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9월 03일 15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9월 03일 15시 11분 KST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할 수만 있다면 물러나고 싶다'고 말했다

캐리 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선택지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했다.

Kai Pfaffenbach / Reuters
Hong Kong's Chief Executive Carrie Lam holds a news conference in Hong Kong, China, August 27, 2019. REUTERS/Kai Pfaffenbach

홍콩 (로이터) - 궁지에 몰려있는 홍콩 지도자 캐리 람이 지난주 재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담긴 녹취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홍콩을 뒤덮은 정치적 위기에 불을 붙여 ”용서할 수 없는 큰 혼란”을 초래했으며, 선택할 수만 있다면 물러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람 행정장관은 현재의 사태가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중국의 국가안보와 자주권에 관한 문제로 비화된 탓에 현재 자신에게는 위기를 해결할 여지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로 한 이날 발언에서 ”내가 만약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제일 처음 할 일은 깊이 사과하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람 행정장관의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고뇌에 찬 이날 발언은 또한 1989년 천안문광장 시위 이후 중국에 닥친 가장 큰 정치적 위기인 홍콩 사태에 대응할 방법을 고심하는 중국 지도부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지난 6월부터 홍콩은 종종 폭력시위로 번진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아왔다. 홍콩 정부가 범죄 혐의자를 중국으로 송환해 중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법안은 무기한 보류됐으나 대규모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폐기 등으로 요구사항을 확대했으며, 홍콩 정부는 현재까지 이같은 양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대규모 시위가 계속됐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 정부가 아직 ‘터닝 포인트’에 이르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10월1일로 예정되어 있는 국경절 행사에 앞서 홍콩의 위기를 끝내라는 그 어떠한 데드라인도 설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중국이 홍콩 거리에 인민해방군 병력을 투입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도 말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중국이 유혈이 낭자했던 천안문 시위 진압때처럼 시위 진압을 위해 홍콩에 병력을 투입할 것인지 주시해왔다.

람 행정장관은 중국 지도부를 언급하며 ”세계 경제대국인 두 나라 사이의 전례없는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홍콩 사태가) 일종의 주권과 (국가)안보라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커지게 된 이상 자신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헌법에 따라 두 개의 주인, 즉 중국 정부와 홍콩 시민들에 복무해야 하는 행정장관에게 주어진 정치적 운신의 폭은 안타깝게도 매우, 매우, 매우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세 명은 약 3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람 행정장관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을 확인해줬다. 로이터는 람 행정장관의 발언을 녹음한 24분짜리 파일을 입수했다. 이 간담회는 그가 홍콩의 ”사회 각계각층”들을 만나 진행해왔다는 ”비공개 세션”들 중 하나였다.

람 행정장관 대변인은 로이터의 질의에 2주 전 람 행정장관이 재계 인사들과의 간담회를 비롯해 두 건의 행사에 참여했으며, 두 행사 모두 비공개였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행사들에서 행정장관이 말한 것에 대해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다.” 대변인이 말했다.

중국 정부 국무원 소속의 고위급 기관인 홍콩·마카오 사무소 측은 로이터의 질의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로이터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Kai Pfaffenbach / Reuters
Hong Kong's Chief Executive Carrie Lam casts her shadow as she holds a news conference in Hong Kong, China, September 3, 2019. REUTERS/Kai Pfaffenbach

 

‘무력진압의 대가는 너무 클 것’

홍콩 시위는 2012년 집권이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통치체제에 있어서 가장 큰 여론의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 시 주석은 또한 미국과의 긴장 고조, 성장이 둔화된 경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두 나라가 서로 맞불을 놓으며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대만 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견해차,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움직임 등은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더 악화시켜왔다.

람 행정장관의 발언은 홍콩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사실상 중국에게 결정권이 있음을 보여준 지난 금요일(8월30일) 로이터 보도와 일치한다. 중국 정부는 분쟁을 진화하기 위해 람 행정장관이 최근 제안한 범죄인 인도법 완전 폐기 등의 조치를 거부했다고 관련 내용을 잘 아는 세 명이 로이터에 말했다.

이 보도에 대한 질문에 중국 외교부는 중국 정부가 람 행정장관의 법안 보류 결정을 ”지지하고,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답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를 ”가짜”로 일축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람 행정장관은 지난 6월15일 법안을 보류했다. 몇 주 뒤인 7월9일에는 법안이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경찰 폭력진압에 대한 조사와 민주적 개혁 등으로 요구사항을 확대한 시위대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는 또한 홍콩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개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녹음파일에 담긴 람 행정장관 발언의 어조는 공개 석상에서 그가 보여준 강철 같은 이미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번 사태가 개인적으로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할 때는 목이 메는 듯 했다.

″행정장관으로서 홍콩에 이처럼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람 행정장관의 말이다.

그는 시위 진압을 위해 홍콩에 병력을 투입할 경우 중국의 명성에 큰 손상이 가해질 수 있음을 중국 정부가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대가가 너무 클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중국의 국제적 인지도를 신경쓴다.” 람 행정장관이 말했다. ”중국이 그냥 경제대국이 아니라 책임있는 경제대국으로서 (지금의) 국제적 인지도를 얻고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그런 모든 긍정적 성과들을 위해서라도 (무력 진압은) 분명 그들의 계획에 있지 않다.”

그러나 람 행정장관은 관광객 감소나 기업공개(IPO) 같은 자본유입 기회를 잃는 등 홍콩에 경제적 고통이 있더라도 중국이 현재의 상황을 ”오랫동안 견뎌낼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Kai Pfaffenbach / Reuters
Hong Kong's Chief Executive Carrie Lam holds a news conference in Hong Kong, China, August 27, 2019. REUTERS/Kai Pfaffenbach TPX IMAGES OF THE DAY

 

‘가장 큰 슬픔’ 

그밖에도 람 행정장관은 홍콩 사법질서의 중요성과 안정 회복,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개선할 필요 등도 언급했다. 발언 뒤에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람 행정장관은 지금은 ”자기연민”에 빠질 때가 아니라면서도 ”(시위대와 맞서) 최전선에 서있는 경찰관들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정부에 분노한, 특히 나에게 분노한 평화 시위대 대다수를 진정”시키지 못함에 따른 깊은 좌절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정치적 상황(사임)을 제안”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슬픔”이라고 덧붙였다.

람 행정장관은 또 이번 사태가 자신의 개인적 삶에 끼친 영향도 언급했다.

″요즘에는 밖에 나가기가 극도로 어렵다.” 그가 말했다. ”거리나 쇼핑몰에 나가본지도 오래됐고, 미용실에도 갈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소셜미디어에 퍼질 테니 말이다.”

그는 자신이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들어내면 ”(시위대의 상징인)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이뤄진 대규모 군중들을 보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민의연구소(香港民意研究所) 여론조사 전문가 로버트 청에 따르면, 취임 초기만 하더라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람 행정장관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이후 홍콩을 통치했던 네 명의 지도자들(본인 포함) 중 가장 인기 없는 인물이 됐다. 

Kim Kyung Hoon / Reuters
A placard depicting Hong Kong Chief Executive Carrie Lam is seen on a wall as protesters attend a demonstration in support of the city-wide strike and to call for democratic reforms outside Central Government Complex in Hong Kong, China, August 5, 2019. REUTERS/Kim Kyung-Hoon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다’

람 행정장관은 2017년 3월 홍콩 지도자로 선출됐으며, ”사회 통합”과 여론 분열 치유를 약속했다. 홍콩은 중국이 지배하는 그 어느 곳보다도 여전히 가장 자유로운 도시다. 영국과 합의한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원칙에 따라 홍콩은 중국 본토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많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 중 하나는 영국식의 독립된 법원과 사법체계다.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법이 그와 같은 자유의 보루를 침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홍콩 정부 홈페이지에 게재된 일대기에 따르면, 독실한 가톨릭교인인 람 행정장관은 SFCC(St Francis’ Canossian College)를 졸업했다. 매일 일곱 식구를 돌봤던 모친이 그의 롤모델이자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일대기는 적었다. 선거 홍보물은 람 행정장관이 ”보통” 가족 출신이며 2층 침대에서 숙제를 하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홍콩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그는 홍콩 공무원으로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다. 친중국파 위원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는 2017년 3월 그를 홍콩 지도자로 선출했다.

집권 초기 람 행정장관은 여러 차례 논쟁적인 정책을 추진해 홍콩 시민들의 비판을 초래했으나 중국 지도자 시진핑으로부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취임 당일이었던 2017년 7월1일, 람 행정장관은 하얀색 안전모를 쓰고 시 주석과 함께 막 지어진 강주아오 대교를 시찰했다. 홍콩과 주하이, 마카오를 잇는 이 다리는 홍콩과 중국 본토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다리다. 비판자들은 이 다리가 중국 남부 지역과의 물리적 연계를 강화함으로서 홍콩의 자주권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자 빅터 맬릿을 사실상 추방한 것도 홍콩과 해외에서 비판을 초래했다. 홍콩 정부는 맬릿이 홍콩 외신기자클럽에서 홍콩 독립파인 홍콩민족당 지도자와 함께 행사를 개최한 이후 그의 비자 연장을 거부했다. 람 행정장관과 정부는 이후 이 정당을 금지하고 범민주파 의원들의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비판을 불렀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12월 베이징 방문 당시 람 행정장관의 리더십을 추켜세웠다. 당시 중국 국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 중앙정부는 람 행정장관의 업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 로버트 청은 그동안 논쟁적인 많은 정책들을 밀어붙이는 데 성공했던 덕분에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 역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그는 자신감을 가졌다. 시위가 처음 시작됐을 때도 그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틀 내로 이걸 통과시킬 것이고, 다 끝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청이 말했다. ”그러나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난주 간담회에서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법은 자신이 추진한 것이며, 이는 ”홍콩 (사법)체제의 법적 구멍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건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강요된 게 아니다.” 그의 말이다.

그는 이 법안을 추진하려 했던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이건 매우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람 행정장관의 말이다. ”우리는 홍콩 시민들 사이에 번진 중국 본토에 대한 이 거대한 공포와 불안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포착할 만큼 세심하지 못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경찰은 게속해서 ”이 폭력을 고조시키는” 사람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애초 홍콩 정부는 이 집단의 규모를 1000~2000명 수준으로 추산했었다.

람 행정장관은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언급하는 건 ”나이브”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결국에는 홍콩이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다. 많이, 많이 아플지는 몰라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