 경신됐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지난 9월 올해 첸트르-2019 훈련을 실시했는데, 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과거 소련의 공화국 국가뿐 아니라 중국·인도·파키스탄도 초청해 12만8천명의 병력과 600대의 군용기, 15척의 전함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로 진행했다. 특히 작전 범위를 확장해 북극해 방어를 작전의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 15일부터는 전략미사일 전력 훈련인 ‘선더(천둥)-2019’를 실시해 크루즈 및 탄도미사일을 16차례나 실전 발사 훈련했다. 미국이 지난 8월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경신을 거부하자, 그에 맞서는 핵전력 보강에도 나선 것이다. 최근 러시아 전투기들이 동해상의 한국방공식별구역(카디즈)을 자주 침범하는 것도 소련 시절의 전력 및 세력권을 회복하려는 러시아 행보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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