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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05일 14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8월 05일 14시 35분 KST

달려야만 젊음일까? - 영화 '엑시트'를 보고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1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서울 양천구. 빌딩 꼭대기에 한 청년이 매달려 위태로운 자세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자세히보니 고소작업원이었다. 그는 그네식 안전대를 메고 현수막 설치 작업을 하는 중이다. 완전히 고정 되지 않은 현수막은 한 귀퉁이를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이 되어 펄럭였다. 작업원은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안전 줄을 가다듬고 있었다. 현수막은 바람에 계속 펄럭였다.

​“1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 치킨을 시키느냐 배달하느냐? 이번 여름. 운명을 결정한다! 입시 엔드게임은 OO학원에서”

영화 ‘엑시트’에는 낮잋은 생존 문법들이 등장한다. 취업에 실패한 사람에 대한 비웃음, 금수저와 흙수저, 이름은 부점장이지만 실상은 비정규직과 같은 현실,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오르는 싸움, 생존을 위한 턱걸이. 

생존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구원은 옥상 꼭대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올라가야한다. 그것도 왠만하면 평범한 건물보다는 더 높은 빌딩 위로, 남들보다 눈에 더 잘 띄는 곳으로 올라가야한다. 문이 잠겨있다면 창문을 깨고, 목숨을 걸고 몸을 던지고, 초인적 기교를 부려서라도 올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일반인의 능력을 초월한 주인공이 건물 외벽을 움켜잡고 등반하는 모습은 흡사 히어로물을 방불케 한다. 아슬아슬한 연출은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인적 노력으로 마침내 옥상에 이르는 순간, 주인공이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몸짓 뿐이다. 온갖 위험천한 노력을 다해봤자 건너편의 고층 건물보다 낮은 건물의 옥상에 왔을 뿐인 그들은 히어로가 아니라 재난영화의 한 인물이 될 뿐이다.

쫒기고 쫒기고, 오르고 오른다. 오르고 오르는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존은 일부에게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노력과 고통의 크기는 구원의 속도와는 크게 상관없다. 생존은 원래부터 높은 곳에 있었던 자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원래부터 높은 곳에 있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초인적인 노력과 힘을 요구하고, 정작 초인적인 노력이 발휘되는 장면조차 따뜻한 볼거리로 전락시키고 말기도 한다. 주인공들이 크레인까지 올라가서 ”나 좀 봐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갈 곳 없이 해고 당해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달려야만 젊음일까? 탈출 후 내린 비가 의미하는 것

고생 끝에 탈출한 조정석과 윤아의 풋풋한 대화와 함께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비로 인해 재난상황의 원인이었던 가스가 씻겨져 나가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들은 그토록 갖은 노력 끝에 구조 받았는데 나오자마자 비가 내리는 장면에서 허탈해하는 관객들이 있었다. 과연 주인공들은 영화 끝까지 가족과 취업, 불확실한 미래를 모두 떠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달렸다. 저게 청춘의 모습이라고, 젊을땐 다 저렇게 살아남는거라고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조대의 구조는 몇사람의 목숨을 구하면서도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낮은 곳의 사람보다는 높은 곳의 사람들, 소수의 사람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한편 옥상문이 잠긴 곳에 갇혀 떨고 있는 아이들이 몇군데 더 있었는지도 모른다.

​탈출 후 내리는 비는 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의미하면서, 구조를 받기 위해 달리고 오를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필요 했다는 설명이 된다. 누군가는 아픈게 청춘이고, 젊음은 원래 달려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오르고 달려야만 젊음일까? 땀에 젖은 주인공들을 스쳐 지나갔던 무수한 헬기들처럼, 애초에 생존은 노력에 걸맞는 보상으로 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달리지 못하는 젊음에게도 탈출이 필요한 것이다.

진짜 탈출해야 하는 곳은 여기

​″너 지금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냐? 우리 지금 재난 속에 있어. 지진, 쓰나미 그런 것만 재난이 아니라 우리 지금 상황이 재난 그 자체라고”

​치킨집에서 재난 상황 문자를 받고, 자기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친구가 말한다. 수년째 취업이 안 되는 지금이 재난 아니냐고.

주인공이 목숨을 거는 등반 시도로 재난상황에서도 목숨을 건졌기에, 다시 한번 목숨을 거는 노력으로 취업에 성공할 것이다는 희망찬 유추를 하기에는 어렵다. 그의 노력은 재난 상황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취업에 쓸모 없다고 비난 받으며 이미 지속해오던 것이지. 상황이 만들어낸 능력이 아님으로.

​그는 자신의 재능이 조금이나마 쓸모 있었던 재난 상황에서, 다시 자신의 재능이 쓸모 없는 재난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1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9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는 문구가 떳떳이 학원가에 붙어있는 사회,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라는 말이 급훈으로 붙어있는 사회. 어쩌면 그가 정말 탈출해야하는 곳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지금 여기 일지도 모른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