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10월 23일 17시 29분 KST

'배우자 폐위 사태'가 극명하게 드러내는 태국 왕권의 변화

어쩌면 큰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BBC 영상 캡처
시니낫 웡라치라파크디에게 성유를 발라주는 와찌랄롱꼰 국왕.

위 사진은 지난 7월 시니낫 웡라치라파크디가 태국 국왕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으로부터 ‘차오 쿤 프라’의 계급을 받는 장면이다. ‘차오 쿤 프라’는 ‘왕의 배우자’란 뜻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사실상 후궁을 뜻한다. 이 계급을 받는 건 왕가의 일원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왕비’의 지위와는 멀다.

왕이 성유를 바를 때면 왕을 알현한 이는 이런 자세를 취한다. 하체를 바닥에 대고 거의 엎드리듯 허리 위의 상체를 든다. 위 사진에서 와찌랄롱꼰 왕의 뒤에 앉아 왕의 새로운 배우자를 바라보는 사람이 네 번째 왕비인 수티다 와찌랄롱꼰이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왕이 성유를 발라 줄 때는 모두 이런 자세를 취한다. 태국에서 아직 입김이 세다는 군부마저 그렇다. 아래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태국 총리 쁘라윳 짠오차가 와찌랄롱꼰 왕을 경배하는 모습이다. 한없이 낮다.

THAI TV POOL via Getty Images
This screengrab from Thai TV Pool video taken on May 5, 2019 shows Thailand's Prime Minister Prayut Chan-O-Cha (L) paying respect to Thailand's King Maha Vajiralongkorn (C) while Queen Suthida looks on following the coronation ceremony at the Grand Palace in Bangkok. - Thai King Maha Vajiralongkorn was crowned on May 4 with a golden-tiered headpiece, the highlight of an elaborate three-day coronation ceremony two years after he ascended the throne. (Photo by Thai TV Pool / THAI TV POOL / AFP) (Photo credit should read THAI TV POOL/AFP/Getty Images)

공주라고 예외는 없다. 파차라끼디아퍄 마히돌 공주가 왕을 알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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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creengrab from Thai TV Pool video taken on May 5, 2019 shows Thailand's King Maha Vajiralongkorn anointing his daughter Princess Bajrakitiyabha Mahidol while Queen Suthida looks on during a ceremony at the Grand Palace in Bangkok. - Thai King Maha Vajiralongkorn was crowned on May 4 with a golden-tiered headpiece, the highlight of an elaborate three-day coronation ceremony two years after he ascended the throne. (Photo by THAI TV POOL / THAI TV POOL / AFP) / 

시리완나와리 나리랏 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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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creengrab from Thai TV Pool video taken on May 5, 2019 shows Thailand's King Maha Vajiralongkorn anointing his daughter Princess Sirivannavari Nariratana while Queen Suthida looks on during a ceremony at the Grand Palace in Bangkok. - Thai King Maha Vajiralongkorn was crowned on May 4 with a golden-tiered headpiece, the highlight of an elaborate three-day coronation ceremony two years after he ascended the throne. (Photo by Thai TV Pool / THAI TV POOL / AFP) (Photo credit should read THAI TV POOL/AFP/Getty Images)

태국의 왕권을 이해하려면 역사와 법을 알 필요가 있다. 태국은 매우 특이한 입헌 군주국가이면서도 왕의 입김이 무척 세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왕의 암묵적 허가가 있지 않으면 민심을 얻을 수 없다.

1932년 입헌 군주제가 도입되었지만, 태국의 왕가는 1782년 라마 1세부터 라마 10세(현 국왕)까지 237년 동안 이어져 온 짝끄리 왕가의 전통 위에 여전히 우뚝 서 있다. 태국의 헌법에 그렇게 쓰여 있다. “왕은 지존의 존재이며 누구도 왕의 지위를 침해할 수 없고 왕을 비난하거나 고소할 수 없다.”

영국의 미디어는 영국 왕실을 비판하지만, 태국의 미디어는 태국 왕실을 비판할 수 없다. 같은 입헌 군주제지만 최상위 법인 헌법의 규정에 따라 다르다. 70년 동안 집권한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이 2016년 타계한 이후 아들 마하 와찌랄롱꼰이 왕권을 계속해서 강화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 감에도 아무런 비판도 나오고 있지 않은 이유다.

시니낫(34)은 국내 언론에는 마치 왕의 첩처럼만 보도됐으나 태국 사회에서 시니낫은 지난 수년간 네 번째 왕비인 수티다(41)와 함께 와찌랄롱꼰 왕(67)의 곁을 지켜왔다. 타이의 왕가는 역사적으로 일부다처제를 이뤘으나 라마 6세 이후에는 ‘차오 쿤 프라’(왕의 배우자)라는 지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시니낫이 이 호칭을 받았을 때 태국인들의 관심이 쏠린 이유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태국 언론을 도배하던 시니낫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태국 왕실의 홈페이지에는 그 많던 시니낫의 사진이 현재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이는 와찌랄롱꼰 왕의 성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국민들로부터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사랑받으며 한 명의 왕비와 평생을 보낸 선왕과는 달리 와찌랄롱꼰은 첫 아내와는 이혼했고, 두 번째 아내와 의절했으며 세 번째 아내 역시 궁에서 쫓아냈다. 현 왕비인 수티다는 네 번째 아내다.

가디언은 ”왕이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정치, 언론, 사법의 영역에서 엄청난 힘을 휘두르기 때문”이라며 ”태국의 언론은 왕을 비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가디언은 와찌랄롱꼰 국왕은 이달 태국에서 가장 강력한 부대를 자신의 직속으로 둘 것으로 요구하여 현대에 들어 그 어떤 왕도 가진 적이 없는 군사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선왕인 푸미폰 아둔야뎃이 군부와 탁신 사이에서 균형의 간섭으로 안정을 꾀하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