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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가 강간당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런 트라우마가 덧입혀졌다.

나를 조롱하고 의심하는 말에 내 세계가 멈췄다

ⓒSteven Ritzer / EyeEm via Getty Images

나는 스물한살이던 2017년 초, 강간당했다. 뒷골목도 아니었고, 나는 취해있지 않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지도 않았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시카고의 내 집에서 고등학교 때 알던 남성과 같이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 채로 1초 1초 나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냥 견뎠다. 그때 같이 살던 가장 친한 친구 둘로부터 나중에 꼭 위로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 둘이 내 편이 되어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준다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함께 사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 말을 믿지 않고, 고통스러운 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

놀랍지 않지만,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강간범이 떠나고 나서 나는 쇠약해져 침대에 누워서 일어난 일을 계속 생각했다. 내가 떨리는 몸으로 침대에서 나올 수 있었을 무렵, 룸메이트 매기는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매기를 만났다.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는 매기 앞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흐느낌으로 가슴이 들썩일 때마다 담요로 더 단단히 몸을 감싸며, 나는 그가 나를 강간했다고 말했다. 매기는 고개를 들지 않고 스니커용 흰 발목양말 몇 켤레를 건조기에 던져넣으며 ”난 안 믿어, 그레첸, 넌 지난 주에 그 사람이랑 섹스하고 싶다고 했잖아. 네가 그를 초대해놓고, 어떻게 될 줄 안 건데? 난 안 믿어.”라고 말했다.

그전에도 뺨을 맞아본 적은 있지만, 내가 견뎌야 했던 그 어떤 육체적 통증보다도 더 아픈 한방이었다. 매기는 나를 보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계단 한 단 한 단을 조심스럽게 딛었다.

내가 방에서 우는 소리를 듣고 다른 룸메이트 샐마가 노크했다. 샐마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팔을 문지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샐마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강간당했는데 매기가 내 말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샐마가 안아주었고 나는 안긴 채 흐느꼈다.

시카고의 추운 2월이었다. 나는 이 일을 혼자서 삭이기로 결정했고 몇 시간이 흘렀다. 두 친구는 나를 만나고 싶어했다. 아마 매기가 내게 사과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매기와 샐마는 둘 다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나는 눈이 부은 채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앉았다. 내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샐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강간당했다면… 왜 내 방에서 너 신음소리가 들렸지?
합의하에 했던 섹스를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닌 게 분명해?
강간당했다면, 왜 신고 안했어? 신고할 거야?”

 

나를 조롱하고 의심하는 그들의 말에 내 세계 전체가 멈춰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까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었던 두 여성이 내 진실에 의심을 품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재판을 받는 기분이었다.

곧 전날 밤의 일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예전엔 그와 섹스를 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엔 아니었다면, 그래도 강간일까? 얘들이 맞고, 나는 그저 부정하고 있는 걸까?

그들의 의심 때문에 내 트라우마의 정당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노골적으로 폭력적인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받은 공격은 정당화되는 걸까? 나는 내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해 결국 신고는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는 거의 평생 상담을 받다 말다 했다. 평소에 믿고 찾던 상담사가 한 명 있어, 이 사건에 대해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내 성폭력은 그렇게 심한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일도 일어날 수 있었으니,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허구한 날 스스로에게 하던 말이 그런 것이었다. 전미성폭력재원센터에 따르면 강간 10건 중 8건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지인이라고 한다. 또한 여성 생존자들의 51.1%는 파트너에게, 40.8%는 지인에게 강간당했다고 보고한다. 이것이 분명한 팩트인데, 내 친구들은 왜 내 말을 믿지 않았을까?

나는 샐마, 매기와 함께 살기 시작한 건 강간을 당하기 약 반년 전이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에 다녔고 같은 저널리즘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내 머릿속에서 마녀가 끓이는 물약처럼 부글부글거리기 시작하고 겨울이 봄이 될 때쯤에, 나는 그 둘을 친구가 아닌, 그저 집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보게 되었다.

거실에서의 대화가 있고 몇 주가 지난 뒤, 매기가 친한 남성들 몇 명을 초대했다. 밤이 되어 나는 방에 들어가 자기로 했고, 샐마와 매기는 손님들과 술을 마시며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여러 번 놀러왔던 친구들이었지만, 당시 나는 종이 박스 속에 든 장식품처럼 깨지기 쉬운 상태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푹 자려고 해봤지만 15분쯤 뒤 롭이라는 남성이 취해서 내 방에 비틀대며 들어왔다. 강간이 벌어졌던 곳이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가! 뭐하는 거야!” 롭이 어찌나 거친 기세로 들어왔는지, 벽에 걸어두었던 거울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나는 방에서 달려나와 샐마와 매기에게 롭은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나를 압도하여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롭은 내 친구였고, 함께 웃고 공간을 공유한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강간 이후 생긴 내 트라우마는 내가 잘 아는 모든 남성들에게도 의문을 품게 했다.

롭은 곧 갔다. 매기는 내 방에 와서 나를 다그쳤다. “롭이잖아. 너를 절대 해치지 않을 거야! 왜 오버하는 거야? 롭은 이제 여기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다시는 오지 않을 거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내게 연민을 갖고 반응하지 않고 나를 깔보며 이야기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한 달 전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매기는 기억하기는 하나? 내가 호들갑을 떨고 있나? 아주 재미있었던 저녁 모임을 내가 망친 건가?

그후 몇 달 동안 상담을 받으며 나의 트라우마의 권리는 내 것이라는 걸 배웠다. 뼛속 깊이 느끼고 있던 수치와 죄책감을 떨쳐야 하며, 내가 영혼의 자매라고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가치와 행복을 친구들에게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나는 샐마와 매기가 내게 있어 무엇이 최선일지를 생각해 줄 것이라고 짐작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줄 것이고, 특히 이런 민감한 때에 두 사람에게 털어놓았으니 당연히 내 편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상담 중 떨리는 목소리로 내 직관을 믿는 것이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일 거라고 마침내 소리내어 말할 수 있었다.

강간을 당하기 전에 이미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작은 집에서 샐마와 매기와 함께 살고 거의 모든 걸 함께 하며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중 두 명이 내가 틀렸다고 한다면 내가 정말로 틀린 거라고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눈을 뜨고 나 자신을 투명하고 진실한 개인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 대한 타인들의 의견을 버리고 흙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처럼 나의 진실에 머물러야 했다.

강간을 당한 뒤 약 4개월 후인 여름에 매기는 미시건으로 돌아가며 고등학교 친구에게 자기의 방을 넘겼다. 나는 내가 쓰다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샐마는 새 룸메이트와 친해졌고 나를 등한시했다. 2017년 여름은 외로웠지만 자신의 본능을 믿을 수 있는 여성으로 성장할 기회이기도 했다. 상담사도 그러길 권했다.

강간 당한 뒤 6개월 후에 졸업반이 되었다. 캠퍼스에서 샐마와 매기를 만났을 때 몇 마디를 나누었지만, 계속 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낯선 사람처럼 굴었다. 힘들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그들에 대한 좋은, 감상적 기억이 있었고 더 많은 걸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담사가 나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는 나를 믿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우정에 대한 필요는 약해졌다.

지금 나는 23세다. 2년 반이 지났다. 이제 나는 그 누구의 진실과 직감보다 스스로를 믿는다. 만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구한다. 자기인식이 있어서 내 진전이 정말 자랑스럽다.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 이후 회복하려면 타인의 믿음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나를 응원해 주지 않더라도, 그것이 꼭 내가 회복을 단념해야 하는 이유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세상의 누군가 한 사람은 내 편이 되어주고 “그런 일이 너에게 일어났다니 정말 안타깝고, 난 네 말을 믿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성폭력 피해 상담

성폭력 피해 관련 상담을 받고 싶다면 아래 기관들에 연락할 수 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전화: 02-338-5801)

-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전화 상담 혹은 전화로 직접 상담 예약: 02-335-1858)

- 한국 여성의 전화 (02-2263-6465, 이메일 상담: counsel@hotline.or.kr)

- 장애여성성폭력 상담소 (전화: 02-3013-1367)

상담 시간 외에 긴급 상담이 필요한 경우 국번 없이 1366(여성긴급전화), 117(교내 폭력 및 성폭력)로 전화할 수 있다.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의 독자 기고 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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