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최악의 시나리오’ 전문가들이 정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대응을 비판했다

ASF 발병 27일 만에 ‘야생 멧돼지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
. ⓒ뉴스1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환경부의 대응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11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에 있는 군 초소 인근에서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는 멧돼지가 발견됐다. ‘북한지역에서 비무장지대 철책을 통과해 넘어오는 야생멧돼지는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군 당국의 지침에 따라 멧돼지는 사살됐다. 죽은 멧돼지에서 시료를 채취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양성.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강원도 철원과 연천에서 ASF 바이러스 감염 멧돼지가 4마리 확인됐다. 철원에서는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서 야생 멧돼지가 죽은 상태로 발견됐다는 군 당국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국립환경과학원이 인근에서 죽은 야생 멧돼지 한 마리를 더 찾았다. 지난 2일 연천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멧돼지까지 더하면 모두 5마리이다.

정부는 긴급 대책을 내놨다. 야생멧돼지가 폐사한 지역을 중심으로 총기 사냥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폐사체가 나온 철원과 연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5㎢ 이내는 감염지역으로 전체 테두리에 철책을 세우고, 30㎢ 이내는 위험지역으로, 포획틀과 트랩 등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사냥 지역은 300㎢ 이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 내에서는 총기 사용을 통한 포획을 허용하기로 했다. 감염 멧돼지를 찾기 위해 민통선 지역 내에 드론도 투입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환경부의 대응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SBS뉴스에 따르면 정현규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결국 벌어지면 안 되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우려했다. 

대북 방어선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북한에는 6,7월에 이미 평양 인근과 황해도, 개성까지 돼지열병이 유입됐고 남한 접경지역 군부대 막사에서 잔반을 먹이며 사육하는 돼지도 감염된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이들이 버린 감염 돼지 사체를 먹은 까치ㆍ까마귀 등 조류가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MBC뉴스에 따르면 서정향 교수는 ”동료들이 폐사체를 서로 잡아먹는다든지 또 남쪽에 있는 멧돼지와 접촉을 했을 경우에 일파만파 계속 이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전염이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포획 허용 시기가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생멧돼지는 번식기인 11월에 이동이 활발해지는데 이전에 하루 빨리 포획을 시작해야 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루 15km 정도를 이동하는 멧돼지는 번식기가 되면 하루 최대 100km까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멧돼지는 호기심이 많아 다른 개체의 사체에도 가까이 다가가는데다 번식기에는 교미대상을 찾아 축산농가에 자주 출몰하는 등 연쇄적 감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번식기를 거치면서 새끼를 낳게 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김 부회장은 “11월~이듬해 1월까지 이어지는 번식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새끼를 낳게 되면 포획 대상도 현재 규모(전국 야생멧돼지는 약 30만마리로 추산된다)보다 3배는 많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 ⓒ뉴스1

전문가들이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난 9월 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에서 첫 발병했을 때,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유입 경로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 중에는 ‘야생 멧돼지‘를 통한 유입 가능성도 비중있게 거론됐다. 그러나 환경부는 발병 이틀째에 불과한 18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야생 멧돼지와 관계 없다”고 단언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발병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가 나지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멧돼지를 자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야생 멧돼지‘를 통한 ASF 유입 가능성을 초기부터 배제한 환경부는 이렇다 할 유입경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 입장은 10월 3일 바뀐다. 경기도 연천군 DMZ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에서 바이러스가 첫 검출된 것이다. 당국은 더 이상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지 못하게 되자 “DMZ 철책 이남의 야생 멧돼지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이 없다”로 수정한 입장을 발표한다. 

그리고 11일 ‘DMZ 철책 이남’ 야생 멧돼지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된다. 12일에도 발견된다. 이틀 동안 총 4마리나. 이제 더 이상 ‘~의 야생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적 없다‘로 발표할 게 없어진 당국은 13일 긴급대책을 내놨다.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방부 관계부처 합동 대책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27일째에,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감염됐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나서야 내놓은 ‘긴급 대책’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국방부 #아프리카돼지열병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멧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