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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들의 ‘제비뽑기’

'마녀사냥'이라고만 간단히 부르긴 좀 어렵다.

ⓒgremlin via Getty Images

미국의 호러(horror) 작가 셜리 잭슨(Shirley Jackson, 1916-1965)의 ‘제비뽑기’(The lottery, 1948)는 아주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단편 ‘찰스’(Charles, 1948)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다.

로리Laurie는 이제 유치원에 들어간 사내아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 꼬마는 점점 무례하고 거칠게 변한다. 방과 후, 로리는 엄마에게 학교에 찰스Charles라는 아이가 선생님께 무례하게 굴다가 혼났다고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찰스 이야기뿐이다. 엄마도 아빠도 도대체 오늘은 찰스가 또 무슨 나쁜 일을 하여 선생님께 혼났는지 궁금해지고, 아이가 물들까 걱정된다. 로리의 엄마가 말했다. “로리의 거친 행동을 좀 보세요. 말도 이상하게 하고. 찰스라는 아이가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러자, 로리의 아빠가 엄마를 안심시키려 하며 말한다. “세상에는 찰스 같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어. 나중에 그런 사람을 만나느니 차라리 지금 만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찰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유치원 학부모회의(PTA)에 들른 로리의 엄마는 찰스의 엄마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에게 찰스에 대해 말을 꺼냈다. 선생님이 대답했다. “찰스라고요? 우리 유치원에 찰스라는 아이는 없는데요.”

셜리 잭슨의 소설 ‘제비뽑기’ 속 이 마을(the village)은 해마다 축제 아닌 축제를 치른다. 하지만, 행운의 제비뽑기가 아니다. 표기된 제비를 뽑은 최후의 한 명은 투석형(投石刑)에 처해진다. 제비뽑기 도구인 검은 상자(the black box)를 바꾸자는 이야기는 매해 나오지만, 여전히 검은상자도, 제비뽑기를 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주위 마을은 그만 두었다는 소문도 들리지만, 제비뽑기를 하면 옥수수가 풍작(‘Lottery in June, corn be heavy soon’)이라고들 믿고 있다. 약 300명이 제비뽑기를 마치는 시간은 2시간도 안 걸린다. 1년에 약 2시간 걸리는 행사. 자기가 뽑지 않으면 그만이다.

6월 27일.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한편에는 이미 돌들이 잔뜩 쌓여있다. 설거지 하다가 지각할 뻔 했다며 미소로 너스레를 떨며 마지막으로 군중 속으로 합류했던, 허칫슨(Hutchinson) 부인은 자신의 남편 빌(Bill)이 제비뽑기에 당첨되자 외쳤다. “공평하지 않아요.”(It wasn’t fair.)” 하지만, 규칙대로 5명의 허칫슨 가족은 다시 2차 투표에 들어간다. 빌, 테시Tessie, 빌의 세 아이들(빌 주니어Jr., 데이브Dave, 낸시Nancy)는 다시 제비뽑기를 하였다. 허칫슨 부인 테시Tessie가 최종 당첨되자 다시 외쳤다.

“공평하지 않아요, 옳지 않다구요”(It isn’t fair, it isn’t right). 77번째 제비뽑기까지 살아남았던 최고령 참석자 워너(Old man Warner)가 주위 사람들이 속히 돌을 던지기를 독려한다. 허칫슨 부인 테시의 꼬마 아들 데이브조차도 돌을 하나 든다. 그녀는 공평하지 않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들의 돌들은 그녀를 향해 덮쳤다(Mrs. Hutchinson screamed, and then they were upon her).

누구나 자기의 잘못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찰스 탓을 한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각자의 찰스가 있다. 하지만, 찰스를 탓하고 비난하는 바로 당신이 그 찰스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언가가 닥치기 전까지는 검은 상자를 바꾸거나 고치려는 노력도, 제비뽑기라는 관습을 중단하려는 생각을 않는다. 필요성을 애써 부인한다. 20세기 초반의 소설 속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마녀사냥’이라고만 간단히 부르긴 좀 어렵다. 모두가 동의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 일종의 게임이고 의식(ritual)이다.

공평하지 않다고 최후에 외쳤던 허칫슨 부인 테시도, 조약돌을 집어든 그녀의 꼬마 아들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고 독려하면서 자신은 절대 제비뽑기에 걸릴 리 없다고 믿고 있는 워너 노인까지도. 마을을 떠나지 않는 한 좋든 싫든 모두 그 게임의 구성원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허칫슨 부인 테시도 실은 찰스다. 21세기 초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마을(village)은 심한 내우외환(內憂外患) 중이고, 그 마을 사람들 마음 속의 수많은 찰스(Charles)들은 이미 호러(horror) 속에서 8월의 제비뽑기를 하고 있다. 행운의 제비뽑기였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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