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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의 8차 사건 자백으로 경찰이 혼란에 빠진 이유

이미 범인이 잡힌 사건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지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강간·살해 당한 사건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수차례 발생한 탓에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몇차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총 열 건의 살인 사건 중 범인이 잡힌 사건은 단 한 건, 8차 사건뿐이다.

8차 사건은 그간 ‘모방범죄’로 분류돼왔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의 범행 수법이 피해자 입에 재갈을 물리거나 옷가지로 손발을 묶는 등 범인의 시그니처가 없다는 이유로 연쇄사건의 주범이 벌인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연쇄살인을 따라서 벌인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8차 사건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이라는 당시 기준 첨단 수사기법을 동원했다. 이 방법을 통해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모에 다량의 티타늄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화성 일대에서 기계수리점, 나염공장 등 티타늄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혈액형이 B형인 사람 51명을 용의 선상에 올려 조사했다. 그 결과 윤모씨의 체모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동일하다는 국과수 답변을 받았고 이듬해 7월 윤씨를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방사성동위원소의 함량이 12개 중 10개가 편차 40% 이내에서 범인과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에 따라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윤씨는 징역 20년으로 감형됐으며 2010년 5월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그리고 2019년 9월, 경찰은 부산교도소에 무기로 수감중이던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피의자로 특정했다. 이춘재는 지난 1일,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을 모두 자신이 벌였다고 고백했다. 30년 넘게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실마리가 드디어 잡힌 셈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뉴스1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춘재는 이미 범인이 잡힌 8차 사건마저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수사당국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다. 이춘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 경우 이춘재가 저질렀다고 자백한 다른 범죄도 허위 자백이 아니냐는 물음이 이어지게 된다. 만약 이춘재의 말이 사실일 경우 더 큰 혼란에 빠진다. 8차 사건으로 붙잡혀 수감됐던 윤씨가 그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실제 윤씨는 그간 자신이 강압수사를 당해 범행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사건 발생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에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 및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허위진술하도록 강요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심은 신빙성이 없는 자백을 기초로 다른 증거도 없이 유죄로 인정했다”며 재판이 불공정하게 이뤄졌음을 피력했다.

그는 살인죄로 수감 중이던 지난 2003년, 시사저널과의 옥중 인터뷰에서도 ”살인을 한 적이 없다. 피살자 오빠와는 친구 사이였지만 여동생을 본 적은 없다”며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범행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며 ”나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놈이 어디다 하소연하나. 그때 나는 국선 변호인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고도 말했다.

윤씨가 살던 동네의 지역 주민은 윤씨가 어릴때부터 한쪽 몸을 거의 못 쓰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자기 몸 하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인을 했겠느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며 “한 동네에서 범인이 나오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왔다는데 화가 날 뿐”이라며 윤씨의 주장을 거들기도 했다.

당시 윤씨를 8차 사건 범인으로 특정한 수사 방식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윤씨는 자신의 직업이 농기계 용접공이었을 뿐이라며 티타늄 검출로 인해 진범으로 지목된 것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해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방법의 신뢰도는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며 “같은 음식을 먹거나 유사한 환경에 사는 사람이면 성분이 비슷하게 검출될 수 있다. 가족이나 동네 주민, 직장 사람들에게서 성분이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도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은 화학반응을 통해 직업 정도를 파악하는 데 쓰였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신뢰도 때문에 용의자를 특정하는 수단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지금은 확실한 디엔에이(DNA) 분석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당시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체모가 나왔고 경찰이 용의자 1500여명의 체모와 함께 국과수에 제출했다”며 “방사성동위원소 검사로 한 명이 추려졌는데 그게 잘못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범이 이미 붙잡혀 복역까지 마친 화성 8차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이 다시금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민갑룡 경찰청장은 ”정밀하게 당시의 자료 등을 보면서 확인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자백의 신빙성과 객관성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 청장은 그러면서 “8차 사건 등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해서 다 규명하고, 사실이 밝혀지면 사실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다 할 것. 억울한 분이 있으면 해소하고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회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조사 과정에서 과거 경찰 수사의 강압적 부분 등이 드러난다면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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