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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그 남자가 결혼식에서 통곡한 이유

이 글을 지금 발리에 있는 통곡씨와 리나에게 바칩니다.

ⓒSB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며칠 전 이야기. 우리 부부의 첫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둔 토요일, 나의 베스트 프렌드 리나(가명)가 4년 반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식을 올렸다.

리나와 예비신랑 통곡씨는 여러모로 우리 부부와 운명공동체인 커플이었다. 내가 신랑과 연애를 시작하고 반 년쯤 지났을 때 리나와 통곡씨가 연애를 시작했고, 이후 우리 커플과 리나네 커플은 넷이서 술도 마시고 우리 신혼집에서 칩 깔아놓고 달건이 게임도 하는 등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1년 전 내 결혼식 날, 리나는 내가 던진 부케를 받았다. 그 이후 리나와 통곡씨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부케를 받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우리 부부가 이들의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

 축하해!

어쨌든 그런고로, 오랜만에 신랑과 한껏 하객원피스니 정장이니 하는 옷차림에다가 나는 귀걸이와 힐, 신랑은 넥타이와 구두까지 갖춰입고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은 성당이었고, 시간이 되자 외국인 신부님이 나오셔서 식을 시작했다. 

“자, 그럼 신랑 통곡 Leo와 신부 리나 Agata는 서로에 대한 혼인 서약서를 읽으십시오.”

신부님께서 정확한 발음으로 말씀하시며 이들에게 뭐라뭐라 써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성당 결혼식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독자님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원래 성당에서는 그렇게 한답니다. 암튼 통곡씨가 먼저 “저는 리나 아가타를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짠짠짠”하고 읽었고, 리나가 마이크를 받아들고 “저는 통곡 레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하고 읽기 시작했다.

“쟤 곧 운다. 울어. 어떡해.”

BGM: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슬픈 곡

리나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떨렸다. 그러잖아도 애초에 결혼식에서 울까봐 잔뜩 걱정했던 리나였다. “야, 넌 어떻게 결혼식에서 눈물 한방울 안 흘렸냐? 나 결혼식에서 엄청 울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던 리나가 생각났다.

불과 며칠 전에도 리나네 아버지는 집에서 ‘딸을 떠나보내는 편지’를 낭송, 새신부의 눈에서 폭풍눈물을 끌어내신 바 있었다. 심지어 리나는 내 결혼식에 나도 안 울었는데 자기 혼자 운 전력도 있는 눈물뿐인 바보였다. 괜히 저 멀리 보이는 리나 아버지의 뒷모습조차 슬프게 보였다.

“이제 Leo와 Agata, 각자의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리나는 울지 않은 채 인사를 마쳤다. 이어 그들은 신랑측 부모님을 향해 인사했다. 리나는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통곡씨가 눈물을 쏟았다.

갑자기??

통곡씨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통곡씨의 어머니께서 손수건을 건넸지만 눈물 몇 방울 닦는 걸로 통곡씨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통곡씨는 고개를 들어 높은 곳에서 우리를 굽어보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2천년도 더 전에 세상 떠나신 예수님께서 답을 주실 리 없었고 통곡씨는 아예 흐느끼기 시작했다.

신랑은 신났다. “찍어야돼! 이거 나중에 놀릴거야! 이건 평생 놀림감이라고!!”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가 들렸다. 통곡씨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그의 통곡은 계속됐다. 결국 그는 결혼식이 끝난 후에야 미소를 되찾았다.

문득 결혼식 당일에는 울지 않았지만 울 뻔했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2018년 9월, 혼배미사를 올리던 날…

나는 무교이고 신랑도 나일롱 교인이지만, 독실한 가톨릭이신 시부모님께서는 결혼식 전에 반드시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올리길 바라셨다. 그래서 가톨릭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찾아간 성당. 식은 간소하게 진행됐다.

“김현유씨는 XXX씨를 남편으로 받아들여 평생 어쩌구 저쩌구 하겠습니까?”

신부님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질문은 남편에게 향했다.

“XXX씨는 김현유씨를 아내로 받아들여 평생 어쩌구 저쩌구 합니까?”

신랑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슬쩍 신랑을 바라봤는데 눈가가 촉촉했다.

결혼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난 그 순간, 울컥했던 것이다. 그토록 마초적인 신랑인데도! 신랑은 오열하는 통곡씨를 놀리면서도, 만약 혼배미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결혼식 당일에 분명 눈물이 났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결혼식을 앞두고 혹시나 눈물을 흘릴까봐 걱정하는 여자들은 많지만 그런 남자들은 드문 것 같다. 나의 신랑도 결혼 전날 ”여보가 울면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고, 통곡오빠 역시 결혼식 전날 리나에게 ”결혼식 날 왜 울지?”라고 말한 바 있으니...

그러나 인륜지대사의 중대함 앞에는 성별이 따로 없는 듯하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신부들은 성적 고정관념을 버리고 혹시 터질 지 모르는 눈물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감사한 마음에 흘리는 눈물은 나쁜 게 아니니까! 다만 통곡오빠는 결혼식 이후 만인으로부터 본명 대신 김통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긴 했다. 평생 놀림감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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