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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신혼 로망 실천을 위해 너무 큰 비용을 치렀다

보글보글 찌개 끓이고 조물조물 나물 무쳐서 한상 차리는 신혼 로망이었지만...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스틸컷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로망이 있었다. 바로 앞치마 곱게 차려입고 보글보글 찌개 끓이고 조물조물 나물 무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온 남편과 한상 그득하게 차려놓고 ”여보 정말 대단하다, 너무 맛있어!” ”오늘 힘들었징? 마니 먹엉~” 이러면서 서로 먹여주고 그러다가 또 분위기가 바뀌고 그러는 신혼 밥상 로망.

ⓒJTBC

*^^*

스무 살 이후 거실 겸 부엌 겸 침실인 원룸에서만 살아왔던 내게 부엌이 따로 딸린 신혼집은 그런 로망을 실현시켜 줄 이상적인 장소로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만든 요리를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그런 로망.

그렇게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던 어느 날, 퇴근길에 장을 잔뜩 봐 왔다. 메뉴를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시금치나물무침 그리고 제육볶음으로 정해두고 이런저런 재료를 구매하다 보니 결제 금액이 4만원에 육박했다.

잠깐. 4만원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야? 그럴 바에야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여섯 그릇 사먹고 말지. 한 사람의 국밥부장관으로서 그렇게 생각할 만한 금액이었지만, 뭐 둘이 사는 거고 남은 재료로 또 요리를 해 먹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서 앞치마를 두르고 분주하게 칼질을 시작했다. 한 상이 거의 완성될 무렵 남편도 퇴근했다. ”와, 여보, 맛있는 냄새 나!” ”얼른 씻고 와! 밥 먹자.”

세상 달달한 신혼의 로망... 뭔가 신혼의 깨소금 냄새가 나지 않나요?

짜란☆★

우리는 다정히 붙어앉아 내가 차려낸 한 상을 먹었다. 신혼답게 남편은 ”여보가 차려준 밥 먹으니까 하루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라고 기뻐했고 나 역시 남편이 맛있게 먹어주니 행복했다. 음식은 맛있었고, 양이 적당했고, 분위기는 알콩달콩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날이 신혼에도 며칠 없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은 재료로 또 요리를 해먹는 건 애매했다. 내일도 우리가 차돌박이 된장찌개와 시금치나물무침과 제육볶음을 먹을 건 아니었으니까 그 재료를 쓴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둘 중 하나가 외식을 하고 오는 날도 있고, 그냥 사실은 밖에서 둘이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다.

ⓒkenken_kr via Getty Images

결국 냉장고에서는 다 합쳐 3만2천원어치쯤 될 양파, 다진마늘, 시금치, 애호박, 당근, 파 같은 것들이 서서히 죽어갔고, 우리는 코를 틀어막고 그것들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넣어야 했다.

직접 식탁을 차릴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언젠가는 부대찌개를 한솥을 끓였다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곤란을 겪었고 두부찌개를 해 먹으려고 두부를 사 왔다가 갑자기 외식을 하게 돼서 냉장고에 조용히 집어넣은 두부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단백질의 (끔찍한) 변성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경험들은 알콩달콩한 신혼부부 같은 그런 풍경을 한번 연출해보고 싶어서 쓴 비용치고는 꽤 가혹했다.

ⓒMBC

으어엉어어어ㅓㅇ어엉ㅇ ㅠㅠㅠㅠ음식물 쓰레기 짱시룸 ㅠㅠㅠ

이상했다. 혼자 살 때는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이렇게 돈을 많이 안 썼던 것 같은데, 사람 하나 늘었다고 이게 왜 이렇게 됐을까... 를 생각해보다가 답을 찾았다. 혼자 살 때는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런 걸 샀을 뿐.

ⓒ뉴스1

????

(*Bi비고 광고 아님)

ⓒMBC

ㄴㅇ0ㅇㄱ

나는 빠가사리였다. 아니, 이 시국에 빠가라는 말을 쓰면 좀 그러니까 빠가사리가 아니라 빡X가리였다. 결혼 전에 그렇게 뺀질나게 매일같이 먹었던 간편식품을 까맣게 잊다니... 내가 직접 만든 음식에만 내 사랑이 깃든다고 생각한 탓이다.

사실 직접 밥 짓고 국 끓이고 나물 무쳐서 차려야만 사랑인 건 아니었다. 봉지 째로 데우지 않고 예쁜 접시에 따로 옮겨 담아 데우는 것만 해도 충분히 엄청난 사랑과 희생이었던 것이다.

간편식품으로 한 끼를 꾸리면 둘이 합쳐서 2만원도 안 들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생겼다. 뭔가 괜히 내가 직접 만든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난 음식을 예쁜 그릇에 옮겨 담고 데워서 차려놓기만 하면 남편이 너무 맛있다고, 고생했다며 설거지랑 청소를 자기가 하니까 손해볼 일이 없는 장사(?)이기도 했다.

물론 남편은 나보다 퇴근이 늦으므로 내가 진짜 다 요리한 줄 알겠지? 정말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아, 당연히 남편한테 다른 집안일 다 시키려고 요리가 신혼 로망임을 강조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어제 허프포스트 회식에서 제법 취해버린 와이프를 데리러 온 늦은 시간 달려오신 남편님께 무궁한 사랑과 영광을 드립니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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