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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서 시민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매달 500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기본소득' 실험이다

  • 이원열
  • 입력 2019.10.13 15:10
  • 수정 2019.10.13 15:54
캘리포니아주 스탁튼시는 빈곤층 125명에게 현금 카드에 매달 500달러를 아무 조건 없이 넣어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스탁튼시는 빈곤층 125명에게 현금 카드에 매달 500달러를 아무 조건 없이 넣어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굉장히 많은 미국인들에겐 자동차 고장, 갑작스러운 월세 인상, 질병 등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 지출이 큰 타격이 된다. 갑자기 400달러(약 47만원)를 써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감당할 수 없다는 미국인이 전체의 40%에 달한다. 저소득층에게 이것은 끊임 없는 불안의 순환이다.

캘리포니아주 스탁튼시는 일부 주민들의 경제적 취약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개선할 수 있도록 SEED(Stockton Economic Empowerment Demonstration)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올 2월부터 스탁튼시는 시민들의 소득 중간값인 4만6000달러 미만의 소득을 기록한 주민 125명에게 매달 500달러를 아무 조건없이 지급했다.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의 한 형태로, 정기적으로 돈을 주고 원하는 대로 쓰게 한다는 방식이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네트워크인 경제 보장 프로젝트 및 개인 자금 제공자들이 내놓은 1백만달러로 시작된 18개월 파일럿 프로젝트가 8개월차를 맞은 시점에서 첫 결과 보고가 발표되었다.

125명 중 43%는 현재 일하는 중이다.

20%는 장애가 있으면서 고용 상태가 아니다.

11%는 어린이나 고령의 친족을 돌보고 있다.

11%는 구직 중이다.

그외 학생 등을 제외하면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미고용 상태인 사람은 2% 미만이었다.

매달 지급되는 500달러는 직불 카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소비 내용을 추적할 수 있었다. 500달러의 지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식료품(40%)이었다. 24%가 월마트와 염가 판매점 등에서 사용되었다. 12% 가까이가 공공요금 지출에 들어갔으며 9%는 연료와 수리 등 차량 관련 요금으로 사용되었다. 보험, 의료비, 휴양 등이 기타 지출 내역을 기록했다.

그러나 40% 정도는 현금으로 인출되었거나 다른 계좌로 이체되었으므로,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입증되지 않은 증언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스탁튼은 기본소득을 실험해 보기 적합한 도시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인구 30만명의 도시 스탁튼과 실리콘 밸리는 거리상으로는 불과 몇 시간 거리이지만 부유함으로 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스탁튼은 재정 붕괴와 주택 위기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시 당국이 여러 해 동안 공공지출을 제대로 관리해오지 못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2012년, 스탁튼은 파산 신청을 한 미국 최대 도시가 되었다.

스탁튼은 회복 중이지만, 스탁튼의 빈곤율 22.4%는 미국 전체의 빈곤율 11.4%의 두 배를 넘는다. 스탁튼 소득 중간값은 전국 소득 중간값에 비해 1만 달러 이상 뒤처진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한 마이클 텁스 스탁튼 시장은 이번 파일럿 프로젝트의 결과가 빈곤은 빈곤층의 무책임함 때문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깨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과 마약 사용, 알코올 사용, 도박 등의 문제를 지닌 유색인종을 결부시키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이 돈을 그런데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있다.” 텁스 시장의 말이다.

마이클 텁스 스탁튼 시장
마이클 텁스 스탁튼 시장 ⓒASSOCIATED PRESS

자폐증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며 스탁튼의 파일럿 프로그램에도 참여한 로린 파라델라는 자동차 배터리를 갈아야 할 시점에 ‘마침 딱 맞추어’ 500달러가 들어왔다고 시티랩에 말했다. 새 차 계약금과 보험금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자신도 수혜자지만, 파라델라는 현금 지급 방식에 대한 비판이 왜 나오는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돈을 받는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술과 마약을 사는 데 써버릴 것이다, 비싼 옷이나 비싼 물건을 사는 데 써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돈을 우리 가족을 위해 썼다.”

이번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연구자 중 하나인 스테이시아 마틴-웨스트 테네시 대학교 사회복지 조교수는 그런 화법이 흔하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낭비)을 했기 때문에 쪼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살피면 …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우선 순위를 정하고 아주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가운데, 스탁튼의 이번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될지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핀란드부터 케냐까지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는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주목을 받으며 주류에 진입해왔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모든 미국인에게 매달 1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우며 민주당 대선 후보를 노리는 앤드류 양 등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있다.

스탁튼의 사례는 기본소득의 제한된 버전이다. 일단 기본소득 수급자가 125명에 불과하며, 소득이 낮기 때문에 선정된 이들이다. 또 평균 월소득이 1800달러 정도인 스탁튼에서는 의미 있는 금액이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는 매우 적은 지급액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보장해 준다기보다는 생명선에 가까운 금액이다.

Universal Basic Income (UBI) s written on a table during a session at the World Economic Forum (WEF) annual meeting in Davos, Switzerland January 23, 2018  REUTERS/Denis Balibouse
Universal Basic Income (UBI) s written on a table during a session at the World Economic Forum (WEF) annual meeting in Davos, Switzerland January 23, 2018 REUTERS/Denis Balibouse ⓒDenis Balibouse / Reuters

이러한 소득 보장이 스탁튼의 빈곤층에게 도움이 될지, 아직은 더 많은 정보를 기다려 보아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투명성을 위해(특히 스탁튼 주민들에게) 중간중간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2020년 12월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수급자들의 경제 및 취업 상태 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친 영향도 살필 예정이다.

“우리 모두는 미국 가정들이 엄청나게 불안한 일자리에서 일하느라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안다.” 마틴-웨스트의 말이다. 몇 달, 몇 년이 지나가며 이런 상황은 불안감을 낳는다고 마틴-웨스트는 말한다. 이에 따라 고혈압, 당뇨병 위험, 심장병 등의 위험이 증가하는 부정적인 결과가 생긴다.

“보장 소득으로 최소한의 밑받침을 제공하면 불안과 스트레스 수준, 육체와 정신적 건강에 변화가 생길 것인지가 관건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고,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더 행복하고 균형잡힌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의 5년 전 삶과 앞으로의 5년의 삶을 살펴 보장 소득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10년에 걸쳐 조망할 예정이다.

스탁튼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기본소득에 대한 다른 미국 도시의 전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제시 로스타인 공공정책과 경제학 교수는 의구심을 품는다. 미국 등의 국가에서 기본소득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논문을 쓴 바 있는 로스타인은 스탁튼의 SEED 프로그램은 보장 소득이 가계 월소득의 불안성을 줄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러나 로스타인은 “우리가 기본소득에 대한 중요한 의문이라고 파악한 것들에 대해 SEED 시도가 답을 주리라 보지 않는다. 보편적 효과, 장기적으로 가능할지, 프로그램에 필요한 세금 등은 알 수가 없다.”고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보장 소득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으며, 다양한 인구층에 어떻게 맞추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교수이자 스탁튼 프로그램의 주요 연구자인 에이미 카스트로 베이커는 이번 결과가 가치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 존엄, 수급 자격 기준, 미국 사회가 원하는 경제 형태에 대한 논의가 모두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본다.

“(빈곤층을) 시장에서 배제하고, 신분 상승에서 배제하고, 안전한 투자에서 배제하는 일이 100년 이상 반복된 끝에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이 경제에서는 체계적 불평등에서 우리를 꺼내줄 단 하나의 완벽한 정책적 해결책은 없다.”

 

*HuffPost US의 A California City Gave People $500 A Month, No Strings Attached. Here’s What Happened.를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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