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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치매 노인이 요양원 입소 하루 만에 피멍이 든 채 발견됐다

요양원에 설치된 CCTV는 모형이었다.

 

 

눈 주위에 피멍이 들어 있는 박씨의 모습. 가족 제공.
눈 주위에 피멍이 들어 있는 박씨의 모습. 가족 제공. ⓒ한겨레

88살 치매 할머니가 요양원 입소 하루 만에 눈 주위에 피멍이 든 상태로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서울 양천구에 있는 ㅁ요양원에서 노인을 폭행한 것 같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요양원 관계자들을 수사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이 요양원에는 현재 66명의 노인이 입소해 있다.

경찰과 가족의 설명을 종합하면, 4급 치매를 앓고 있는 박모(88)씨는 지난 14일 ㅁ요양원에 입소했는데, 이튿날 가족 면회 과정에서 오른쪽 눈 부위에 심하게 멍든 모습이 발견됐다. 가족은 같은 날 박씨를 퇴소시킨 뒤 지난 20일 경찰에 요양원 원장 ㄱ씨를 수사해달라고 고소장을 냈다. 경찰 관계자는 “ㄱ씨는 22일 경찰 조사에서 사고를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박씨가 폭행당한 게 아니라 입소한 날 저녁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서 다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치매로 인해 자신의 부상 경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계단에서 넘어졌다’ ‘갑자기 별이 번쩍했다’ 등의 말만 되풀이할 뿐 의미 있는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토대로 폭행 여부를 조사하려고 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박씨가 입소한 ㅁ요양원 6층에 설치된 CCTV 5대가 모두 가짜(모형)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요양원은 고소 다음날인 지난 21일 뒤늦게 새로운 CCTV로 모두 교체했다”며 “ㄱ씨는 지난해 11월1일 이 요양원을 인수하면서 가짜 CCTV를 설치했는데, 사건 발생 이후 CCTV의 필요성을 느껴 뒤늦게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규칙 등에 요양원 등 장기요양기관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가짜 CCTV라고 해도 금전적인 이익을 얻은 게 아니어서 사기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도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박씨의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의 사위인 하모(60)씨는 “입소할 때 당연히 CCTV 영상이 촬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가짜라니, 증거 인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폭행이 없다고 밝혀져도, 입소자가 다쳤을 때 치료하고 가족에게 고지했어야 하는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에게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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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노인 #요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