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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브랜딩이라는 말의 함정

'자기 브랜딩'은 '셀프 착취'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batuhan toker via Getty Images

최근에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기자들도 자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왜 또 다른 자신만의 지면이 필요한지 궁금했다. 이유는 자기 브랜딩을 위해서였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독자들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는 형태의 글쓰기로 자기 이름을 알려야, 회사의 이름을 떼고서도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에서도 요즘 하고 있는 ‘일 고민’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은 응답 중 하나가 ‘자기 브랜딩을 어떻게 하는가’이다. 다들 사이드 프로젝트나 퇴근 후 글쓰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본업이 아닌 또 다른 일을 꾸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서점에서는 딴짓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법에 대한 안내서가 인기를 얻고 있고,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은 만원사례를 이룬다. 한 회사에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던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일의 풍경이다.

얼핏 보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일의 트렌드이고, 다양함을 추구하는 사회 변화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바람직한 변화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기성세대가 물려준 평범함의 기준, 그러니까 회사에서 맡은 일만 잘해도 ‘30평대 브랜드 아파트, 중형 세단, 연봉 3천만원 이상의 직장’을 더 이상은 이룰 수 없는 세대가 찾은 탈출구가 아닐까.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퇴근 뒤에도 컴퓨터를 켜고 내 글을, 내 프로젝트를 이끌며 하루를 두배로 산다. 당장 너무 바빠 자기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초조함에 지쳐 잠이 들곤 한다. 불안이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드는 사회에서 우리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브랜딩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반드시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할 것처럼 말하고, 그게 ‘일 고민’의 큰 부분이 되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를 생각해보자는 얘기다. 개인의 불안이 동력이 되어 만들어진 수많은 자기 브랜드들, 그렇게 만들어진 일의 풍경이 과연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개인이 어떻게 더 매력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노하우 공유가 아니라 자기 브랜드를 가져야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노동시장에 대한 반성이다. 이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밀레니얼 세대의 일 경험을 전문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회적 렌즈가 필요하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던 시대에 만들어진 노동관련 법·제도를 다시 살펴야 한다. 프리랜서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왜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가. 회사가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데, 왜 여전히 한 회사에 충성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은 달라지지 않고 있나. 회사에서 힘들어도 버티면 평범함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가 이미 가버렸는데도, 왜 여전히 밀레니얼들은 인내심과 근성이 없다는 질타를 받아야 하는가.

나는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천천히 발전시켜 가면서 자기 브랜드를 쌓을 수 있길 원한다. 다양한 자기 브랜드를 통해 ‘일하는 개개인이 중심이 되어 일을 만들어 가는’ 우리 시대의 평범함을 다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이를 위한 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사회안전망과 전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노동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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