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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로 살아남기

나는 1인가구이다. 50대 여성이다.

  • 권영란
  • 입력 2019.07.30 14:51
  • 수정 2019.07.31 09:55
ⓒVirojt Changyencham via Getty Images

나는 1인가구이다. 50대 여성이다. 흔히 생각하듯 이 연령대 여성에게 있을 법한 보편적 가족 형태인 남편이나 자식이 내게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상당히 불리한 조건들이다.

몇달 전 실족사고로 응급차에 실려 갔고, 수술을 받아야 했다. 마침 주말이었고, 담당 의사는 검진과 응급처치 뒤 월요일에 수술을 하겠다 했다. 그러고는 보호자를 찾으며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 했다. 그때 응급실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섯 사람이 줄줄이 서 있었다. 담당 의사는 당연히 한명쯤은 냉큼 나설 거라 여겼겠지만 다섯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들 가운데 보호자로 나설 사람은 없었다. 일을 같이 하는 동료이거나 동네 후배들이었다.

“1인가구입니다. 본인이 서명하는 걸로 하지요.” 응급실 침대에 누운 채 내 뜻을 밝히자 담당 의사는 난색을 표하면서 “어, 그렇게는 안 될 건데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뒤 드나드는 간호사마다 동의서 서명이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으니 빨리 가족을 부르라고 재촉했다. 가족이 없는 1인가구라고 재차 말했지만 아니, 멀쩡한 아주머니가 왜 가족이 없냐는 반응을 보였다. 남편이 없으면 다 큰 자식이라도 있을 거 아니냐는.

내가 입원했던 5인용 병실에서 4명은 남해, 사천, 산청 등 경남 서부지역에서 온 60~70대 여성이었다. 이들 가운데 3명이 1인가구였다. 남해댁과 사천댁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아들딸이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러 와야 했고, 60대 산청댁은 동네 부녀회장에게 부탁해 친척이라 속이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게 했단다. 딱히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노라며.

어쨌든 나로서는 생애 첫 수술이었다. 모든 수술에는 동의가 있어야 하고 서명은 대부분 본인보다 보호자여야 하고 보호자는 법적 또는 혈연관계의 가족이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만큼 온전한 정신 상태였지만 병원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료기관마다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 그 병원에서는 본인보다는 보호자 서명을 요구했다. 이 일을 겪으며 몇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는 서너 집 중의 한 집이 1인가구이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지만 기존의 보수주의적 가족관에서 가부장적인 가족 형태를 기준으로 만든 제도나 장치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1인가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결여, 거기에 보태어 또 하나는 우리 사회의 중년 여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완고함이었다.

1인가구로 사는 게 불편하거나 부당한 현실이 의료기관에서만 있을까. 우리 사회는 1인가구를 아직 비정상적인 가족 형태로 보고 있다. 1인가구는 청년 또는 노령인구에 빈곤층으로 복지 대상쯤으로 여기고 있다. 법적 보호 장치는 물론 정부 지원 정책은 미미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은 도시 규모가 작고 인구가 적은 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다.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늘리기에 그리 급급하면서도 1인가구의 유입에는 무관심하다. 뜨내기 정도로 여긴다. 귀농귀촌 정책에서도 1인가구는 ‘해당사항 없음’ 또는 ‘고려 대상’으로 밀려난다.

경상남도의 1인가구는 2017년 37만293가구로 그 비율이 28.6%에 이른다. 지금은 30%에 육박한다. 의령군과 산청군의 경우는 40%에 이른다. 이런 추세에도 경상남도는 1인가구에 대한 지원 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은 현재 ‘노인 및 장년층 1인가구 고독사 예방에 관한 조례’만 제정된 상태다. 지난 4월 경남도의회는 1인가구를 대상으로 종합적인 지원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조례 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이어 5월에는 1인가구 지원을 위한 기본 조례가 발의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발의되지 못했다. 좀 더 종합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너무 늦어져도 안 되겠지만 이참에 경남도가 섣불리 서울시를 본뜬 복지나 지원 계획을 내놓기보다는 먼저 경남지역 1인가구 실태와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길 바란다.

그건 그렇고 수술 동의서 서명, 어떻게 해결했냐고? 나로서는 무덤에 있는 어머니를 불러올 수도 없고, 수술 두어시간 전에 한 후배가 담당 의사 면담을 한 뒤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산청댁이 일러준 대로.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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