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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어려워] '젊은 척하는 아저씨'로 살지 않는 법

넘기 힘든 허들이 많다

유열의 음악앨범
유열의 음악앨범 ⓒCGV아트하우스

성숙한 ‘아저씨’가 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얼마 전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MBC의 본격 부동산 예능 ‘구해줘 홈즈‘를 봤다. 두 팀으로 나뉜 패널들이 의뢰인의 요청에 딱 맞는 집을 찾는 내용이다. 같은 팀인 배우 김광규씨와 방송인 노홍철씨는 의뢰인의 요청에 딱 맞는 ‘분리형 원룸’을 찾았다.

문제는 이를 소개할 때다. 이 집의 이름을 지었다며 ‘원룸인 듯 원룸 아닌 원룸 같은 너~어~어’라고 노래를 불렀다. 대체 언제 적 노래인가, 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는 찰나에 사회자 격인 방송인 양세형이 말했다. “젊은 척하는 아저씨 같아요!” ‘젊은 척하는 아저씨’라는 단어가 마음에 남았다. 생각해 보니 젊은 척은 아저씨만 한다. 어린 사람이 젊은 척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언제나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고 우리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혹시 나는 그런 적이 없나? 철 지난 유머를 남발하며 젊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은 없을까?

후배들에게 ‘젊은 척하는 아저씨’라는 말을 하자마자 엄청난 제보가 쏟아졌다. 잡지사 에디터인 한 후배는 대뜸 “선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봤어요?”라고 물었다. 이 영화에 출판사 대표로 나오는 ‘종우’ 역할이 딱 젊은 척하는 아저씨라는 얘기다. 종우는 킥보드를 타고 다닌다.

송곳으로 찔린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얼마 전 진지하게 전동 킥보드를 사려고 알아봤기 때문이다. 또 다른 후배는 “캐릭터 티셔츠가 문제”라고 말했다. 스누피나 도널드 덕이 그려진 캐릭터 티셔츠를 입으면 어쩐지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의견이다. 얼마 전 옷장 정리를 하며 흑백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버린 나를 마음속으로 크게 칭찬했다. 또 다른 후배는 “디스트로이드 진에 정장 구두”라고 말했다. 디스트로이드 진이 뭔지 찾아봤더니 찢어진 청바지를 요새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디스트로이드 진이 유행하는지 몰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패션에서만 드러나는 건 아니다. 한결같이 ‘신조어’에서 티가 난다고 말했다. 신조어에는 생명이 있는데, 생명이 다한 신조어를 쓰면 아저씨 소리를 듣는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라든지 ‘렬루’(리얼루)라든지. 어떤 신조어가 살아있는 신조어인지 모르겠다면 주변에 친한 후배에게 슬쩍 물어보든지 아예 신조어를 쓰지 말기를 권장한다.

철 지난 ‘짤방’(잘림 방지 이미지)이나 ‘움짤’(움직이는 짤방)을 남발하는 것 역시 아저씨티가 난다. 한 후배는 “대표적인 게 ‘보노보노 피피티’, ‘뽀로로 안경빨’, ‘술 마시는 둘리’(모두 한때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짤방들) 등이다”라며 “언제 유행한 건지 확인하고 써야 티가 덜 난다”고 말했다. 언급한 짤방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다면 바로 지우길 바란다. 또 다른 후배는 “유튜브 영상 재미있다고 보내며 젊은이들의 문화를 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한다. 유튜브가 젊은 게 아니다. 유튜브의 특정 콘텐츠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뿐이다.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건 인스타그램이다. 한 후배는 “‘요새 맛집’이라며 링크 보내줄 때 어린 친구들은 인스타그램 링크를 보내고 나이 드신 분들은 네이버 블로그 링크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최신 맛집을 소개하더라도 그 가게를 알리는 링크가 포털 사이트 링크라면 젊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네이버 링크 수천개를 뿌리고 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배들의 이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내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열망이 샘솟는다. 스냅백을 쓰고 스누피가 그려진 캐릭터 티셔츠에 디스트로이드 진을 입고 정장구두를 신고 등에는 슬림한 백팩을 메고 킥보드를 타고 전철역을 향해 달리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와이(Y) 세대 끝물의 피가 끓어오른다. 한번 해볼까?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니 아내가 “이혼 조건에 포함해야겠다”라고 말했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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