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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아이돌 프로그램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방송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소녀팬들이나 보는 프로라며 몰라라 할 일이 아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제기된 의혹만으로도 방송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 투표 조작 의혹을 받는 CJ ENM 계열 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프듀’) 얘기다. ‘프듀’는 시청자들이 온라인·(유료) 문자투표로 101명의 연습생 중 11명을 뽑아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국민 프로듀서’들이 직접 뽑는다는 명분이 컸다. 프로가 성공하면서 엠넷은 방송권력을 넘어 음악산업 ‘접수’의 계기를 마련했다. 어차피 엠넷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든 기획사들도 병아리 연습생을 단숨에 스타덤에 올릴 수 있다거나 실패한 아이돌의 재기 기회가 된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프듀’ 모델이 수년 연습기간을 거치는 완성형 아이돌 시장 질서를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조작 의혹은 종영 직후 일부 팬들이 제기했다. 유력 후보가 탈락한데다가 1~20위까지 최종 득표수가 특정 숫자의 배수이고, 동일한 표차가 반복되는 걸 문제 삼았다. 전문가들도 “매우 희박한 확률”이라고 봤고,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명백한 취업사기, 채용비리”라고 가세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이상한 결과”라며 수수방관하던 엠넷은 상황이 커지자 제작진을 경찰에 고발했다. 책임을 져야 할 방송사가 제작진을 고발하는 기이한 상황이다. 경찰은 방송사 사무실과 문자투표 데이터 보관업체 등을 압수 수색했다. 시청자 260명으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도 사기 등의 혐의로 제작진 등을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고 얘기한다. 우선 지난 시리즈보다 시청률이 반토막 났는데, 광고수익 등을 의식해 투표수를 뻥튀기하면서 사달이 났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 ‘프로듀스48’ ‘아이돌학교’ 등 유료 문자투표로 이뤄지는 엠넷의 이전 오디션 프로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는 제보도 잇따른다. 한 관계자는 “공정성이 생명인 오디션 프로들에 제기된 조작설에 대해 방송사가 해명이나 책임 없이 넘어간 게 사태를 키웠다. 이런 대처 자체가 시청자를 우습게 본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프듀’의 문제는 이뿐 아니다. 투표 절차를 거치지만 이미 편집과 방송분량, 일명 ‘피디픽(피디가 미는 후보)’ 등을 통해 유력 후보가 좁혀진다. 애초 공정 게임이 아닐 뿐 아니라, 매회 연습생들을 등수대로 줄 세워 탈락자를 내고, 최종 데뷔조 11명 외에 90명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없다(출연자 상당수가 미성년자다). 매회 시청자 투표로 당락이 갈리기 때문에 팬들은 과몰입하고, 매표에 준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이번에도 연습생 팬덤 별로 해외여행, 고급 가전 등을 경품으로 내건 ‘혼수’ 수준의 문자투표 이벤트가 열렸다. 이런 과열경쟁을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 하긴 여자 아이돌을 뽑는 ‘프듀’ 시즌1때 담당 PD는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기도 했었다.

아무리 서바이벌 오디션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초상, 무한경쟁· 승자독식 등 정글 같은 사회의 축소판이라 해도 이건 도를 넘었다. 중소기획사 연습생이라는 약자를 들러리처럼 가학적으로 소비하고, 팬덤의 ‘희망고문’을 동력으로 삼으며, 무늬만 공정성이라는 나쁜 행태에 별 문제 제기가 없었다는 것도 큰 문제다. 엠넷은 ‘프듀’외에 ‘쇼 미 더 머니’‘언프리티 랩스타’ 등 힙합 오디션에서도 ‘디스’ 전 등 상대를 깎아내리는 코드로 논란이 됐었다. 한 연출자는 “K팝과 오디션이 주종을 이루는 엠넷은 단순 음악채널이라기 보다 10~20대 초반을 겨냥한 에이지 채널 성격이 강하다. 출연자, 시청자의 상당수가 10대인 만큼 제작윤리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엠넷은 수사 와중에도 다음달 예정인 ‘프듀’ 데뷔조의 콘서트와 음반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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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아이돌 #프로듀스 X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