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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엡스타인은 살해당했다' 미국에서 들끓고 있는 위장 자살 음모론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제프리 엡스타인. 
제프리 엡스타인.  ⓒHandout . / Reuters

제프리 엡스타인을 둘러 싼 음모론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크게 번지고 있다. 지난 10일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맨해튼의 감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후 ‘#제프리엡스타인살인’이라는 해시태그가 번졌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제프리 엡스타인이 죽기를 발랐던 누군가가 자살로 위장해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빌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를 지목하기도 했다.

CBS 뉴스의 보도가 불씨를 당겼다. CBS뉴스는 엡스타인의 사망 당일 오전 엡스타인이 있던 맨해튼 교정 센터 감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누구로부터 나온 말인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NBC뉴스는 CBS의 보도를 반박하며 ”불과 몇 감방을 사이에 두고 투옥 중인 죄수의 변호인이 그날 아침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라며 밝혔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10일 오전 6시 30분께(현지시간)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은 죽음의 원인을 아직 특정하지 않았으나 맨해튼 교정 센터는 ‘명백한 자살’로 규정하고 있다. 

사망 직후 ‘#클린턴사망자‘(ClintonBodyCount)와 ‘#트럼프사망자’(TrumpBodyCount)라는 해시태그가 거의 동시에 트위터 등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로 추정되는 세력 일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엡스타인 죽음의 배후로 지목했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 부부를 배후로 지목했다.

자료 사진. 7월 12일. 
자료 사진. 7월 12일.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엡스타인이 사망하기 전날 뉴욕 법원은 엡스타인의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와 관련한 2,000페이지에 달하는 법정 진술 문서(위증죄의 대상이 된다) 등을 공개했는데, 해당 문서에는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모두 나온다.

트럼프와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개인 비행기를 타고 함께 여러 차례 여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서류 중 일부는 제프리 엡스타인과 그의 과거 연인인 길레인 맥스웰을 미성년자 성매매로 고발한 버지니아 주프리의 진술이다. 버지니아 주프리는 트럼프의 플로리다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라커룸 종업원으로 일한 바 있다. 

트럼프는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망 이후 클린턴 가문을 지목하며 음모론에 불씨를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24시간 감시하는 중에 자살했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제프리 엡스타인은 빌 글린턴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고 이제 그는 죽었다”라며 ”우리는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다”는 터렌스 K 윌리엄스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빌 클린턴과 힐러리 클린턴을 둘러싼 음모론은 유서가 깊다. 빌 클린턴이 초대 대통령에 당선(1993)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께부터 ‘빌 클린턴 관련 사망자’라는 내용의 음모론이 돌았다. 당시에 의회에서 한 의원이 24명의 빌 클린턴과 관련한 자료라며 발표한 적도 있을 정도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증거 없이 자의적으로 작성된 이 리스트에는 1993년에 자살한 전 백악관 법률 고문 빈스 포스터부터 2016년에 살해 당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스태프인 세스 리치 등이 포함되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에도 빌 클린턴을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13일 뉴저지 모리스타운 공항에서 취재진과 잡담을 나누던 중 한 기자가 물었다. 

질문 : 제프리 엡스타인의 죽음과 클린턴 가족이 진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도널드 트럼프 : 난 몰라요. 난 그(빌 클린턴)가 27번이나 (엡스타인의) 비행기를 타고도 4번뿐이라고 대답한 건 알아요. 그러고 나서 비행 기록을 체크해보니까 엡스타인의 정말 친한 친구였던 클린턴은 27번 혹은 28 (비행기에) 탄 거로 나왔어요. 그런데 왜 4번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그다음에 궁금한 건 빌 클린턴이 그 섬에 갔느냐겠죠? 엡스타인은 내가 아는 한 좋은 곳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난 그 섬에 간 적이 없어요. 그러니 빌 클린턴에게 물으세요. 그 섬에 갔냐고. 그게 중요해요. 그걸 찾게 되면 상당히 많은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 폴리티코

엡스타인은 2002∼2005년 뉴욕과 플로리다 등에서 20여 명의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매를 한 혐의로 지난 7월 초에 체포되어 복역 중이던 엡스타인은 최고 45년 형을 받을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제프리 엡스타인은 버진 아일랜드에 ‘리틀 세인트 제임스‘라는 이름의 섬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 섬에는 수많은 권력가들과 재력가들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 섬은 ‘페도파일 아일랜드’(소아성애의 섬)로 불린다.

한편 진짜 파헤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10일 오전 6시 30분께 엡스타인의 시신이 발견된 사실은 오전 8시 54분께 ABC뉴스의 리포터 애런 카터스키의 트윗을 통해 알려졌다. 그가 작성한 기사를 담은 ABC뉴스의 공식 트윗은 5분 후에 나왔다. 그러나 이보다 38분 빠른 오전 8시 16분. 미국의 극우 성향 사이트인 4챈(4chan)에 ”내가 이걸 어떻게 아는지 묻지 마. 엡스타인이 한 시간 전에 죽었어”라는 내용의 트윗이 올라왔다. 뉴욕시 소방당국은 이미 구급 대원 중에 이런 글을 올린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상황이며 맨해튼 교정 센터 노조 역시 같은 입장이다. 

이 트윗을 두고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힐러리의 자객이 먼저 올린 것‘이라는 음모론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자객이 올린 것’이라는 주장을 주고받고 있다.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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