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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한 경찰도 사과하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칠준 변호사는 누명 쓴 이들의 변론을 맡았다.

화성연쇄살인범이란 누명을 쓴 이들을 변호했던 김칠준 변호사는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나면 경찰은 반드시 억울한 고통을 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김 변호사는 3대 국가인권위윈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화성연쇄살인범이란 누명을 쓴 이들을 변호했던 김칠준 변호사는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나면 경찰은 반드시 억울한 고통을 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김 변호사는 3대 국가인권위윈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한겨레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무죄 확신은 있었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탓이다. ‘혹시 내가 변론했던 사람 중에 진범이 있었던 건 아닐까?’ 진범이 잡히지 않은 지난 30여년 동안 가슴에 품어온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일 유력 용의자가 모든 범행을 털어놨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김칠준 변호사(경찰청 인권위원장)는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살인자의 자백’을 들은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죠.” 

그는 화성연쇄살인 2차와 7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사람들을 변론했다. 2차 사건은 1986년 10월20일 권모(당시 24살)씨가, 7차 사건은 1988년 9월7일 안아무개(당시 52살)씨가 각각 피살된 사건이다. 이들은 ‘화성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었다.

1991년 경찰은 화성연쇄살인범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화성 지역에서 강간미수 혐의로 붙잡힌 박모(29살)씨를 화성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박씨는 화성 2차와 7차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고, 경찰서 소속 목사(경목) 앞에서 자백한 내용이 녹화돼 그대로 방송 등으로 보도됐다. 김 변호사는 “박씨의 변론을 맡았을 때 뭔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화성사건의 범행 수법과 일시, 장소는 또렷하게 자백하면서도 자기 아들이 불과 일주일 전에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접견 도중 박씨는 그에게 “위압적인 경찰의 태도에 겁이 나 거짓 자백을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경찰은 박씨를 일주일 동안 붙잡아놓고 화성사건의 사진첩을 반복해 보여주며 범행 현장 등의 정황들을 외우게 한 뒤 거짓 자백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박씨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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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화성사건과 관련해 특히 가슴 아픈 이가 떠오른다고 했다. 4차(1986년 12월14일)와 5차(1987년 1월10일)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김모(당시 46살)씨다. 1993년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뒤 여의치 않자 풀어줬다. 김씨는 1995년 김 변호사의 도움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이겼다. 그러나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란 멍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1997년 고문 후유증과 우울증 등을 호소하다 스스로 생을 내려놓고 말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김씨의 가족은 이후에도 “김씨가 화성사건 범인이다” “진범인 것을 숨기려고 아내가 남편을 독살했다”는 헛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김 변호사는 “당시 경찰이 미국에 사는 한 심령술사의 제보만 믿고 화성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김씨에 대한 강압수사를 해 벌어진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력 용의자가 자백한 상황에서 “경찰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화성사건 수사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고초를 당했습니다. 경찰이 이제라도 과학적 수사 기법을 동원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힌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제라도 과거 수사의 오점을 반성하고 누명을 씌운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화성사건의 수사 대상자는 2만1280명, 지문 대조는 4만116명이었고, 박씨와 김씨처럼 용의자로 몰려 조사받은 사람은 3000여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4명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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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