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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해줘

햇볕파가 최악이다

  • 박세회
  • 입력 2019.08.01 16:21
  • 수정 2019.08.01 16:37
ⓒ월드 디즈니 제공

“카톡이 왔어. 바로 눈앞에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휴대전화가 있었지. 근데 그걸 못 잡겠어. 팔이 마비된 건 아냐.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어. 마음 한곳에는 저걸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있긴 했어. 하지만 마음을 이기지 못하더군.”

우울증이 대체 뭐냐고 물어보니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난 이 친구가 몇 달 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더니 그냥 좀 성격이 까칠해졌다고만 생각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친구에게 우울증에 관해 물어보니 설명해줬다. “책을 보니까 뇌 과학자가 그러더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논리적으로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뇌의 결정은 결국 감정들이 투표하는 거랑 비슷한 거래. 근데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항상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을 이겨.”

휴대전화를 잡지 못했던 친구에게 “아니 그럼 얘기를 하지 그랬어”라고 말해놓고 ‘아차’ 했다. 나야말로 우울증을 그저 가벼운 ‘마음의 감기’ 같은 거라고 여겨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얘기해서 좋을 게 뭐가 있어. 힘내라는 소리나 하는데”라고 말했다. 친구는 자신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말하기 전에 상대방을 여러 번 떠본다고도 했다.

마치 남의 얘기인 것처럼 “내 친구 중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라고 털어놓으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우울증은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뤄서 이제는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심리 상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십중팔구 사람들은 말한다. “뭘 그런 거로 우울증에 걸려. 그 친구 그래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겠어.” 둘 사이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냐 하면, “힘내, 나가서 친구들 좀 만나고 햇볕도 좀 쬐고”라고 말하는 타입이다. 나 같은 사람을 편의상 ‘햇볕파’라고 하자. 하지만 이 햇볕파가 최악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이해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슷한 부류로 ‘이해파’가 있다. “이해해. 나도 우울할 때가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우울증을 겪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 어떻게 이해해. 나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라고 말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인간관계의 그물 속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내 태도가 수치스러웠다. 한 친구가 했던 말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네가 항상 밝으니까 우울증이 뭔지 진짜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얘기하지 않았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나는 정말 몰랐다고, 몰랐던 나를 좀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제 우울증을 열심히 알아가는 단계다.

알렉스 코브의 저서 〈우울할 땐 뇌 과학>을 보면 우울증은 오클라호마에서 토네이도가 갑작스레 발생하는 것처럼 원인을 하나로만 특정할 수 없는 복잡계의 산물이다. 토네이도는 수많은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고온 다습한 공기가 갑작스레 상승하며 발생한다. 우울증은 뇌 회로의 수많은 신경전달 물질들의 작용이 우울의 패턴으로 하강 나선을 그리며 쏠릴 때 일어나는 뇌의 상태다. 그러니 “너는 왜 항상 우울하냐”라든지, “너는 왜 우울증으로 고생하느냐”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걱정으로 기분이 가라앉고 기분이 가라앉으면 걱정이 증폭된다.업무가 많을 때면 업무가 많다는 사실을 걱정하느라 업무를 다 못하는 수도 있다. 걱정을 넘어 불안으로 번지면 무기력해지거나 마음이 텅 빈 상태가 되기도 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뇌는 ‘같은 통증도 더 아프게 느끼며, 행복한 기억에도 어둠과 슬픔을 덧칠한다’고 한다.

뇌 과학자들이 극찬하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파란 머리의 슬픔(sadness)이가 모든 코어 메모리를 파란색으로 물들이고, 마음 관제탑의 대통령이 된 상태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것이다. 코어 메모리가 물들고 ‘성격의 섬’이 파괴되기 시작하면 내가 아는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기능성 우울증’(겉으로는 생산적이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있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예도 있다. 우울증을 겪어보지 않고 그 상태를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글로라도 알아둬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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