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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와 검경 싸움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다시 봐야 할 영화 '부당거래'

'부당거래' 안 본 분 없으시죠?

11일 한겨레21은 ‘윤석열 검찰 총장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진술이 있었으나 묻혔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이 2013년 당시 수사기록에서 윤중천 씨의 압수된 전화번호부, 압수된 명함, 다이어리 등을 검토해 ‘윤석열’이란 이름을 확보하고 윤중천 씨를 불러 윤석열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후 보고서에 담았으나 이를 넘겨받은 검찰이 묻었다는 내용이다. 검찰의 머리를 노리는 폭로다.

같은 11일 버닝썬 게이트 시국에서 ‘경찰총장‘으로 거론된 바 있는 윤총경이 구속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 내용을 보면 ’경찰은 불구속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발견하지 못한 추가 혐의를 발견해서 구속영장을 신청해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경찰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경찰은 자신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라고 자백한 이춘재 소식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다. 10일과 11일 ‘이춘재가 화성 8차 피해 여자아이의 침대까지 정확하게 그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의 출처는 경찰관계자다. 각자가 흘리고 싶은 정보를 흘리며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검찰 개혁을 옹호하는 쪽과 이에 맞서 조직을 보호하려는 검찰의 한판 승부가 영화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검경 싸움의 양상을 현실에 버금가게 재밌게 축소해 그려낸 영화가 있으니, 바로 류승완 감독의 2010년작 ‘부당거래’다. 

부당거래
부당거래 ⓒCJ엔터테인먼트/넷플릭스 캡처

‘부당거래’에는 지금 나오고 있는 얘기가 대부분 나온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등장하고, 검거에 실패한 경찰이 등장하고, 가짜 범인을 ‘배우’로 만든 경찰이 등장하고, 검찰의 스폰서인 대기업 회장님이 등장하고, 이 검찰이 흘린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 의혹만으로 소설을 쓰는 기자가 등장한다.

부당거래의 이야기는 매우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비밀과 비밀을 파헤치는 양상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연쇄살인 사건 수사에 실패하고 유력한 용의자를 쫓다가 총으로 쏴죽인 경찰의 실수를 막기 위해 조직의 ‘해결사’로 등장한 광역수사대의 에이스 최철기(황정민)는 해동건설의 대표 장석구(유해진)를 사주해 아동 성범죄자 전력이 있는 한 남자를 지목해 진범 역할의 ‘배우’로 만든다. 이 과정을 지금 보면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당시 진범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8차 살인 사건을 ‘모방 범죄’로 결론 짓고 자백을 바탕으로 진범을 확정 지은 검경의 우매함을 드러낸다.

검찰에게만 기자가 붙어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류승완은 부당거래에서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XX일보’의 기자가 주양 검사(류승완)로부터 유흥 접대를 받고 주양이 불러주는 대로 의혹 기사를 터뜨려 경찰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는 현재 진행형인 조국 사태에서 검찰과 경찰이 각자의 입맛에 맞는 내용의 기사들을 각자 친한 매체를 통해 단독으로 빵빵 터뜨리고 있는 현상과도 매우 닮아 있다. 

조직을 위해 부패와 타락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찰 최철기와 태경 김회장으로부터 스폰을 받는 검사 주양(류승범)이 맞붙는 갈등 구조는 현재진행형인 검경 싸움의 축소판이다. 지금도 심심할 때마다 들리는 명대사는 현재 검경 갈등의 불씨가 뭔지를 보여준다. 

검사 주양(류승범) : 경찰이 불쾌하면 안 되지. 아~. 내가 잘못했네.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 아니, 우리 공수사관 정말 대단하시네. 아니 내가, 대한민국 일개 검사가 정말 경찰을 아주 불쾌하게 할뻔했어.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했구먼. 경찰들이 불쾌해할 수 있으니까 일들 하지 마. 경찰한테 허락받고 일해.

내 얘기 똑바로 들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부당거래
부당거래 ⓒCJ엔터테인먼트

한편 이 영화가 명작인 이유는 최철기와 주양 두 인물 사이에 선악의 밸런스를 매우 잘 맞췄다는 점이다. 최철기는 류승완의 다음 작품인 ‘베테랑‘에서 같은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 형사’와 너무도 다른 인물이다. 두 인물은 같은 광역수사대 형사고 배우가 같으니 얼굴도 같고 말씨도 같지만, 서도철은 재벌 2세를 때려잡는 선과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반면 부당거래의 최철기는 비경찰대 출신의 비주류로 자신의 매제가 해동 건설 장석구(유해진)에게 뇌물을 받은 사건으로 경찰 옷을 벗을 위기에 처하자, 장석구와 손을 잡고 범인 연기자를 만들어내는 악행을 저지른다. 이 악행을 지시하는 사람은 최철기의 선배이자 고위급인 강 국장(천호진)이다.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고, 비주류(최철기)를 ‘버려도 되는 카드처럼 사용‘하는 고위 경찰의 모습을 그려 경찰과 검찰을 ‘선과 악’의 선명한 구도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이다.

대립의 양상을 아주 똑 떨어지게 정리하자니 조금 무리가 있지만, 대략 지금 한국은 서초동과 광화문, 경찰과 검찰, 조국 옹호와 조국 반대, 386 옹호와 386 혐오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부당거래’의 줄거리와 결론은 묵시적이기 까기 하다. 결론은 스포일러이므로 적지 않는다. 아직 안 봤다면 한번 보자. 한번 봤다면 다시 보자. 두 시간이 훌쩍 간다.

아래는 한국 영화에 등장한 검사 연기 중 최고로 평가받아 마땅한 류승범의 주양 스페셜이다. 저작권이 문제가 될 법하지만, 2017년에 올라와 아직 잘리지 않은 것을 보면 저작권자가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을 보인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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