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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14일 17시 47분 KST

아무도 탈북 모자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하지 않았다

구청도 경찰도 정부도, 두 사람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겨레
북한이탈주민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의 임대아파트. 

부재는 분명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2달 전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어머니 한아무개(42)씨와 그의 아들(6)이 세상에서 사라진 흔적을 알아차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파트 방음이 잘 안 돼서 가끔 아기가 뛰어다니거나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몇 달 전부터 조용했다. 얼마 전부터 보일러실에 벌레가 꼬이기 시작했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누군가 숨져서 생긴 일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씨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한 주민의 말이다. 사라진 소리, 꼬이기 시작한 벌레, 이상한 냄새…. 그러나 그 흔적은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했다.

이웃뿐 아니다. 구청도 경찰도 정부도 두 사람의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 6월30일 수도검침원이 검침하다가 계량기가 과도하게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문을 두드려도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관리사무소에 있는 입주자 카드에 적힌 휴대전화로 전화했지만, 그 전화는 한씨의 것이 아니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였기에 누수 때문에 계량기가 올라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난달 1일 한씨의 집에 단수 조처를 했다. 한씨 모자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단수 조처 뒤 한달가량 지난 지난달 31일, 한씨의 집을 다시 찾은 수도검침원에 의해서였다. 검침원이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렸고, 관리사무소가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날 한씨는 주방 겸 거실에서, 아들은 작은 방에서 발견됐다. 두 사람은 이불이나 요도 없는 거실과 방에서 반듯하게 누운 채 숨져있었다고 한다. 한씨와 아들의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집에서 음식이 발견되지 않아 굶주림 때문에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지만, 부검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울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3주 정도 뒤에 간단한 소견과 함께 감정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사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숨진 한씨는 서른두살이었던 2009년 한국으로 온 북한이탈주민이다. 그가 한국에서 처음 둥지를 튼 곳은 서울 관악구였다. 젊은 여성 북한이탈주민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한씨 또래로 스물네살 때인 2000년 북한을 떠나온 동명숙(43)씨는 <한겨레>에 “탈북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에는 한계가 있다. 노래방이나 다방 등 유흥업을 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재입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정착 초기에는 어려움을 잘 넘긴 것으로 보인다. 관악경찰서 보안과 관계자는 “한씨가 2009년 처음 관악구에 정착하고 이후 2년 동안 (경찰) 신변보호관을 성실하게 잘 만났다. 유흥업소가 아닌 일자리를 얻어 잘 정착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 뒤 한 남성을 만나 통영으로 떠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씨가 중국 국적의 남성과 경남 통영으로 떠난 것은 2012년 5월이었다. 이때쯤 아이도 가졌다. 중국 국적의 남편은 통영의 한 조선소에서 일했고, 한씨는 식당일 등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3월 아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조선업 경기는 빠르게 나빠졌고 통영 조선소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한씨의 가족은 사업을 하기 위해 2017년 중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한씨가 어떻게 지내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한국으로 돌아온 한씨는 같은해 10월 서울 관악구에 전입 신고를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은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한씨는 마치 세상에 없는 것처럼 지냈다. 한씨가 살던 아파트의 한 주민은 “그 집에 사람이 사는 줄도 몰랐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오가며 얼굴 마주치고 해서 누가 사는지 대충은 알고 지낸다”며 “하지만 그 집 사람은 마주친 기억도 없다. 사람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사람이 거기 사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북한이탈주민들과 교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주명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관악구에 사는 새터민들이 꽤 많다. 보통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알고 지내면서 도움을 준다”며 “그런데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새터민이 한 사람 있는데, 물어보니까 본인도 뉴스를 보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새터민이 숨진 줄 알았다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한씨는 경찰의 방문도 꺼렸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통영경찰서 신변보호관이 지난 2월 한씨가 관악구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고 통보해줬다. 그래서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는데 본인이 만나기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적응을 돕는 거주지보호담당관의 손길도 미치지 못했다. 거주지보호담당관은 한국에 온 지 5년 이내의 북한이탈주민에게 반기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실태조사를 한다. 이 실태조사 결과는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보고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한씨는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생계를 꾸릴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지난 10월 한씨는 전입 신고를 하면서 주민센터를 찾아 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신청했지만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수당 신청을 직접 했으면서 왜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만 6살이 넘은 올해부터 아동수당 지원은 중단됐고, 한씨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월 10만원의 양육수당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명숙씨는 “일을 해야 하는데 애를 맡길 곳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 사람은 보통 친정 등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는데, 우리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며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탈북자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씨가 숨진 채 발견된 임대아파트는 처음 한국에 온 2009년부터 적을 두고 있는 곳이었다. 경남 통영에서 머물 때도 서울 관악구 아파트의 임대료를 냈다.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매달 16만4000원의 임대료는 보증금 1074만원에서 16개월 동안 깎여 나갔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임대료가 밀리자 지난 3월 한씨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한씨는 “4월에 아파트에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세상과 닿은 마지막 연락이었다.

결국 이렇게 이웃도, 경찰 신변보호관도, 지자체 거주지보호담당관도,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도 한씨와 한씨 아들의 삶을 확인할 수 없었거나 확인하지 않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탈주민들도 우리 동포이고 민족이다.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들은 국민대로, 지역 주민은 주민대로의 역할이 있고, 북한이탈주민 역시 자기 스스로 적응하려고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다만 실제 한씨가 굶주림 때문에 숨졌다면 모두의 인도적 차원의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이번 기회에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초기 정착 이후 보호 등에 대해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통일부 등 특정 부처가 모든 책임을 지기 어려운 사안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기 쉬운 탈북민들의 사회적 케어와 관련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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