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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인권침해사건 수사, 왜 윗선 밝히지 못했나

조사에 출석한 경찰 진술을 살펴봤습니다.

ⓒ뉴스1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 형식적 조사 흔적

“인권침해 윗선 규명 못한 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마감했다.” 지난달 28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1년 6개월여의 활동을 마무리한 뒤 나온 대부분 언론의 평가였습니다. 민갑룡 경찰청장으로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에서) 경찰의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답변을 이끌어낸 것 자체는 성과이지만,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윗선이 없는 한계 탓이었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대체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갑룡 청장과 경찰조직은 여전히 경찰 개혁의 의지가 부족한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존재했는가. 1년 6개월여의 조사 시간을 주었는데도 인권침해 윗선을 밝혀내지 못했다면 앞으로 이런 위원회 계속 만들어봤자 조사 변죽만 올리고 끝나는 것 아닌가. 경찰 개혁이 제대로 완수되어야만 검경 수사권 조정도 가능하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건가.

조사위원회는 “진상조사위가 법률이 아닌 경찰청 훈령에 근거해 활동해 현직 경찰관 조사는 수월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조사 협조를 받기가 어려웠다”고 조사 한계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과연 경찰 내부의 조사는 수월했을까요? 조사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경찰 외부인의 비협조만 탓하기엔 문제가 커보였습니다.

아무리 경찰 외부인이 조사에 비협조적이더라도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사건의 경우에는 목격자나 남겨진 자료, 진술 등이 많기 때문에 경찰 내부에 대한 조사만 철저히 해도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실체적 진실을 찾아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기자로 일하면서 제 취재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사건이 드러나면 제일 곤란해질 사람들은 취재에 비협조적인 경우가 태반이고, 당연합니다. 그래서 주로 활용되는게 복수의 ‘내부 고발자’의 협조입니다. 그들 덕에 당사자가 입을 닫아도 어느정도 실체적 진실의 아귀를 맞추어 고발보도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의심해보았습니다. 경찰 외부인들이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 뿐 아니라, 경찰 내부에서조차도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관련해 조사에 출석한 경찰 진술의 내용부터 살펴봤습니다. 문건 등의 내용을 종합 검토해보니, 조사에 응한 경찰의 입에서 ‘통상적인 지시였습니다’ 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민중 대회 때 강신명 경찰청장은 직접 지휘의 책임이 있던 서울경찰청과 별도로 경찰청 상황실을 차려놓고 경비국장 외에도 차장,국장,관리관급 16명과 경비, 정보 교통안전과·계장 4명을 참석시켜 하루를 보냈습니다. 또 경찰청 대책실 뒤 별도 공간을 마련해 경비 기능 실무자 5명 이상을 배치해 서울청 지휘망을 청취했습니다. 만약 이게 통상적인 조처라면, 그 이전의 어떤 집회에서 경찰청장이 이런 식으로 상황실을 만든 적 있는지 경찰은 답변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진술서에 그런 건 없습니다. 즉, ‘통상적인 지시였습니다’라는 말의 속내는 ‘보는 눈들이 있어서 조사에는 응하지만 답변은 하기 싫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경찰이라면 이렇게 조사했을 겁니다. 2015년 11월14일 민중대회 당일 경찰청 상황실에 강신명 청장의 지휘 아래 모였던 ‘차장,국장,관리관급 16명과 경비, 정보 교통안전 과·계장 4명. 경찰청 대책실 뒤 별도 공간에서 서울청 지휘망을 들은 경비 기능 실무자 5명’의 진술을모두 받습니다. 강신명 청장은 이날 어떤 업무지시를 하였고 혹은 직원들이 이를 엿듣거나 지켜본 것 있는 지를 확인합니다. 20명이 넘는 경찰의 진술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합니다. 20명이 모두 강신명 전 청장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 하는게 아니라면,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확인합니다. 그러면 강 전 청장의 그날의 행적과 책임 소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강신명 전 청장에 대한 이런 식의 진술 조사는 빠져 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관련 조사위가 조사한 관계자는 총 72명입니다. 제법 많은 수의 관계자를 조사했지만 이중 ‘빨간 우의 사건’(※빨간 우의 남성이 백남기 농민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경찰이 이미 확인해놓고도,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신청서에는 빨간 우의 남성 탓에 다친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시한 것)의혹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핵심 관계자인 서울종로서 형사과와 서울청 수사본부 관계자 등은 전화청취만 하고 말았습니다. ‘백남기 사망대비 대검찰청 회의’에 참석한 경찰청 수사국 간부 2명에 대해서도 전화청취만 하고 말았습니다. 살수차를 운전했던 경장 2명은 아예 조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경찰 정보국 자료는 거의 백퍼센트 안줬다”

조사위가 요청한 경찰 내부 자료라도 경찰은 제대로 주었을까요?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가 ‘리포액트’에 전한 증언은 이렇습니다.

“조사위원들이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힘들어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경찰청 정보국의 자료는 거의 백퍼센트 못받는거였고요. 수사국의 자료도 거의 못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경비국과 감찰실은 처음에는 자료 제공을 주저하면서 국회에 제출된 것보다도 부실한 자료를 조사위에 주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나마 자료제출에 협조적인 국실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조사 내용과 과정이 이런데도, ‘경찰 조직 바깥의 외부인들에 대해선 협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해명만 해도 되는 걸까요. 저는 경찰 내부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경찰 설명대로 경찰 조직 바깥에 있는 주요 책임자들은 비협조로 일관했습니다. 강 전 청장은 서면 답변에 그쳤습니다. 조사위에서 여러 경로로 출석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했고 그나마 보낸 서면 답변에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정도 내용으로 채웠다고 전해집니다. 구은수 전 서울청장은 조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가 작성된 과정에 개입된 서울대병원 핵심 관계자도 조사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서울대 병원의 여러 관계자들은 처음에 개인적으로 조사위원들에게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가 막상 조사 날짜가 됐을 때는 비협조했다고 합니다. 서울대병원의 책임자가 병원 직원들에게 조직적으로 협조 거부를 명령한 것은 아닌지 조사위는 의심했을 정도라고 전해졌습니다.

2017년 5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하기 전에 경찰 내부 스스로부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경찰은 경찰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에 대해 조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실하게 조사하고 책임자 윗선을 밝혀내지 ‘않은 채’ 수사권 조정을 위한 도구로만 조사위를 활용했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리포액트’가 취재한 내용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보내어 가을 국정감사 때 민갑룡 경찰청장으로부터 추가 답변을 이끌어내도록 하겠습니다.

 ​* 여러분의 후원으로 기사가 제작되는 행동탐사언론 리포액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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