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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 기원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교수와의 인터뷰.

  • 허재현
  • 입력 2019.08.22 15:47
  • 수정 2019.08.22 16:12

동아시아 전문가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글로벌사이버대학 교수(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한국인만 모르는 더큰 대한민국 등 저자)와 함께 통일과 관련한 책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잘 모르는 더큰 북한, 더큰 통일‘(가제) 이라는 책인데, 올 가을 출간 예정입니다. 책 내용중 ‘리포액트‘에 미리 소개해드리고 싶은 글이 있어서 이렇게 올려드립니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한 ‘통일대박론’의 역사적 뿌리에 대한 최초의 분석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아무 생각 없이 ‘통일 대박’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교수는 통일 대박이라는 표현이 일제 강점기 때 만주국과 조선을 통합하려는 제국주의적 욕망을 담아 사용된 저속한 단어라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한국 사람들조차 잊어버린 통일 대박 단어의 기원입니다. 이 주제는, 특별히 유튜브 영상으로도 제작되었습니다. 

2014년 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처음 주창했다.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통일은 우리 경제가 실제로 대도약할 기회다.” 이게 박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남과 북이 통일 된다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그런 논리일 것이다. 나는 처음에 ‘대박’이라는 단어를 듣고,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국정 목표로서 너무 경박한 용어 아닌가 싶어 처음에 놀랐다. 통일이라는 게 단순히 경제적 필요때문에 준비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 이제 남한 사람들에게 통일은 겨우 저정도의 과제로 다가오는 것인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머릿속에서 ‘대박’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역사·사회적 기원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분명 조선의 현대사를 연구하며 어딘가서 봤던 단어인데 뭐였는지 처음에는 잘 기억이 안났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릎을 탁치며 떠올렸다. ”보로모케 (떼돈벌이·ぼろ儲け)! 1930년대 만주개발론자들이 쓰던 바로 그 단어잖아! 조(선)-만(주) 통일은 대박!”

그렇다. 이번 글은 통일 대박론의 역사·사회적 맥락의 기원이 바로 제국주의자들의 만주 개발론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설명을 하려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것을 알고 사용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이 단어의 기원을 한국 사람들이 제대로 안다면 ‘통일 대박론’이라는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1930년대 지금의 만주 지역에는 일본이 침략하여 세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만주와 조선을 하나로 통일시키려 했었다. 즉, ‘조만일여(朝滿一如)’론이다. 그러면서 만주의 활발한 개발을 위해 조선의 자본가들이 많이 건너가 투자를 하도록 유도했다. 조선총독부가 계획을 발표하면 연일 조선의 신문에는 만주 개발을 찬양하는 글들이 실렸다. 조선의 자본가들에게 만주의 석탄자원 등의 채굴에 참여하고 철도와 기타 부동산, 공장 등에 투자해 ‘대박‘나라고 홍보했었다. ‘만한 실업협회’ 따위가 앞장섰다. 조선과 일본의 자본가들은 만주와 조선이 통일되어 하나가 되면 자본의 투자, 즉 만주에 대한 수탈이 더욱 쉬워질 것으로 여겼다.

당시 친일 작가 이광수가 조선일보에 쓴 만주 관련 글을 살펴보자. “우리는 만주 여행은 과거의 유적을 방문하고 감동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만주의 중대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었어요. 그 비교할 수 없는 비옥한 토지는 우리를 놓을 수 없어요. 지하자원은 끝없는 보물.“

이것을 보면, 당시 만주 개발론자들이 만주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다. 그저 자원을 개발해 어떻게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것이었다. 실제 만주개발에 참여하라는 신문 광고에는 ‘일확천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만주와 조선의 평범한 민중들이 어떻게 질적으로 풍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볼까 하는 철학 따위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이러한 만주개발에 대한 조선 지배 계급의 인식은 ‘대일본 만주국의 유산‘(고단샤,2010)이라는 책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일제 때 만주군 군관학교를 다녔던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11월 일본을 방문해 기시 노부스케를 만난다. 기시 노부스케는 1936년 만주국 정부의 산업부 차관이었고 1957년에는 일본의 총리(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이기도 하다)가 되기도 했던 자다. 그때 기시 노부스케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만주 개발 5년 단위 계획’이 실제로 잘 안되었던 것을 언급했고 박 대통령은 “한국은 열심히 하고 있다. 일본의 명치유신 같은 정신을 갖고 꼭 빈곤에서 탈출해 강한 나라가 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만주국에서 못해낸 경제발전론을 박정희 대통령이 이어받겠다고 하자 기시 노부스케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1930년대 만주국에서는 부동산의 개념이 바뀌었다. 당시 오랫동안 같은 땅에 농사를 지으면 과거에는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아 농민들을 함부로 내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농장의 개념이 부동산으로 바뀌면서 그때부터는 땅주인이 농민더러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만 하는 법이 생겼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조선땅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만주에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의 뜻을 이어서 그런 것일까. 박정희 정부 때 남한의 부동산 개발도 비슷한 논리로 가속화 됐다.

1930년대 만주 개발의 수혜는 누가 다 가져갔을까? 만주의 평범한 농민들이 만주 개발로 부자가 되었을까? 결국 부자가 된 건 조선과 일본의 자본가들이었다. 만주 주민들의 균등한 삶의 질의 향상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일제 때 부자가 된 일본 사람들을 비난하지만 조선의 자본가들, 즉 친일파의 길을 걸어 부자가 된 이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조선의 자본가들 역시 만주의 자원과 만주 사람들의 피를 빨아 부자가 되었다. 만주를 개발한 수익으로 조선과 만주의 평범한 사람들이 부유해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조선-만주를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개발해 경제대박을 내자‘고 주장했던 만주개발론을 보고 따랐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비슷한 ‘통일 대박론’을 들고나왔다. 통일을 그저 경제발전의 논리로 국한시키는 그 철학에도 놀랐지만, 아버지 때의 만주 개발 선전용어였던 ‘대박’이란 단어를 비슷하게 따온 것에서도 놀라웠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이 대박이란 단어의 역사적 맥락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이 대박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의외라는 반응이 거의 전부였던 것 같다.

만주와 조선을 통일하고 만주의 자원을 수탈해 부자가 되려 했던 일본과 조선의 자본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대박‘이란 단어를, 남한의 대통령이 통일을 언급하며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 민중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부적절한 단어이다. 설사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박’이란 단어가 일제 때 어떻게 사용되었었고 북한이 어떻게 오해할 수 있는지 참모들은 주의를 주었어야 한다. 북한 민중들은 남한의 자본가들이 남북통일로 북한의 자원을 수탈하는 것만 계획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전에 몽고에 ‘한-몽 평화협력 회의’ 참석차 방문한 적 있다. 그런데 실제 논의가 된 것은 남한의 자본이 어떻게 몽고의 자원을 개발해 공장을 만들고 이런 따위들이어서 크게 실망했었다. 몽고와 한국은 민족의 기원이 같은데 그저 한국 사람들은 몽골이라는 대박을 더뜨려 어떻게 돈을 벌어볼까에만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자본 앞에 민족 전체의 발전 따위는 없어보였다.

지금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태도도 이와 비슷해보인다. 대박이란 단어를 써 국민들에게 통일관을 설명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는 문제가 있다. 통일은 박을 터뜨려 보물이나 얻고자 하는 그런 단기적 과제가 결코 아니다. 북한 사람들을 마치 동아시아 노동자 비슷하게 부려 먹어 어떻게 돈이나 벌어볼까 생각하는 따위로 통일을 접근하면 결코 안된다. 그건 그냥 자본주의 식민지 확장에 불과하다. 한민족 전체에 불행이다.

내 우려가 너무 앞선 것일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도 노골적으로 ‘대박’이란 단어만 쓰지 않았지 통일에 대한 기본 철학은 박근혜 정부와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남북 정상회담 때 데려가는 기업인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그저 자본의 이익 창출 논리대로만 움직이며 사는 대기업 총수들이 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북한을 자본주의도 계획경제도 아닌 제3의 방식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 경제 운동가들은 동행하지 못한다. 일본, 미국, 중국, 남한의 자본은 철도·도로 등 인프라, 자원 개발 등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내용이 뭔지,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이어서 중요한 지점이 빈부격차 문제다. 남북 모두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과 부자들 사이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1980년대 남부의 보수적인 주에선 노조를 말살하는 법률이 있었다. 이 법률의 최종 목표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였다. 이것과 비슷하게 북한에 적용될 나쁜 노동 정책을 남한에도 도입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남한 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할 때 남한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할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낮으니 남한의 최저임금도 내리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에서 벌어지게 될 개발 방식은 남한의 노동자들에게도 결국 영향을 줄 수 있다.

원래 나는 2007년 한국에 온 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안했다. 북한 전문가가 많은 데다 나는 지식도 없어 남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자원개발, 값싼 노동력 활용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이 계속 나와 나도 뭔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특히 남한에서 미세먼지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북한에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하다니 놀랐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해서는 안된다. 남한에 여러 사회 문제를 일으킨 경제 개발 방식을 그대로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게 남한 자본가들과 그들에 둘러싸인 남한 정부의 인식이다. 북한도 남한처럼 대형마트가 골목 상권 다 장악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다 망하는 식으로 개발되는게 그게 한민족의 미래인가?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를 위촉했다. 한반도 발전에 대해 투자자와 자본가들의 시각에서 낸 보고서만 읽을 가능성이 높은 그런 사람이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이라는 것은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들고나온 ‘통일 대박론’을 계승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글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 여러분의 후원으로 기사가 제작되는 행동탐사언론 리포액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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