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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26일 17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8월 26일 17시 52분 KST

조국과 평범한 수저들

청와대와 여당의 대응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후보자의 용기에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 후보자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말할 때다. 2011년에는 저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청문위원장한테 “성직자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얘기는 못 한다”고 주의를 받은 후보자도 있었다. 나는 살면서 부끄러운 일이 한둘이 아닌데,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과연 용자가 아닌가. 그다음은 그 후보자가 무슨 얘기를 하든 듣고 싶지 않고, 들어도 믿을 수 없다. 맹자의 수오지심을 얘기할 필요도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상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는 말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사회는 법으로만 운영되는 게 아니지 않나. ‘법을 잘 지켰다’는 뜻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뭔가 법 정신에 맞지 않거나 법의 틈새를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챙기고선, 법적 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법의 외피를 내세워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임을 모르는 이런 염치없는 발언에서, 선량한 시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읽는 일이다. 법은 사회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고, 그래서 민심을 읽는 일에 법의 잣대만 들이대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2주 넘게 정치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그러한 경우다.

가장 먼저 불거진 사모펀드 투자 논란에 대해 그는 “모두 합법적이고, 공직자윤리법을 준수했다”고 밝혔다. 공직자윤리법은 주식 직접투자를 규제한다. 팔거나 백지신탁해야 한다. 그는 민정수석이 된 뒤 주식을 팔았고, 그 돈이 투자금으로 쓰였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이 법은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위 공직자의 사모펀드 투자 자체가 낯설었고, 이해충돌 우려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뒤이어 불거진 조 후보자의 딸 대입 논란은 진보개혁 세력을 포함한 사회 권력층이 ‘일상적인 기득권’을 어떻게 누려왔는지 보여줬다. 그가 과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해온 올곧은 발언들이 소환됐다. 그러나 그는 “딸은 열심히 노력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와 배우자는 관여한 바가 전혀 없으며, 논문에 대한 모든 것은 지도교수의 판단”이라며 “부정입학 의혹은 가짜뉴스”라는 말로 법적 잣대를 내밀었다.

당·청의 대응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청와대 쪽에선 교육부 장관 후보가 아니라 괜찮다거나, 실정법상 문제될 건 없다거나, 딸 문제에 후보자 본인이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는 등의 얘기가 들려왔다. 21일 청문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연 기자간담회에선 “특혜가 아닌 보편적 기회”라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민심 파악을 못하는 이들은 정치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

조 후보자는 22일 “당시 제도가 그랬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며 나 몰라라 하지 않겠다”고 몸을 낮추었다. 이틀 뒤엔 사모펀드와 웅동학원 사회환원을 발표했다. 타이밍을 놓친 ‘승부수’가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다.

정말 궁금한 것은 여권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이해했느냐다. 현재 가진 정치·경제적 조건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젊은 너희들도 노오력하면 돼), 그런 사회적 자본을 잘 활용해 이익을 챙기는 일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이들(법적으로 문제없잖아), 이런 ‘평범한 금수저’들이 사회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나쁜 금수저’들과 싸우고 있다는 이유로 진보인 척하고 있다는 걸 ‘평범한 수저’들은 생생히 목도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불신의 눈’으로 쏘아보고 있다.

선택은 조 후보자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조 후보자는 24일 “아이 문제에는 안이한 아버지였다”면서도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기회는 평등하지 못했고, 과정도 공정하지 못했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고 있는 이들이, 그가 내놓은 장문의 입장문을 보고 신뢰감을 다시 가질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촛불을 들었던 평범한 수저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한가 말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