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0월 중으로 조기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을 의회에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브렉시트 정국에 또 하나의 큰 파도가 몰아치게 됐다.
존슨 총리의 제안은 3일(현지시각) 의회에서 쓰라린 패배를 겪은 뒤에 나왔다. ‘노딜(no deal)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영국 보수당 의원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켜 야당 의원들의 편에 선 것이다.
이날 하원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을 차단하는 법안을 상정하도록 하고, 의회가 브렉시트 관련 의사일정 주도권을 확보하도록 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찬성 328표 대 반대 301표였다.
보수당에서 당론을 어기고 야당 편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21명에 달했다.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 데이비드 고커 전 법무장관 등도 가담했다. 이들은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존슨 총리의 계획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날 표결에 따라 하원은 4일 노동당 힐러리 벤 의원이 상정한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을 상정해 표결에 부치게 됐다. 이 법안은 보수당과 노동당 의원들이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내놓은 합작품이다.
이 법안은 10월19일까지 유럽연합(EU)과 합의를 맺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노딜 브렉시트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이다. 두 가지 모두 실패할 경우에는 현재 10월31일로 예정되어 있는 브렉시트를 내년 1월말까지 추가로 연기해달라고 EU에 요청하도록 했다.
이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올해 초 통과됐던 결의안에서 보듯 ‘다른 건 몰라도 노딜 브렉시트 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쪽으로 다수 의견이 모아져 있고,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는 당 대표(존슨 총리)의 위협에도 기꺼이 반란에 가담한 여당 의원들의 규모가 이날 표결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브렉시트) 협상의 주도권을 EU에 넘겨주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존슨 총리는 이날 표결 직후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 나라의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조기총선 구상을 밝혔다. 날짜는 EU 정상회의 개최 전인 10월14일 또는 15일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중이다.
2011년 제정된 영국의 의회고정임기법(Fixed-term Parliaments Act)에 따르면, 총리가 단독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소집하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총선이 실시되려면 하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이 동의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애초 조기총선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노동당은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이 일단 통과된 뒤에야 조기총선을 검토할 수 있다는 쪽으로 돌아섰다. 조기총선이 소집돼 의회가 해산되면 ‘노딜 브렉시트 저지법’이 폐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법률로 확정되려면 상원 의결과 여왕의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