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뉴디터의 신혼일기] 부부싸움은 진짜 '칼로 물 베기'일까?

안방 에어컨만 멀쩡했어도, 어쩌다FC가 조금만 덜 재미있었어도...

  • 김현유
  • 입력 2019.08.16 15:28
  • 수정 2019.08.16 15:36
ⓒJGI/Jamie Grill via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얼마 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크게 싸웠다. 아니 싸운 건 아니었다. 싸움이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혼냄’이었다. 싸움은 어쨌든, 99%:1%일지언정 양쪽 모두 문제가 있어야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건 111% 남편 과실이었다.

사실 나는 잘못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남편도 인정했고,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내는 잘못을 하지 않는다. 만국공통.

ⓒ미드 '기묘한 이야기' 중

어쨌든 나는 한가득 빡이 친 상태였고, 얼굴을 바라보기조차 싫었고, 대체 100세시대 앞으로 남은 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라는 심도있는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남편이 TV를 보고 있는 모습마저도 너무 짜증이 나던 바, 이런 걱정은 안방에서 혼자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으로 방으로 씩씩대며 쾅 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심도깊은 고민은커녕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날 서울은 34도였고 안방은 에어컨이 고장난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분노를 알아주지 않는 엄마에게 분노해서 ‘쉬익쉬익, 앞으로는 엄마한테 차갑게 대할 거야. 엄마 때문에 감정을 잃어버린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행동할 거야. 엄마는 후회하겠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방문 쾅 닫고 들어갔으면서 3시간 후에 ”현유야 밥 먹어라”는 말에 모든걸 까먹고 ”넹~ㅎ”하고 달려나갔던 중2때처럼 쿵쾅쿵쾅 쾅 하고 닫아버린 문을 다시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그 때는 내 방이 시원해서 3시간이라도 버텼는데 이번에는 5분도 있을 수가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남편이 땡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우면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태연한 척, 나는 너의 말이 들리지 않는 척, 너같은 건 이제 신경쓰기도 싫다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에어컨 바람이 더 잘 오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티 안 나게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핸드폰만 바라보면서 두피 사이사이에 찬 땀을 말렸다. 남편은 한숨을 쉬며 에휴... 하고 또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돌렸다.

그렇게 같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어쩌다FC를 같이 보는데, 어이없이 저 자기분야 남바완 찍었던 아저씨들이 운동신경 다 죽어서 쩔쩔매는거 보고 웃겨서 웃었더니 같이 껄껄 웃던 남편이 내 눈치를 보다 눈이 마주치자 또 슬쩍 웃었다.

다시 정색을 했는데 아니 진짜 근데 허재 아저씨가 너무 웃겼다. 결국 무심한 듯 시크한척은 어디가고 낄낄 웃다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잘생긴 남편 어깨에 기대서 같이 TV를 보고 있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는 하는데,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안방 에어컨만 멀쩡했어도, 어쩌다FC가 조금만 덜 재미있었어도 칼로 물을 베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Ps. “당신, 그래서 안방 에어컨 그래서 언제 고칠 거야?”

“안 고쳐 ㅎㅎ 곧 가을이야”

“그래도 빨리 고쳐!”

“에어컨은 거실에서 같이 쐬면 되자낭~❤ 멀리 가지말구 거실에 있어~❤️”

결국 그렇게 오늘도 칼로 물 베기는 실패했다. 여름은 여러모로 불편한 계절인 것이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