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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잇챈'은 어떻게 미국의 폭력 극단주의자들의 양성소가 되었나?

극단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 박세회
  • 입력 2019.08.06 18:12
  • 수정 2019.08.06 18:14
총격 사건이 일어난 텍사스 엘패소의 월마트 인근 한 교회에서 지난 5일 주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총격 사건이 일어난 텍사스 엘패소의 월마트 인근 한 교회에서 지난 5일 주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Mario Tama via Getty Images

8월 3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22명이 사망했으며, 갓난아기를 보호하려고 껴안고 있다가 사망한 여성도 있었다.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아직 생사가 위태로운 사람도 있다.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였으며 현대 미국 역사상 라틴계가 가장 많이 사망한 학살 사건이었다.

총격범인 21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는 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기 직전 한 온라인 게시판 에잇챈(8chan)에 글을 올렸다. 에잇챈은 편견을 부추기는 것으로 악명높은 온라인 게시판이다. 이전의 폭력적 극단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용의자는 에잇챈에 범행 계획과 깊은 증오에 기반한 동기를 알리고 다른 게시판 사용자들에게도 자신을 따를 것을 권했다.

크루시어스는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제거 또는 살해해야 할 ‘침입자’(invaders)라 부르며, 자신이 이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를 망라한 3페이지 분량의 선언문도 함께 올렸다. 그는 이 선언문에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51명을 살해하는 장면을 생중계 한 오스트레일리아 남성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며 칭송하기도 했다. 크라이스트처치 범인 역시 3월 테러 직전에 에잇챈에 백인 우월주의 선언문을 올린 바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사건 이후 약 한 달 뒤, 캘리포니아 포웨이의 유대교 회당에서 ‘AR-15’와 비슷한 모양새의 공격용 소총을 든 백인 십대 남성이 여성 1명을 사살하고 랍비 등 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공격 직전 범인은 에잇챈에 반 유대인 선언문을 올리고 “나는 여기 오기 시작한 지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배운 것은 정말 귀중하다”고 썼다. 다른 유저가 곧 “하이 스코어를 올려라”고 답했다. 최대한 많은 유대인을 죽여 게임에서처럼 점수를 더 따라는 뜻이다. 

‘인터넷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자처하는 에잇챈은 극단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온라인 모임 장소 중 하나다. 익명으로 사용하고 잘 관리도 되지 않아, 증오를 확장시키는 효과가 점점 커졌다. 과격화의 온상이자, 바이럴에 의한 악명을 꿈꾸며 학살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에잇챈에서 과격화된 것으로 보이는 범인들이 늘어남에 따라(최근 5개월간 각각 무슬림, 유대인, 이민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범인이 셋 있었다) 사망자 수도 분명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에잇챈은) 완전히 익명이라서 증오를 부추기고 다중 살인을 저지르라고 말하는 곳으로 사용된다.” 엘패소의 비극을 취재한 NBC의 극단주의 담당 기자 벤 콜린스의 말이다. “현재 이 웹사이트와 관련된 사망자 집계가 있다.”

지난 3월 18일 한 아이가 크라이스트처치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기도하고 있다. 
지난 3월 18일 한 아이가 크라이스트처치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기도하고 있다.  ⓒANTHONY WALLACE via Getty Images

증오에 물든 역사

에잇챈은 2013년에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레드릭 브레넌이 만들었다. 브레넌은 환각 성분이 있는 버섯에 취한 상태로 에잇챈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몇 년 뒤 인터뷰에서 브레넌은 에잇챈을 포챈(4chan)보다 더 발언의 제한이 없는 곳으로 구상했다고 밝혔다. 포챈은 다른 온라인 게시판으로, 역시 독설이 넘치는 곳이다. 브레넌은 포챈이 게임 커뮤니티의 일부 여성들을 겨냥한 극단적 온라인 희롱 캠페인 ‘게이머게이트’ 관련 스레드를 금지한 것을 비판했다. (금지 조치 후 게이머게이트 트롤들 중 상당수는 포챈에서 에잇챈으로 옮겨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금지당한 극단주의자들이 증오에 가득 찬 이데올로기를 품고 에잇챈으로 옮긴 것과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 브레넌은 필리핀에 사는 50대 중반의 미국 퇴역 군인 짐 왓킨스에게 에잇챈을 넘겼다. 왓킨스는 군복무 중이었던 1990년대에 시작한 포르노 사이트로 번 돈으로 자신의 기업 N. T. 테크놀로지를 통해 에잇챈을 사들였다. 왓킨스는 2017년 버즈피드 인터뷰에서 에잇챈에 올라오는 극단주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극단주의 포스팅들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에잇챈은 내내 온라인 증오 캠페인과 표적을 정한 괴롭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다중 살인과 살인자들의 영상 및 이미지, 극단주의자 선언문과 프로파간다가 게시판에 돌았다. 일부 게시판에서는 경찰서에 가짜 응급 신고를 해서 무장 경찰들이 표적의 집에 찾아가게 한 적도 있었다. 이는 ‘스왜팅’(swatting)이라 불린다. 구글은 아동 포르노가 올라오는 것을 우려하여 2015년부터 검색 결과에서 에잇챈을 제외했지만 매달 수백만의 방문자가 찾아간다.

엘패소 사건 후, 다수를 상대로 한 폭력을 조직하는데 에잇챈이 기여하고 있음을 브레넌 본인이 인정했다. 8월 4일 뉴욕타임스의 케빈 루스와의 인터뷰에서 브레넌은 “사이트를 닫아라. 세상에 아무런 좋은 영향도 끼치지 않고 있다. 거기 사용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부정적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들에게도 부정적인데, 그들이 꺠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브레넌은 자신이 왓킨스에게 에잇챈을 닫으라고 압력을 넣었으나 왓킨스가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에잇챈 사용자가 한 여성을 죽인 포웨이의 시나고그 앞. 지난 4월. 
에잇챈 사용자가 한 여성을 죽인 포웨이의 시나고그 앞. 지난 4월.  ⓒSANDY HUFFAKER via Getty Images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완전히 익명으로 운영되다 보니 에잇챈에서는 누가 어떤 글을 올리는지 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글들을 올려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가능성이 낮아 트롤들이 활동하기 이상적인 환경이다. 그래서 에잇챈에는 외국인혐오, 인종차별, 퀴어혐오, 여성혐오, 이슬람혐오, 특정인에 대한 괴롭힘과 위협이 올라온다.

소셜 미디어 대기업들 대부분이 폭력적이며 증오에 찬 메시지가 퍼지는 것을 막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페이스북 등은 가짜 계정, 익명 계정들을 단속하여 유저가 정체를 숨기고 포스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에잇챈은 다른 온라인 중재자와 마찬가지로 제 3자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유저들이 올린 포스팅 때문에 법적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이버 괴롭힘 전문가들은 1996년에 생긴 통신품위법의 230조가 온라인 상의 학대를 가능하게 한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으나,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검열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맞선다. 한편 극단주의자들은 계속해서 온라인에서 모여 자유롭게 살인을 계획하며 서로를 고무하고 있다.

에잇팬 유저들은 이미 엘패소 용의자를 ‘성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증오에 기반한 다중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영웅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일부 살인자들은 테러를 저지르기 전 증오를 담은 메시지나 선언문을 에잇챈에 남기기도 했다. 최근 미국내 테러리스트들 상당수는 공격 전에 에잇챈 등의 사이트를 방문했다고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 증오와 극단주의 연구 센터가 최근 낸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억제되지 않은 온라인 증오와 사전에 계획된 오프라인 폭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으나, 법적 개혁 외에는 에잇챈 등의 디지털 소굴에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다. 증오 사이트 연결을 막기 위해 해커들이 디도스 공격을 했던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에잇챈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자처하는 테크 대기업 클라우드페어로부터 거의 뚫을 수 없는 정도의 사이버보안을 받았다. 클라우드페어의 클라이언트 중에는 미국 외 테러리스트 단체도 있다.

폭력적인 네오나치 웹사이트 데일리 스토머 등이 조직한 2017년 유세에서 반 파시스트 운동가 헤더 하이어가 살해 당한 후, 클라우드페어는 데일리 스토머를 닫았다. 유례가 없었던 이러한 조치는 법적 또는 도덕적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엄청난 분노에 마지못해 반응한 것이었다.

클라우드페어는 4일에 에잇챈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피가 흘렀고 대중의 분노가 강렬해 클라우드페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너무 오래 걸렸다.

*해당 기사는 허프포스트 US의 ‘How 8chan Became A Breeding Ground For Violent Extremism’를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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