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9월 20일 17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9월 20일 17시 46분 KST

흑인 분장 스캔들 : 트뤼도가 공들여 쌓아온 이미지가 무너져 내렸다

트뤼도는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

John Woods via Getty Images
WINNIPEG, MB - SEPTEMBER 19: Canadian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addresses the media regarding photos and video that have surfaced in which he is wearing dark makeup on September 19, 2019 in Winnipeg, Canada. Three separate incidents came to light yesterday where Trudeau was wearing dark makeup as part of a costume while attending events while he was a student or a teacher. (Photo by John Woods/Getty Images)

토론토 -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포용과 다문화의 세계적 리더라는 공적인 이미지를 잘 가다듬어왔다. 그러나 트뤼도가 얼굴을 갈색으로 칠하고(brownface) 터번을 쓴 인종차별적 사진이 18일 밤(현지 시각)에 공개되자 그 이미지는 산산조각나 버렸다.

밴쿠버 명문 사립 학교의 2001년 졸업앨범(yearbook)에는 당시 교사였던 트뤼도가 ‘아라비안 나이츠’ 테마 파티에서 손과 얼굴을 갈색으로 칠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려있었다. 곧 두 번째 이미지가 등장했다. 고등학교 장기 자랑에서 아프로 헤어와 흑인 분장(blackface)를 하고 자메이카 민요 ‘Day-O’를 부르는 사진이었다.

그리고서는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뤼도가 흑인 분장을 한 영상이 공개됐다. 1990년대초에 촬영한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인데, 얼굴과 팔을 짙게 칠한 트뤼도가 두 팔을 위로 뻗고 있다. 트뤼도 측은 이 영상이 진짜라고 인정했다.

트뤼도는 19일 두 번째 사과를 발표하며 “이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피부색이나 역사, 출신, 언어, 종교 등을 이유로 매일 이런 차별을 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진 여러 층위의 특권들에서 그 사실을 보지 못했고 깊이 사과한다.” 트뤼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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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s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poses for a photo for the upcoming election in Truro, Nova Scotia, September 18, 2019. REUTERS/John Morris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 사건은 캐나다 시민들과 전 세계에 충격을 선사했다. 다음 달 21일에 치러질 총선도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도 포용적이고 진보적인 지도자라는 평판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던 트뤼도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캐나다가 국가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선한 국가‘다, ‘캐나다인들은 선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다고 생각한다.” 워털루대학교의 교수이자 반(反)인종차별 활동가인 흑인 캐나다인 캐시 호가스의 말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건, 그와 같은 인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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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이며 정치 전략가인 자인 벨지는 트뤼도의 인종차별적 사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람은 다양성과 포용에 정치력을 엄청나게 쏟았다. 사람들은 그 두 사실을 조화시키길 힘들어하고 있다.” 벨지가 말했다. ”그는 왜 진작에 털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좌파 신민주당 대표이자 펀자브(인도-파키스탄 국경 지역)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자그미트 싱은 18일 트뤼도의 사진들에 대한 진심이 담긴 성명을 냈다.

“모든 아이들, 이걸 겪으면서 자랐고 이제 어른이 된 사람들, 아직도 인종차별의 고통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가 말했다. ”캐나다와 당신 자신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들 수 있다는 걸 안다. 당신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며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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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P Leader Jagmeet Singh speaks during a town hall meeting in Sudbury, Ontario, on Tuesday, Sept. 17, 2019. (Adrian Wyld/The Canadian Press via AP)

 

19일 이 사진들에 대한 기사가 뉴욕타임스, BBC, 알자지라, 가디언 등의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에는 ‘캐나다의 좌파는 쥐스탱 트뤼도를 버려야 한다’는 제목을 단 칼럼이 실렸다.

뉴욕타임스는 이 ‘심각한 스캔들’은 트뤼도 측이 꼼꼼하게 만들어낸 “사면초가에 처한 전 세계 리버럴들의 빛나는 대변인”이라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고 썼다.

2015년에 집권한 이래로 트뤼도는 세계 언론들이 즐겨다루는 대상이었다. 특히 그는 미국에서 각광받았다. 그가 양극단의 분열을 조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뤼도는 총리 취임 한 달 만에 아내와 함께 패션잡지 보그 화보 촬영을 했다. 몇 달 뒤에는 미국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60 미니츠’가 트뤼도를 집중 분석했다. 2017년, 미국 잡지 롤링스톤은 트뤼도를 표지에 싣고 ‘북극성’이라고 추켜세우며 “왜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 없는가?”라고 질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이제 트뤼도가 잘생기고 매력적인 ‘미래’ 정치인의 자리를 넘겨받고 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트뤼도의 부친인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는 1971년에 연방 정부가 다문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다양한 사회라는 캐나다의 정체성을 굳히는데 일조했다. 쥐스탱 트뤼도는 2015년 집권 이후 직접 시리아 난민6만명 가까이 받아들였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원주민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정부의 과거 행동을 사과하기도 했다. 취임 직후 젠더 평등 내각을 구성했고, 그 이유를 묻자 “지금은 2015년이잖아요”라고 답했던 것도 널리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후 트뤼도는 원주민들의 권리와 인종차별에 맞서는데 있어서 보다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진보성향 연구기관 브로드벤트 연구소의 수석 정책 분석가 브리태니 앤드류-아모파는 “그의 말과 행동이 맞지 않았던 때도 있었고, 그가 발표했던 정책들 중 밀려나거나 약해진 것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트뤼도의 대응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트뤼도가 마리화나로 인해 기소된 사람들의 기록을 말소해주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소외된 커뮤니티들에게 주로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인종차별 스캔들은 트뤼도의 재선 가능성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트뤼도는 자유당 대표 자리에서 사임하기를 거부했다). 10월21일 총선까지 선거운동 기간이 한 달 정도 남은 지금, 트뤼도는 보수당 대표 앤드류 쉬어와 박빙인 상황이다. 9월 초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보수당이 2%p 우세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2월까지만 하더라도 트뤼도의 재선에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에너지기업 SNC-라발린이 얽힌 논란이 캐나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부정평가 응답이 긍정평가보다 10%p 이상 높아졌다. 이 논란은 트뤼도 내각에서 가장 존경받던 장관 중 하나인 조디 윌슨-레이불드 전 법무장관에 의해 촉발됐다. 총리실에서 SNC-라발린이 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를 당하지 않도록 하라고 자신을 압박했다고 밝힌 것이다.

캐나다 행정부에서 역대 최고위직에 오른 원주민 여성이기도 했던 윌슨-레이불드 전 장관은 결국 자유당에서 축출 당했는데, 이는 포용성에 대한 트뤼도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또 하나의 암시였다.

“그는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려스러운 행동 패턴을 보여왔다.” 호가스 교수가 말했다. ”조디 윌슨-레이불드에 대한 그의 처사는 내게 있어 적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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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board urging Canadians not to re-elect Canadian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in the upcoming federal election on 31 August 2019 in Toronto, Canada. (Photo by Creative Touch Imaging Ltd./NurPhoto via Getty Images)

 

윌슨-레이불드 본인도 18일 ”끔찍하다”며 인종차별 사진을 언급했다. “처음 봤을 때는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 나라에서 인종차별과 차별을 경험한 원주민이라는 게 굉장히 자랑스럽다. 권한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저런 일을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백인이 갈색과 검은색으로 얼굴을 분장하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무대에서 “유색인종들을 단순화하고 비하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호가스 교수는 설명한다.

캐나다 무슬림 전국 위원회의 무스타파 파룩은 “인종차별의 역사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건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흑인 분장은 1820년대에 미국에서 엔터테인먼트에서의 인종차별의 형태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도 그와 같은 긴 역사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노예재도와 원주민 탄압으로 세워진 나라이자 백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주류 계층을 장악하면서 힘을 강화한 나라라고 앤드류-아모파는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흑인 분장은 흑인들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며 인기를 얻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맥길대학교는 1841년부터 2016년까지의 흑인 분장 사례 350건 가량을 추적했다. 캐나다 국가를 만든 작곡가가 1800년대 중반에 흑인 분장 쇼를 공연하고 다녔던 것부터 캐나다 서남부 에드먼턴의 빵집에서 몇 년 전에 ‘블랙 피트’(주: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흑인 캐릭터로, 스페인에서 온 무어인이라는 설정이다.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하여 블랙 피터를 연기했다. 최근엔 논란이 되고 있다)를 환영했던 것까지의 사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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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da's Prime Minister Justin Trudeau waves goodbye after completing his Atlantic Canada tour in in Truro, Nova Scotia, September 18, 2019. REUTERS/John Morris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스캔들 전까지 대부분의 캐나다 시민들은 트뤼도가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후보인 쉬어에 비해 더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영향력이 크다고 믿고 있었다.

“그(트뤼도)는 선의를 기반으로 큰 지지를 확보했다.” 설문조사 업체 앵거스 레이드 연구소의 이사 샤치 컬이 말했다. “이제 문제는 그런 깊은 (지지)기반을 통해 그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인지다.”

트뤼도는 지난 번 선거에서 자유당의 ‘큰 빨간 텐트’ 아래 진보적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모아 예상치 못했던 승리를 거뒀으나, 이번 스캔들이 그 지지기반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컬은 말했다.

‘햇볕정책’(sunny ways)과 변화에 대한 그의 약속이 진보적 유권자들을 투표로 이끌었다.

“지난 24시간 동안의 일은 어느 쪽에도 좋지 않다.” 컬이 말했다. ”진보 좌파가 쥐스탱 트뤼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음이 떠나서 투표에 불참할까?”

그러나 캐나다 선거 결과에 늘 큰 영향을 미쳐왔던,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많고 유권자수가 많은 퀘벡주 유권자들의 반발은 덜할 수도 있다.

이미 이 스캔들에 대한 퀘벡 언론들의 관심은 조금 잦아들었다. 퀘벡 주도의 지역신문 세 곳은 19일자에서 나란히 셀린 디옹 콘서트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다른 한 신문은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 코끼리 사진을 1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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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 Leader Justin Trudeau makes a policy announcement and holds a media availability at an electric vehicle car dealership during a campaign stop in Trois-Rivieres, Quebec, on Friday, Sept. 13, 2019. (Sean Kilpatrick/The Canadian Press via AP)

 

CBC의 제이 턴불 기자에 따르면, 프랑수아 레고 퀘벡 주지사는 영어로 말할 때는 트뤼도의 의상이 나쁜 선택이었다고 말했지만 똑같은 얘기를 프랑스어로는 반복하지 않았다. 퀘벡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쓰인다.

레고는 총리가 사과를 한 만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때”라고 말했다.

트뤼도는 퀘벡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논쟁적인 법안, 즉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히잡, 키파, 터번 같은 종교적 상징을 입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 대해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트뤼도는 이 법에 반대한다고는 말했으나, 자신의 연방 전부가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퀘벡 주민 60% 이상은 이 ‘세속주의’ 법을 지지한다. 트뤼도는 캐나다의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 퀘벡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인들은 그가 과거에 했던 인종차별적 행동과 총리로서 했던 일들을 저울질 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벨지는 말한다. “이 사진과 영상들로 트뤼도와 그의 모든 행동들이 전부 헛소리가 되는 건가? 아니면 어렸을 때 무지해서 했던 잘못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총리로서 충분히 보여줬다고 볼 것인가?”

 

* 허프포스트CA(캐나다)의 Justin Trudeau’s Blackface Photos Force Reckoning On Canada’s Global Imag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