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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리스트 파국' 중재 위한 미국의 카드는 무엇일까?

일단 양국 갈등이 악화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 정부가 한·일 양국에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처를 하지 않도록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에 합의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주에는 한-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이 잇따라 열린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복성 무역 규제 이후 한·일 외교장관이 만나는 것은 처음인데다, 미국이 한-일 갈등 중재를 위한 모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를 내놓아 결과가 주목된다.

 

ⓒTomwang112 via Getty Images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일 양국에 ‘분쟁 중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등이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분쟁 중지 협정’은 현 상황을 ‘동결’해 양쪽이 상황을 악화시킬 추가 조처를 멈추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당국자는 중지 협정 제안이 한국과 일본의 견해 차이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가 상황 악화 조처들을 막아서 협상을 위한 시간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한·일 양국에 각각의 ‘자제안’을 제시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하지 않도록 아베 신조 정부에 요구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르면 2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보도해왔다.

미국 정부가 한국에 대해서는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쪽이 압류한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을 (매각 등으로) 현금화하는 것도 멈추라고 요청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제안이 사실이라면 한일관계의 파국을 멈출 가능성이 생긴 셈이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뜻과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겠다고 밝혀온 한국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게 될 수도 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한·일 양국 모두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협의하는 틀을 만들어 문제 해결을 위해 협의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동안 한-일 갈등에 대해 ‘한·일 양국이 외교로 해결할 문제’라며 거리를 두어온 미국이 양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역할에 나서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최지인 타이 방콕에서 1일 열리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과 2일께로 예상되는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가 사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방콕행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갈등을 중재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나는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나고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두 나라 각자를 위해 좋은 지점을 찾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두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OrnRin via Getty Images

 

미국의 태도 ‘변화’ 신호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는 결정을 내리면 한-일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큰 타격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한국의 태도도 주목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소미아는 미국이 한·미·일 군사협력과 미사일 방어 체제를 운용하는 데 중요하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 등의 글로벌 공급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미국 기업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한·일이 일단 사태를 ‘동결’하고 외교 협의에 나서도록 판을 마련하는 듯 보이지만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을 강행한다면 사태는 심각하게 악화된다.

일본 정부는 일단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 ‘중지 협정’ 체결을 검토하라고 촉구했다는 보도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스가 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한 관계는 현재 한국 쪽에서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 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근거해 계속해서 한국 쪽에는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외신 보도에 대해 공식 확인을 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이 현 상태가 (더 악화하지 않고) 동결하길 바라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처로 인해 생긴 여러 갈등 상황에 (미국 정부가) 우려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는 2일께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지 청와대가 파악한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한-일 간에도 한-미 간에도 또 미-일 간에도 다각도로 여러 채널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청와대에서도 매일 수출 규제 조치 관련 점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발표됐을 때 어떤 대응과 대비책이 필요한지, 업계에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정부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1일 오전 열리는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일) 양국 관계에 파국 상태가 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고 3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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