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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기니피그'들을 태운 세계 최장거리 직항편 시험비행이 끝났다

미국 뉴욕에서 호주 시드니까지 19시간16분을 비행했다.

  • 허완
  • 입력 2019.10.21 19:43
  • 수정 2019.10.21 19:48
'세계 최장거리 직항 노선' 운항을 무사히 마치고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QF7879편 여객기의 조종사들이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2019년 10월20일.
'세계 최장거리 직항 노선' 운항을 무사히 마치고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QF7879편 여객기의 조종사들이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다. 2019년 10월20일. ⓒJames D. Morgan via Getty Images

20일 오전 7시43분(현지시각), 호주 시드니공항 활주로에 여객기 한 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지금 착륙합니다!” 이 장면을 생중계로 전하던 방송 진행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럴 만도 했다. 항공 역사가 새롭게 쓰여진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한 호주 콴타스항공 QF7879편이 민항기 역사상 가장 긴 직항 노선 비행을 막 끝낸 참이었다. 꼭 19시간16분이 걸렸다. 그동안 그 어떤 항공사도 이 노선을, 이만큼 먼 거리를 직항으로 비행한 적은 없었다.

이번 시범비행은 콴타스항공이 진행중인 ‘프로젝트 선라이즈(Project Sunrise)’의 일환으로 실시됐다. 이르면 2022년부터 호주 동부(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에서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직항으로 연결하는 노선을 개설하는 게 콴타스항공의 목표다. 각각 1만6000km, 1만7000km를 넘는 ‘초장거리(Ultra long-haul)’ 노선이다. 

초장거리 비행이 가능해진 건 전적으로 기술 진보 덕분이다. 훨씬 가볍고 튼튼한 기체와 단 두 개로도 충분한 항속거리를 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진 엔진, 연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공기역학 기술 등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사람이다. 과연 인간은 좁고 건조하고 답답한 기내 공간에서 20시간을 버틸 수 있는가?

Q7879편 시험비행에 동행한 콴타스항공 CEO 앨런 조이스가 좌석에 앉아있다.
Q7879편 시험비행에 동행한 콴타스항공 CEO 앨런 조이스가 좌석에 앉아있다. ⓒJames D. Morgan via Getty Images

 

콴타스항공은 이번 시험비행을 앞두고 낸 설명자료에서 ”초장거리 비행편에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실시”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꼽았다. 조종사 6명(예비 조종사 두 명 포함)과 요리사를 포함한 승무원 6명, 콴타스항공 CEO 앨런 조이스, 소수의 언론인, 그리고 이 항공사의 단골 탑승객 6명 등 총 49명이 이 역사적인 비행(또는 실험)에 동행했다. 물론, 모두 비즈니스석에 앉았다.

6명의 승객들은 현지시간으로 밤 9시에 출발한 이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시계를 시드니에 맞췄다. 그리고는 ‘첫 여섯 시간 동안은 깨어있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조명은 일부러 환하게 켜졌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을 ‘조작’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곧 승객들이 잠에 들지 않고 조금 더 버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됐다는 첫 끼니가 제공됐다. 칠리와 라임을 곁들인 데친 새우, 재스민 라이스와 함께 서빙된 ‘중국식’ 매운 대구 등이다. 음료도 세심하게 조절되어야만 했다. 과도한 알콜 섭취는 숙면을 방해하고, 따라서 제트레그(jet lag)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과학자들의 권고가 충실히 이행됐다. 요리사는 이 특별한 기내식을 사흘 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시험비행에 참여한 탑승객들이 '과학적 권고'에 따라 비행 도중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시험비행에 참여한 탑승객들이 '과학적 권고'에 따라 비행 도중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Photo by James D Morgan/Qantas

 

시험비행에 동승했던 블룸버그의 앵거스 휘틀리 기자가 작성한 장문의 후기에 따르면, 비행 네 시간째에 접어들자 이번 연구를 총괄한 마리 캐롤 시드니대 교수는 승객들을 비행기 뒤편으로 불러모았다. 스트레칭과 팔굽혀펴기, 그리고 ‘단체 춤’이 이어졌다. 오해는 금물이다. ”이 모든 게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이다.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수면 일정을 지키고, 틈틈이 피로도와 반응속도, 스트레스 수치 등을 기록해야 했다. 승무원들은 액티비티를 추적하는 장비도 손목에 착용했다. 조종석에는 ”각성도(alertness)를 보여줄 단서와 운항 활동들을 기록”하기 위한 카메라들이 설치됐고, 번갈아 조종간을 잡은 네 명의 조종사들은 뇌파도(EEG)를 측정하는 장비를 착용했다.

이날 비행에 사용된 여객기 보잉 787-9도 최적화되어야만 했다. 일반적인 운항 조건에서는 1만6000km가 넘는 거리를 운항할 수 없는 비행기인 만큼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 더 가벼워야 더 멀리까지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객 숫자는 물론, 각종 집기와 식량, 승객들의 수하물 등은 최소한으로 제한됐다. 그 덕분에 최대치인 10만1000kg에 달하는 연료를 싣고도 이 기체의 최대이륙중량(25만4000kg)을 맞출 수 있었다.

미국 뉴욕을 출발해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QF7879편 여객기의 모습. 애초 중장거리 여객기로 설계된 보잉 787-9는 이번 시험비행을 위해 무게를 대폭 줄여야만 했다.
미국 뉴욕을 출발해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QF7879편 여객기의 모습. 애초 중장거리 여객기로 설계된 보잉 787-9는 이번 시험비행을 위해 무게를 대폭 줄여야만 했다. ⓒJames D. Morgan via Getty Images

 

콴타스항공은 11월과 12월에 뉴욕-시드니, 런던-시드니 노선에서 이같은 시험비행을 진행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안으로 초장거리 직항 노선 개설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승인되면 2022~2023년쯤 운항을 개시한다는 게 항공사 측의 계획이다.

콴타스항공은 에어버스와 보잉이 각각 A350과 777X를 도입 기종으로 제안한 상태라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콴타스항공이 두 회사에 몇 가지 요청사항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첫째, 초장거리 노선 뿐만 아니라 중거리 노선에도 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 둘째, 중거리 노선을 뛴 기체를 초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때 손쉽게 일부 좌석을 제거해 ‘운동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달라.

″초장거리 비행이 몇 가지 추가적인 도전과제들을 선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사히 시드니공항에 도착한 CEO 앨런 조이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기술(발전) 덕분에 우리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될 때마다 항상 그랬다. 지금 진행중인 연구는 비행 과정에서 (승객들의) 안락함과 건강을 향상시킬 더 나은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꼭 직항 노선이어야 하는 걸까? 

″이미 분명한 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조이스가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번 갈아타는 뉴욕-시드니 정기 운항편(QF12)은 우리보다 세 시간 먼저 이륙했는데 우리가 몇 분 더 일찍 도착했다. 중간에 기착하지 않아도 됨으로써 엄청난 분량의 총여행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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