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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31일 10시 00분 KST

이별의 기술 : 이 반려인들이 펫로스 증후군에 대처하는 자세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극복한 반려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A씨
A씨 반려견 

 

”아이가 이제 아프지 않고 편안한 건 너무 좋은데... 가장 힘든 건 이 아이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 그 생각만 하면 미치겠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어요.”

40대 여성 A씨가 사별한 반려견을 떠올리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는 티슈를 손에 들어 눈물을 닦았으나,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기억은 그만큼 고통스러웠다.

30대 직장인 남성 B씨는 ”‘둥이‘가 병으로 떠난 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둥이’는 그가 8년 동안 함께한 토끼의 이름이다. 그는 주변에 이러한 아픔을 공감해줄 사람이 적다고 했다. ”누군가한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모임을 찾았어요.”

두 사람은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겪는 중이다. 조금은 생소한 ‘펫로스 치유모임’에 참석하게 된 이유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은 종종 이런 모임을 주관한다. 일대일 상담도 이뤄진다.

허프포스트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에서 열린 펫로스 모임 현장. 조지훈 원장과 모임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은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반려인들이 모였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다.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눈물을 감출 길은 없었다. 지난 17일, 허프포스트는 곁에서 조용히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은 종종 폄훼되고 무시된다. ”누구나 펫로스 증후군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은 아직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이날 모임을 주관한 ‘안녕’의 조지훈 원장이 말했다.

펫로스를 극복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과의 추억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게 하나 있다고 조 원장은 말한다. ”반드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거쳐야 해요.”

직장인 B씨
B씨 반려토끼 '둥이'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꺼내놓았다.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고통을 극복한 경험을 나눴다. 울다가, 웃었다. 

”편지를 쓰고 나면 마음이 나아지더라고요.” A씨가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꿈에서라도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편지를 계속 썼는데, 최근에 꿈에 나타났거든요. 아이가 털을 날리면서 저한테 해맑게 달려오더니 안기는 거예요. 털도 깨끗하고, (사별 직전의) 앙상한 모습도 아니고 한창 건강한 모습이었어요.” 

″그 꿈을 꾸고 난 뒤 한결 편안해졌어요. 이젠 눈물이 매일매일 나지는 않아요. 그렇게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A씨가 한층 차분하게 말했다.

어떤 사람은 운명처럼 반려동물을 만나고, 누군가는 예고 없는 이별을 겪는다. 어쨌든 우리는 그 시간들을 견뎌내야 한다. 허프포스트는 반려동물과 사별한 다른 반려인들을 수소문해 그 경험을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일부 인터뷰는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소개한다.

직장인 C씨
C씨 반려견 '삼돌이'

 

직장인 C(남·38)씨에게 반려견 ‘삼돌이’는 가족이자 친구였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취업 스트레스도 심하고 심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에 반려견 삼돌이를 만났어요. 삼돌이를 만난 뒤 집안 분위기가 아주 밝아졌었죠.”

어린 시절을 함께한 반려견 ‘초코’를 떠나보낸 최지예(여·18)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가끔 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 방에서 혼자 울고 있으면 부르지도 않았는데 옆에 와서 앉아 마치 위로라도 해주는 듯 있어줬거든요. 그땐 그게 어찌나 힘이 됐는지... 초코는 저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어요.”

최지예 씨
최지예 씨 반려견 '초코'
직장인 E씨
E씨가 제일 좋아하는 봉봉의 사진(왼쪽), E씨가 봉봉의 사료 속 씨를 키운 것으로 나중에 봉봉의 간식, 그리고 노자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반려동물과의 만남은 우연을 빙자한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직장인 E(여·35)씨는 햄스터 ‘봉봉’을 어느 추운 겨울 밤 길거리에서 만났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앞서 가던 행인분이 길에서 무언가를 줍다가 다시 제자리에 놓더라고요. 호기심에 뭔가 싶어 봤는데 작고 하얀 햄스터였어요. 추운 겨울 어린 햄스터를 길에 두고 갈 수 없어 집에 데리고 온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일러스트레이터 D(여·31)씨는 8년을 함께 지내온 반려묘 ‘큐’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입양처가 없어 임보처를 전전한다는 소식에 충동적으로 입양한 고양이였거든요.” ‘큐’는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그의 삶에 끼어들었다. ”겁도 많고 사람도 무서워해서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D씨가 말했다.  

D씨
무지개다리 건너기 딱 한 달 전, 티비를 보고 있는 D씨 옆에 와서 누웠던 큐의 모습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의 수명은 길어야 13년, 고양이는 15년 남짓에 불과하다. 나이가 들면 각종 질환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활동성도 눈에 띄게 떨어진다.

반려동물이 어느날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일수록 그 고통은 더 크다. 

”(반려묘) 큐는 몸이 아픈 아이였던 터라 마음 한켠으로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죽음은 정말 갑작스러웠어요.” D씨가 말했다. 그는 큐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두 시간가량 괴로워하다 제 곁을 떠났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슬픈 일이 되고 말았어요.” 

”무지개다리 건너기 딱 한 달 전에 티비를 보고 있는 제 옆에 와서 눕는 거예요. 정말 가슴 벅찬 행복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큐가 마지막 선물로 준 행복 같아요.” D씨가 회상했다.

C씨는 마지막 가족 여행을 준비하다 갑작스럽게 삼돌이를 떠나보냈다.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안락사를 시키는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많이 고통스러운 상태라고...그래서 마지막으로 삼돌이 데리고 가족여행 한번 하고 안락사 하기로 어렵게 결정을 하고 병원에 하루 입원을 시켰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삼돌이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결국 마지막 가족여행은 하지 못하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죠..” 

프리랜서 F씨
F씨 반려묘 '왕자' 

 

프리랜서 F(여 ·33)씨는 9년간 함께해온 반려묘 ‘왕자’를 먼저 보냈다. ”누군가 쇠꼬챙이 같은 거로 제 온몸을 다 찢는 것 같은 느낌? 아니면 무거운 쇳덩어리가 온몸을 누르는 것 같았어요. 갑자기 그렇게 가버리니 숨도 안 쉬어지고 정말 미칠 것 같고... 저 스스로를 굉장히 원망했어요.”

많은 반려인들은 사별 후 죄책감에 시달린다. 펫로스 모임에서 만났던 30대 남성 B씨도 그랬다. ”둥이가 원래 소리를 안 내는데, 가는 날 너무 괴롭게 울부짖는 거예요. 그날부터 계속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김혜인씨
김혜인 씨 반려견 '루이' 추모 공간 

 

″자식이 죽었는데 극복할 수 있는 부모는 없지 않을까요. 그냥...너무 슬프고 무너지는 거 같은 느낌이 무뎌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F씨가 반려묘 왕자를 그리며 말했다. 

디자이너 김혜인(여·27)씨는 반려견 ‘루이’를 떠나보낸 뒤, 집 한 켠에 추억의 공간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루이와 관련된 물건이나 사진만 봐도 눈물이 쉴새 없이 쏟아져서... (루이 물건을) 한동안 잠시 상자에 정리해뒀거든요. 시간이 조금 지나니 물건이나 사진을 꺼내보는 게 괜찮아져서 집 한켠을 ‘루이의 코너’로 만들어 꾸몄어요.”

D씨도 반려묘 ‘큐’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유골함 옆에 사진을 세워뒀다. 직접 그림도 그렸다. ”큐가 보고 싶은 마음을 그림으로도 풀었어요. 행복해 보이는 큐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고 싶어졌거든요.”

D씨
D씨 반려묘 '큐' 추모 공간(왼쪽), D씨가 직접 그린 '큐'의 그림 

 

반려동물이 떠난 상실감에 새로운 식구를 입양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거치는 게 좋다. ”애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아이를 데려오면 그 아이를 대체물처럼 느끼거나 (기존 아이와) 비교하며 차별할 수 있어요.” 조 원장의 설명이다.

C씨는 ‘삼돌이’가 떠난 뒤 어머니가 극도의 우울감을 겪은 탓에 조심스럽게 새 식구를 입양했다.

”삼돌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해 보기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했지만, 저와 어머니께 가장 좋았던건 새식구 ‘봉구’를 만난 일이었어요. 인터넷에서는 펫로스를 극복하기위해 바로 새 반려동물을 입양하는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꼭 그것이 정답은 아니더라구요.” 

”그렇다고 저처럼 빨리 새 식구 입양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시기를 권해 드리고 싶어요.” C씨가 말했다.

E씨는 (반려 햄스터) 봉봉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과 그를 떠나보내기까지 복잡했던 감정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진심어린 댓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싱어송라이터 김유주씨는 17년 동안 함께해온 반려묘 ‘미샤‘를 잃은 슬픔을 음악으로 달래는 중이다. 한동안은 음악을 듣는 것도, 만드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고양이 힐링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미샤가 천국에서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아픈 고양이와 노령묘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논문이나 연구자료를 참고하며,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씨가 말했다.

실제로 고양이들은 일명 ‘고양이 음악‘이라고 하는 특징적인 멜로디에 더 잘 반응한다고 한다. 이영수 수의사가 최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고양이들은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쭙쭙이’ 소리나 ‘가르랑’거리는 소리와 유사한 음악에 반응한다. ”이러한 음악을 들었을 때 고양이가 편안해하거나 잠을 잘 잔다”고 반려인들이 이야기한 경우가 많았다고 이 수의사는 전했다.  

김유주씨
김유주씨 반려묘 '미샤'

 

반려동물이 떠나면 어쩔 수 없이 후회와 죄책감,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밀려온다. 펫로스를 먼저 경험했던 반려인들은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슬프거나 아픈 감정은 그 감정 그대로 충분히 쏟아내야 한다.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할수록 고통의 시간은 짧아질 수 있다. 그게 물론 말처럼 꼭 쉬운 건 아니다. 조 원장은 ”증상이 오래 지속되거나 심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조금은 차분하게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조금은 덜 아플 수 있게 된다.

″아늑하고 평온했던 그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그 기억을 붙드세요.” - 싱어송라이터 김유주, 반려묘 ‘미샤’ 

″그저 마음 한켠에 살포시 묻어 놓는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꺼내보며 애틋하기도,행복하기도 한 비밀상자 속 편지꾸러미의 추억을 볼 때처럼.” - 최지예, 반려견 ‘초코’

″반려동물을 추억하고 울어주는 당신은 아이가 살아있을 때도 분명 많은 사랑을 주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동물도 당신을 만나 행복했을 겁니다.” -직장인 E씨, 햄스터 ‘봉봉’ 

″아이가 떠날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지만, 함께했던 시간들은 모두 행복했던 기억이잖아요. 그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잘 간직하다 나중에 아이들과 만나 얘기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슬픔을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일러스트레이터 D씨, 반려묘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