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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11일 14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8월 11일 16시 21분 KST

딸로부터 학대받는 연애 관계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들었다

나를 추스르는 데 일년이 걸렸다

AntonioGuillem via Getty Images

“엄마, 지금 감정적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 거 알고 있죠?”

내 십대 딸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 말이 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걸 깨닫고 고통을 느꼈다.

내 감정은 어쩔 줄 모르고 한곳을 계속 돌았고, 그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내 역할은 딸이 삶의 질곡을 지나는 걸 돕는 것인데, 반대로 나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성숙한 아이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나는 박사 학위가 있지만, 인간관계학의 박사가 아니었음은 분명했다.

내 연애에 부침이 심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거기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내 딸이 계속 나 대신 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폭발 단계지만, 하루만 지나면 허니문 단계로 돌아갈 거에요. 그가 칭찬을 해주거나, 원하던 걸 사주거나, 해줬으면 했던 집안일을 하겠죠.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다시 그의 눈치만 보면서 긴장이 커지는 단계로 돌아갈 거에요. 다음 폭발만 기다리겠죠.”

딸은 작년에 보건 수업에서 건강한 관계에 대해 배우며 들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학대의 사이클’ 도표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딸이 ‘학대’라는 말을 쓸 때 나는 속으로 움찔했다. 학대는 너무 거친 단어 같았고 불편했다. 성적 학대나 육체적 학대가 학대라고 나는 생각했다. 최소한 사회가 내게 가르친 바로는 그렇다고 느꼈다.

아무리 내 상황이 안 좋아져도(아주 안 좋을 때도 가끔 있었다) 나는 내 파트너의 행동에 대한 핑곗거리를 만들고, 폭발을 내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가 더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좋지 않은 관계이니 헤어지라고 말한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게다가 그들이 들은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나는 딸에게 내 파트너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라는 걸 안다. 이 사이클이 반복되는 횟수, 그리고 내가 받은 상처가 정말 깊어서, 당시 내가 다른 행동 방식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딸을 위해서 새로운 방식을 익혀야 했다.

어린 시절 연애를 할 때 육체적, 감정적으로 학대 당한 적이 있다. 그건 규탄하기가 더 쉽다. 그가 나를 밀고, 움켜쥐고, 내던지고 때렸다고 하면 사람들은 헤어지라고 한다. 상당수의 육체적 학대자들은 영리하게 얼굴처럼 눈에 띄는 곳에는 상처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몸에 난 상처가 없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 학대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게 잘못이란 걸 안다.

감정적 학대를 당한 경우 사회에서 그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나 역시 그 이름에 익숙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감정적 학대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했고 #미투 운동도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당하는 일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고 내 머릿속에 숨어 핑계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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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이 이 모든 걸 보았다’

가스라이팅, 거짓말, 소리지르기, 모욕, 철저한 무시, 접촉 피하기(그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또는 마치자마자 그냥 집에서 나가버릴 때가 있었다)는 전부 나에게 벌을 주고 통제하는 행동이었다. 우리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내가 그에게 동의하면 괜찮았다. 심지어 아주 잘 지내기까지 했다. 모두 조건적 사랑이었고 분명 학대였다.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은 대부분 허니문 단계를 보았다. 그럴 때면 그는 나를 배려하고 돌보며 힘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좋은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내 딸은 이것도 보았다.

긴장이 커지는 단계에서 그의 기분이 달라지면, 그는 내 딸과 같은 편이 되려고 하며 나를 무시했다. 내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들을 찾아내곤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조용했다. 그는 내게 벌을 주려고 철저히 무시했다. 나는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말은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멀어졌다. 내 딸은 이것도 전부 보았다.

친구들은 그의 폭발적인 면은 보지 않았다. 그가 폭발할 때면 아주 시끄러울 때도, 완전히 조용할 때도 있었다. 그는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 사용해 우리의 모든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가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딸이 이 단계를 많이 보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딸은 본 것 같다.
늘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거나, 상황을 꼬아서 모든 걸 내 잘못으로 돌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들이 아니었다면, 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면이 있다는 걸 아는 그의 전 여자친구를 나중에 알게 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게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패턴이었다는 걸 영영 몰랐을 수도 있다. 내 친구들이 잘 지내느냐고 캐물으면 나는 그가 통제가 조금 심하다고만 말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었다.

딸이 내가 감정적 학대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걸 듣자 딸을 위해 더 나은 롤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흐느끼며 그렇게 약속했고, 그의 나쁜 행동이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관계가 끝나야 한다고 결심했다.

나는 감정적 학대와 가스라이팅에 대한 글을 많이 읽었다. 긴장이 커지는 단계와 폭발 단계에서 나의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상황이 나빠졌다. 커플 카운슬링을 받아보았다. 나는 공정한 싸움 규칙을 정하자고 했지만 그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불길했다.

우리 사이는 끝이었다.

흔들릴 때마다, 나는 딸의 말을 떠올렸다. 딸은 내가 그에게서 감정적인 학대를 당하는 관계로 돌아가면 자기는 내 전 파트너인 친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뒤로 나는 꼭 일년을 스스로를 추스르는 데 썼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원래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자신감과 자괴감 문제로 한 주에 한 번 꼴로 상담을 받았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이기는 법을 연습했고 여기에 성공해, 그 경험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까지 하게 됐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아마도 나 자신의 본능을 다시 믿는 법을 익히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여러해 동안 억눌러온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내 딸을 더욱 많이 많이 안아주고 있다.

 

*허프포스트 캐나다판의 독자 기고 글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