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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폭거' :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의회를 중단시켜버렸다

'노딜 브렉시트'를 막으려는 의원들의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다.

  • 허완
  • 입력 2019.08.29 18:15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영국 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가 영국 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Guy Smallman via Getty Images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에서 전례 없는 정치적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진보성향의 언론 가디언과 보수성향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을 모아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으로 지칭한 총리의 행동 때문이다. 

우선 간략한 맥락은 이렇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유럽연합(EU)을 탈퇴(노딜 브렉시트)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은 이를 저지할 방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었다.

이는 노딜 브렉시트가 막대한 경제적·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자명한 우려 때문이다. 브렉시트 자체에 대한 찬반이나 이념을 떠나 많은 의원들은 이같은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

반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난 7월 취임일성으로 ‘노딜 브렉시트가 되더라도 무조건 예정된 날짜(10월31일)에 EU를 떠난다‘고 공언한 바 있다. EU를 ‘압박’하며 재협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EU는 끄떡하지 않고 있다.)

Britain's Prime Minister Boris Johnson speaks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end of the G7 summit in Biarritz, France, August 26, 2019. REUTERS/Dylan Martinez
Britain's Prime Minister Boris Johnson speaks during a news conference at the end of the G7 summit in Biarritz, France, August 26, 2019. REUTERS/Dylan Martinez ⓒDylan Martinez / Reuters

 

의회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으려 하고, 총리는 그런 의회가 영 마뜩찮다. 그렇다면 방법은? 의회를 멈추면 된다! 그게 바로 존슨 총리가 28일(현지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승인이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단행한 조치의 핵심이다. 9월 중순부터 10월14일까지 의회 회기를 중단(정회)시켜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의원들은 브렉시트가 불과 2주 가량 남은 시점까지 아무런 의사일정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결의안이나 법안 등을 논의하고 표결에 부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우리나라의 부활을 위한 대담하고도 야심찬 국내 입법 아젠다”를 새롭게 논의하기 위해 의회 회기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R.I.P 민주주의. 2019년 8월28일.' 
'R.I.P 민주주의. 2019년 8월28일.'  ⓒNurPhoto via Getty Images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총리의 결정을 ”헌법 유린”으로 규정했다. ”어떻게 포장하든, 지금의 이 정회의 목적은 의회가 브렉시트를 논의하고 이 나라의 방향을 정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임이 너무나도 명백하다.”

버커우 의장은 ”의회를 중단시키는 것은 민주적 절차 및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로서 의원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를 비롯한 야당 대표들은 긴급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제 의회가 불신임투표로 이 정부를 끌어내리고, 시민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선거를 실시할 길을 열어야 할 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에서 ”의회를 잠재우려는 용납할 수 없는 시도”를 맹렬히 비판하며 이렇게 밝혔다.

특히 FT는 불신임 투표에 따라 노동당 코빈 대표가 임시로 정부를 이끌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여야 의원들이 뜻을 모아 불신임 투표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FT는 자신들이 ‘사회주의자’로 간주하는 코빈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언론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자',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같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모습.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자',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같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모습.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Barcroft Media via Getty Images

 

가디언은 사설에서 ”지금은 견제와 감시라는 의회민주주의가 힘차게 작동해야 할 때”라며 ”영국 민주주의의 전통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악해야 할 일”이라고 적었다.

″(의회) 정회는 10월31일 브렉시트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중요한 시기에 의회를 잠재우려는 장치다. 존슨은 하원에서 탈퇴합의(Withdrawal Agreement)에 대한 다수 지지를 자신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것에 대한 표도 분명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입법부의 철저한 검토를 일체 생략해버리겠다는 것이다.” 가디언이 존슨 총리의 조치를 비판하며 쏟아낸 말이다.

영국에서 내각(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조기총선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다만 이 때도 곧바로 총선이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현 정부는 14일 안으로 연정 등을 통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거나 기존 정부에 대한 하원의 신임을 다시 구할 수 있다. 

만약 이 때에도 하원이 ‘불신임’을 결정하면 의회는 해산되고 조기총선이 열리게 된다. 관련 법률에 따라 최소 25일(평일 기준)의 선거운동 기간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실제 총선은 한 달여 뒤에 치러지게 된다.  

보리스 존슨 총리 탈을 쓴 한 시민이 영국 총리관저 앞에서 '영국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문구가 적힌 비석을 앞에 두고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보리스 존슨 총리 탈을 쓴 한 시민이 영국 총리관저 앞에서 '영국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는 문구가 적힌 비석을 앞에 두고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런던, 영국. 2019년 8월28일. ⓒASSOCIATED PRESS

 

한편 의회 정회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분노한 시민 수천명이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노동당 내부조직 ‘모멘텀’ 등이 주최한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지지정당이나 이념을 떠나 ‘민주주의 유린’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자신을 자유민주당 지지자라고 소개한 제임스 허친슨씨는 ”독재적인 총리를 몰아내기 위해 불신임 투표가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허프포스트UK에 말했다. ”그렇게 해서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이 총리가 되더라도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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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렉시트 #유럽연합 #보리스 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