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스무 살 어린 남성과 데이트를 하며 느낀 것

나보다는 내 딸들과 가까운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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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뻘 남성과 데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내 여자 친구는 “그럼 너 쿠가(cougar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하 남성을 노리는 재력있는 여성)네!”라고 말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남성들이 예전부터 해오던 것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멸적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그 말에 나는 발끈했다.

20년의 결혼 생활 뒤 끔찍한 이혼을 겪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시 데이트를 할 준비가 되었을 때, 적합한 내 나이 또래(50대 중반)의 남성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들을 통해 만난 남성들 중 자기 집에서 파스타를 해주겠다, 와인 한 병을 들고 내 집에 오겠다고 전화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게 있어 그건 진짜 데이트는 아니었다. 내게 식사를 한 끼 사준 다음 내가 다음 날 저녁 식사를 요리해 주겠다고(그리고 훨씬 더 많은 걸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돈 많은 요트 타는 남성은 뭐라 설명할 수조차 없다.

온라인 데이팅으로 만난 남성들은 더 심했다. 자신의 현재 여성 관계나 아이 유무에 대해 노골적인 거짓말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나보다 상당히 젊은 사람을 원했다. 그리고 한 잔 하자고 만나자마자 자기 여성 상사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한 여성혐오자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친절하고 너그러운 이성애자를 만나고 싶다는 게 정말로 지나친 바람인가?

이 무렵 조지아주 사바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을 때 덜레스 공항에서 젊은 파일럿을 만났다. 아흐메드라고 부르겠다. 내가 비행기 상황을 알아보러 카운터에 다녀온 뒤, 매력적인 외모의 아흐메드가 내게 다가와 카운터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물었다.
“기계적 문제라네요.” 내가 답했다.

“내가 받은 소식에 의하면 기후 때문이라는데요.” 그는 내게 항공사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거짓말을 했군요.”

나란히 앉으러 걸어가며 아흐메드는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30세 정도로 보였다. 나보다는 20대의 내 딸들과 훨씬 가까운 나이였다.

이른 저녁이었다. 나는 가족들과 하루를 보낸 다음 차가 막히는 빗길을 2시간 운전해 공항에 온 뒤였다. 머리를 감거나 메이크업을 할 시간은 없었다. 레깅스와 펑퍼짐한 튜닉 차림이었다. 2년 동안 체중이 10kg 늘어난 다음 주로 이런 차림으로 지냈다. 내 최악의 외모라는 기분이었다.

반면 아흐메드는 딱 맞는 진과 티셔츠 차림이었고 몸매도 좋았다. 오늘 비행기를 여러 번 탔다고 했지만 산뜻한 모습이었다. 내 팔의 군살을 생각하며 몸서리치면서 그의 근육질 팔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지만 그가 내 어깨의 타투를 보고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눈치챘다.

내 팔에서 그의 주의를 돌리려고 나는 “사바나에 사세요?”라고 물었다.

“아뇨. 저는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이에요.”

그는 매년 받는 비행 트레이닝을 위해 사바나 근처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먈했다.

탑승 안내 방송 직전 그는 내게 “올드 핑크 하우스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제안에 놀랐지만 나는 수락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했지만,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잘생긴 남성이 사바나에서 제일 비싸고 로맨틱한 레스토랑 중 한 곳에 가자고 하는 초대에 별 믿음은 가지 않았다. 나를 잘 대해주지 않았던 어리석은 남성들과의 좋지 않았던 경험을 생각해보면, ‘훅업’ 문화에 익숙한 세대의 낯선 사람의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훅업 문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아흐메드가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한 것부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나이대 사람들은 데이트를 생략하고, 섹스로 저녁을 시작하고 가끔씩만 동거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혼이 내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나는 사랑과 구애를 굳게 믿었고, 망설여지긴 했지만 ‘안 될 것 있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탑승했고 멀리 떨어진 각자의 좌석에 앉았다. 착륙하자 내가 한 일의 현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차로 갔다.

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젊은 남성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준 거지?! 내 나이와 후줄근한 모습을 생각하면 그는 절대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데 자꾸 몽상에 빠져서 바보가 되어버리는 걸까? 그러나 그 날 밤 그는 내가 집에 잘 들어갔는지 문자로 물어보았다.

판타지에 끌려들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며 나는 다음날 아침 차를 몰고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도시를 빠져나가 조용히 쉬었다.

내가 집을 떠나있는 동안 아흐메드는 “안녕하세요? 별일 없길 바랍니다. 당신이 돌아와서 날 만나주길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내게 사진을 보내달라고도 했고(으앗!), 자기 사진을 몇 장 보냈다. 나는 미심쩍어하며 천천히 사진들을 봤는데, 고맙게도 그는 앤서니 와이너(주: 자신의 성기 사진 등을 문자로 보낸 미국 정치인)가 아니었다.

내가 집에 돌아온 뒤 아흐메드는 저녁 식사 데이트를 제안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길게 통화했는데, 난 이젠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젊은 사람은 더욱 그럴줄 알았다.

“게이트 담당 직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 여성에겐 원칙이 있구나, 나는 그런 여성을 좋아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내가 강하고 상황을 앞서서 주도하는 여성이고, 항공사 직원이든 데이트 상대든 그 누구의 거짓말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그런 점을 빨리 이해한 듯하여 마음속으로 그에게 가산점 1천점을 주었다.

이틀 뒤 우리는 올드 핑크 하우스에서 만났다. 아흐메드는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두었고, 일을 마친 뒤 다시 샤워할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미루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가 최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 듯하여 참 신선했다. 나도 그래볼까 싶었다. 그래서 몇 시간을 들여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적절한 드레스와 귀걸이를 골랐다.

아흐메드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로비에서 부드러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식당으로 들어가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로 갔다. 웨이터가 내 의자를 빼주는 동안 그는 서서 기다렸고, 내가 앉고 나서야 앉았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려고 몇 번 들렀지만, 우리는 대화에 깊이 빠져 메뉴를 여는 것을 계속 잊었다.

우리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글을 쓰고, 그는 전세계의 특화된 병원에 환자들을 데려다주는 의료 파일럿이었다.

그는 자신이 36세라고 했다. 내 나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이가 훨씬 많다는 건 분명했다. 그는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출장이 많다고 하며 ‘미성숙한’ 여성들이 그를 유혹하려 한 경험 몇 번을 이야기하며 자신은 그런 여성들은 피곤하다고 했다.

우리는 둘 다 자녀가 있고 이혼한 상태였다. 나는 늙어가는 내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흐메드도 자기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와 형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신의 도움과 감정적 지원이 어머니에게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고 했고, 남성이 여성을 그토록 숭배하듯 말하는 것은 들은 적이 없었다. 어쩌면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 같기는 하다.

“레스토랑이 닫습니다.” 몇 시간 뒤 웨이터가 알렸다. 우리는 대화에 너무나 깊이 빠져서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파일럿은 계산서가 테이블에 놓이기도 전에 재빨리 웨이터에게 카드를 건넸고, 나는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당연하죠.” 아흐메드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내 또래 남성과 데이트할 때 계산서가 오면 보통 불편하다. 이혼 후 데이트의 세계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여성들이 이루어낸 진전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생각하면 내가 계산을 하거나 더치 페이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가만히 있으며 데이트 상대가 계산을 할 이유를 찾으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해두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날 돌봐줄 남성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구식 로맨스, 진취적인 남성을 선호하는 내 취향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을 것이다.

밖에서 아흐메드와 나는 벤치에 앉아 키스했다.

자정 직전, 그는 내 손을 잡고 차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묵묵히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방금 경험한 꿈이 현실이었다는 사실에 기분좋은 아찔함을 느꼈다.

다음 날 우리는 함께 보낸 밤이 ‘놀라웠다’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내 남편을 포함해, 내가 만났던 내 또래의 (솔직히 말해) 정말 많은 남성들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는데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남성이 나를 이토록 잘 대해주었다는 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내 이혼은 강하고 자신감 있는 변호사이자 두 아이를 둔 아주 능력있는 어머니였던 나를 공포와 자기 회의에 시달리는 수척한 껍질만 남은 여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몇 년 동안 나는 화장을 할 때 거울을 똑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이 그정도로 강했다.

나는 나이가 들었다. 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이혼 후, 나는 더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브루클린의 집을 비웠다. 그때 내가 겪은 어수선하고 슬픈 일들 틈 속에서 예전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친구들이 내게 되찾으라고 하던 과거의 나였다.

정말 여러 해 동안 내 전남편의 나에 대한 평가가 짐이 되었다. 나는 자신에 대한 나의 생각을 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젊은 파일럿과의 데이트가 내가 오랫동안 무시해왔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볼 기회가 되었다. 나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우며, 함께 시간을 보낼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데이트 후 며칠 뒤 아흐메드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를 다시는 보지도, 연락을 받지도 못했다. 그건 전적으로 괜찮다. 세계 반대쪽에 사는, 나이가 나의 3분의 2인 사람과의 마법 같은 저녁식사 한번이 어떤 결과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이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아흐메드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내게 멋진 선물을 주었다. 그는 내 가치를 인지했고, 내가 그것을 인지하는 것도 도와주었다.

지금 나는 데이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온라인 데이트 계정도 닫았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남성은 고사하고, 내 또래의 데이트할 만한 남성을 만나게 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는데 남성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아흐메드와 같은 다른 남성(지구 반대편에 살지는 않는)이 있다면 장기 연애를 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쿠거’라는 단어는 나와 관계가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단어가 보여주는 정신과 태도는 포용한다. 여성들이 어느 나이대가 되면 좋을 때가 지났다는 말을 듣는 세상에서(그리고 그 나이대는 점점 더 내려가는 것 같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능력을 가치롭게 여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한 남성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나이가 몇 살이든, 누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또는 초대하지 않거나는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