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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게 '배신' 당한 쿠르드가 러시아 지원 받는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았다

불과 1년 전, 트럼프는 "우리와 함께 싸운" 쿠르드인들을 "잊지 않는다"고 했었다.

  • 허완
  • 입력 2019.10.14 17:17
  • 수정 2019.10.14 17:20
A man holds a flag during a pro-Kurdish rally against Turkey's military action in northeastern Syria, in London, Britain, October 13, 2019. REUTERS/Henry Nicholls
A man holds a flag during a pro-Kurdish rally against Turkey's military action in northeastern Syria, in London, Britain, October 13, 2019. REUTERS/Henry Nicholls ⓒHenry Nicholls / Reuters

″우리는 쿠르드인들과 잘 지낸다. 우리는 그들을 많이 도와주려고 하고 있다. 거기가 그들의 영토라는 걸 잊지 말라.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나는 그들을 돕고 싶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싸웠다. 우리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약 1년 전인 2018년 9월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엔에서 가진 기자회견 도중 자신을 ‘쿠르디스탄TV’ 기자라고 밝힌 언론인 라힘 라시디를 ‘미스터 쿠르드’로 지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라시디 기자의 질문은 간단했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 격퇴 이후에도 쿠르드인들을 계속해서 지원할 것인가?’

미국은 IS 격퇴전에서 쿠르드인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미국의 군사적, 재정적 지원을 받은 쿠르드족 민병대(인민수비대, YPG)와 YPG가 주축이 된 시리아민주군(SDF)의 활약 덕분에 IS는 패퇴했다. 1만명 넘는 쿠르드 병사들이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이슬람국가(IS)와 싸우던 수많은 쿠르드인을 잃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죽었다. 또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 위대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잊지 않았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쿠르드인들은 IS가 장악했던 시리아 북부 영토를 탈환해 통제해왔다. 미국으로서는 그 덕분에 이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는 이란이나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다. IS 무장대원과 그 가족들을 구금한 수용소를 관리해온 것도 쿠르드인들이었다.

Kurdish fighters from the People's Protection Units (YPG) take part in a military parade as they celebrate victory over the Islamic state, in Qamishli, Syria March 28, 2019. REUTERS/Rodi Said
Kurdish fighters from the People's Protection Units (YPG) take part in a military parade as they celebrate victory over the Islamic state, in Qamishli, Syria March 28, 2019. REUTERS/Rodi Said ⓒRodi Said / Reuters

 

그러나 꼭 1년 뒤, 쿠르드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북부에 남아있던 미군 병력 철수를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미국이 ‘그린라이트’를 켜주자 예상대로 터키는 곧바로 쿠르드족을 겨냥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터키는 국경 바로 바깥인 시리아 북부 쿠르드인들을 ‘국가안보상 최대 위협’으로 지목하며 이를 공격 명분으로 삼았다. 터키는 가장 많은 쿠르드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터키는 지난 수십년 동안 자국 내 쿠르드인들의 분리독립 시도를 탄압해왔다.

미국의 ‘배신’에 대한 쿠르드인들의 대답은, 미국의 적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SDF는 13일 ”국경을 수호하고 시리아의 주권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시리아 정부”와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터키의 공격에 맞서 SDF를 돕기 위해 시리아-터키 국경에 시리아 정부군을 배치하도록 하는 합의를 시리아 정부와 맺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쿠르드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이 합의 타결 배경을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었던 SDF 지휘부는 미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러시아의 주선으로 3일 동안 협상을 벌인 끝에 시리아 정부와 합의를 타결했다.

A Turkey-backed Syrian rebel fighter is seen in the town of Tal Abyad, Syria October 13, 2019. REUTERS/Khalil Ashawi     TPX IMAGES OF THE DAY
A Turkey-backed Syrian rebel fighter is seen in the town of Tal Abyad, Syria October 13, 2019. REUTERS/Khalil Ashawi TPX IMAGES OF THE DAY ⓒKhalil Ashawi / Reuters

 

쿠르드인들로서는 IS 격퇴 이후 이 지역에서 누려왔던 자치권을 사실상 시리아 정부에 헌납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위험도 있다. 고위 당국자 바드란 지아 쿠르드는 미국의 ”배신”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화력 면에서 터키 군에 절대적으로 열세인 쿠르드군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한 쿠르드인 여성은 ”(터키군에 의한) 이 대량학살을 막을 유일한 길이 (시리아) 정권과의 합의라면, 좋다”고 말했다. ”미국은 우리를 배신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르드 군인들과 동고동락하며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군인은 ”그들은 우리를 신뢰했는데 우리가 그 신뢰를 깼다”고 말했고, 또다른 군인은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NYT는 IS 격퇴전에서 미국과 SDF가 최고위층 지도부부터 일반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해왔다고 소개했다.

일례로 수천명의 SDF 군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전투 전략, 정찰, 응급처치 등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IS 격퇴 작전이 사실상 마무리 된 뒤에도 미국은 은신한 IS 병력을 급습할 수 있도록 SDF의 대테러부대 병력들을 훈련시켰다.

중부사령관을 지냈던 조지프 보텔은 ”그들이 슬픔에 잠기면 우리도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이 정책 결정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파트너십 관계를 맺는 건 매우, 매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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