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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런닝화 논란' 마라톤 두 시간의 벽을 깬 건 인간인가 기술인가?

기술과 스포츠는 떼어놓을 수 있을까?

  • 박세회
  • 입력 2019.10.23 11:57
  • 수정 2019.10.23 14:43
Kenya's Eliud Kipchoge (L) celebrates after busting the mythical two-hour barrier for the marathon on October 12 2019 in Vienna. - Kenya's Eliud Kipchoge on Saturday made history, busting the mythical two-hour barrier for the marathon on a specially prepared course in a huge Vienna park.
With an unofficial time of 1hr 59min 40.2sec, the Olympic champion became the first ever to run a marathon in under two hours in the Prater park with the course readied to make it as even as possible. (Photo by ALEX HALADA / AFP) (Photo by ALEX HALADA/AFP via Getty Images)
Kenya's Eliud Kipchoge (L) celebrates after busting the mythical two-hour barrier for the marathon on October 12 2019 in Vienna. - Kenya's Eliud Kipchoge on Saturday made history, busting the mythical two-hour barrier for the marathon on a specially prepared course in a huge Vienna park. With an unofficial time of 1hr 59min 40.2sec, the Olympic champion became the first ever to run a marathon in under two hours in the Prater park with the course readied to make it as even as possible. (Photo by ALEX HALADA / AFP) (Photo by ALEX HALADA/AFP via Getty Images) ⓒALEX HALADA via Getty Images

세계 육상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온 마라톤 2시간의 벽이 깨지긴 깨졌는데, 확실히 깨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좀 살펴봐야겠다. 나이키의 런닝화가 포인트다.

지난 12일 케냐의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1시간 59분 40초에 주파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2시간 이내 기록이다. 일단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이날의 기록은 대회에서 다른 선수들과 경쟁하며 얻어낸 기록이 아니다. 그는 홀로 기록과 경쟁했으며, 페이스메이커 7명이 달리는 내내 그에게 달라붙어 바람의 저항을 줄여줬다. 보조요원이 항상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최적의 시간에 전달했고, 무엇보다 기록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최고의 신발을 신고 뛰었다. 바람막이야 이벤트의 특성상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특수 신발?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온다.

실제 시합에서는 런닝화의 기능을 좀 더 철저하게 규제해야 하지 않을까?

뉴욕타임스의 지난 19일자 에세이를 보면 킵초게가 신고 뛴 신발은 그냥 신발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나이키의 한 런닝화가 마라톤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 나이키 신발을 신고 뛴 남성 마로 토너들이 지난 13개월 사이 최소 5번의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1968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이자 ‘러너스 월드‘의 편집장이었던 엠버 버풋은 ”다른 회사들은 나이키를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으나 어쩌면 특허가 문제인지도 모른다”라고 진단했다. 이 문제의 기술이 적용된 건 나이키의 ‘줌엑스 베이퍼플라이’(ZoomX Vaporfly) 시리즈다.

지난 12일 케냐의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신고 뛴 나이키의 런닝화. 
지난 12일 케냐의 마라톤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가 신고 뛴 나이키의 런닝화.  ⓒALEX HALADA via Getty Images

이 라인에는 일종의 스프링처럼 작용하는 탄소 섬유 밑창이 적용되어 있어 달리는 이의 발에 부스트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킵초게가 신고 뛴 나이키의 신발은 킵초게의 달리기에 최적화한 것으로 3개의 탄소 섬유판과 두 개의 다른 재질의 레이어가 중창에 적용됐다.

기술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중창의 두께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는 중창 두께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시중에 있는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 시리즈 중에는 중창의 두께가 36m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중창은 페벡스(Pebax)라는 초경량 소재로 되어 있어 거의 맨발로 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리적으로도 무게 증가 없이 중창이 두터워지면 같은 힘으로 다리 길이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점이 있다.

게다가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의 신발 중창에 들어가 있는 ‘탄소 섬유판‘이 딛는 발의 힘을 손실 없이 되돌려 줘 치고 나가는 힘을 향상시킨다. 엠버 버풋은 ”나이키의 지원을 받은 한 연구자는 베이퍼플라이 시리즈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이퍼플라이 신발이 마라톤 시간을 약 3% 단축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2017년)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국제육상연의 지침을 보면 마라톤 선수의 신발은 선수에게 ‘부당한 이득‘을 줘서는 안 되고 ‘모두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이키의 기술이 이 수준을 넘어섰는지가 문제다.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육상연맹의 기술 위원회는 2017년부터 나이키의 베이퍼플라이 시리즈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나이키의 신발을 금지할 움직임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언뜻 부당해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스포츠의 많은 부분은 기술에 의존하기 마련이고 기술을 가진 브랜드와의 협력은 이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겨울 스포츠인 썰매(봅슬레이, 스켈레톤 등)의 경우 어떤 브랜드의 썰매를 타느냐가 거의 우승의 향방을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스켈레톤의 황태자 윤성빈은 선수 생활 초기에는 세계랭킹 70위권을 맴돌았으나 영국인 장비 코치 리처드 브롬리를 영입하고 그가 운영하는 브롬리 사의 썰매로 바꾸면서 2014~2015시즌에 세계랭킹 5위로 성적이 수직상승 한 바 있다. 사이클, 양궁, 빙상, 설빙 등의 종목을 생각해보면 기술을 스포츠와 완전히 분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기술 발전을 옹호하는 주장의 근저에는 ‘운동의 힘이 선수의 신체에서 나오는 한 합법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기술이 스포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맨발로 올림픽 마라톤을 정복한 에티오피아의 영웅 비킬라 아베베가 생각나는 질문이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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