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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고양이를 둘러싼 100인의 그림 대결

에루어 오피니언 ‘CAT vs DOG’ 인터뷰

  • 전종현
  • 입력 2019.07.29 16:45
  • 수정 2019.07.29 17:30
CAT vs DOG 1
CAT vs DOG 1 ⓒELUR
CAT vs DOG 1
CAT vs DOG 1 ⓒELUR

요즘처럼 애완동물이 삶을 함께 하는 반려 존재로 격상된 시대에 강아지와 고양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유명한 견묘가 출연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계정은 엄청난 구독자를 기록 중이고, 잘 만든 콘텐츠보다 고양이, 강아지의 일상을 담은 영상 조회 수가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대체 강아지와 고양이 중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

취향 존중 시대에 결코 풀리지 않는 숙제이지만, 그 결과가 궁금한 사람 마음은 다들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100인의 일러스트레이터가 절반씩 팀을 이루어 강아지와 고양이를 소재로 가지각색 작업을 준비한 후 과연 어느 쪽이 좋은지 인기투표를 독려하는 ‘CAT vs DOG’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재치 있는 ‘CAT vs DOG’를 기획한 ‘에루어’ 편집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에루어 소개를 부탁한다.

= 에루어(ELUR)는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매 프로젝트마다 특정한 규칙이나 장치를 고안해 이미지를 만든다. 더 즐거운 작업을 위한 방식으로 규칙을 활용한달까. 에루어는 규칙을 의미하는 영어 ‘rule’을 뒤집은 단어인데, ‘elur’에 혹시 무슨 뜻이 있는지 구글 번역기를 계속 돌려보니 갑자기 ‘흥미로운 방법으로 입력하십시오’라는 말이 떴다. 그때 느낌이 와서 이름을 에루어로 정했다.

파주에 있는 독립 디자인 학교인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졸업생 3명이 모여서 일러스트레이션 매체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작년 ‘일러스트레이션 신문’ 프로젝트가 끝나고 팀이 와해됐다. 에루어의 콘셉트를 사장시키긴 아쉬워서 규칙을 가지고 이미지를 만드는 플랫폼을 기치로 삼아 기존 멤버 한 명과 새로운 PaTI 동문 한 명, 다른 창작자 한 명이 모여 새로운 멤버를 꾸렸다. 에루어는 스튜디오나 팀이 아니라 플랫폼이다. 그래서 에루어 편집팀이란 이름으로 웹 디자이너 손아용, 일러스트레이터 이빈소연, 그래픽 디자이너 정연지, 이렇게 세 명이 활동 중이다.

에루어 편집팀. (왼쪽부터) 손아용, 이빈소연, 정연지
에루어 편집팀. (왼쪽부터) 손아용, 이빈소연, 정연지 ⓒELUR
에루어 네이밍 메이킹
에루어 네이밍 메이킹 ⓒELUR

‘CAT vs DOG’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CAT vs DOG’은 ‘에루어 오피니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에루어 오피니언’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고 도드라지는 소재를 주제로 삼는데, 첫 시작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 문득 고양이와 강아지가 떠올랐다. 국내에서 열리는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나 각종 행사장에 가면 고양이, 강아지 작업이 엄청 많다. 굿즈 판매량을 보면 고양이, 강아지와 연관된 작업, 관련 없는 작업 간의 매출 차이가 확실하다.

한국에서는 귀여운 게 먹힌다. 쉽게 읽히고, 난해하지 않고, 친숙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귀여운 소재인 고양이와 강아지가 각광받는 이유다. 그래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고양이와 강아지에 대한 작업을 의뢰해서 모아보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누구는 소재가 너무 가볍다고 싫어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시큰둥할 수도, 굉장히 좋아할 수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소재이다 보니 작업도 의뢰하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답변도 받아봤다.

어떤 질문인가?

질문은 총 5가지다.

1. 일러스트레이션 시장에서 고양이와 강아지가 미치는 영향?
2. 고양이나 강아지가 되고 싶을 때?
3. 일러스트레이터 그만두고 싶었던 경험?
4. 그리고자 하는 그림과 돈이 되는 그림의 차이점?
5. 본인의 작업이 어떻게 소비되었으면 하는가?

질문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고양이, 강아지와 관련된 건 아니다. 앞으로 일러스트레이터와 계속 협업할 생각이라 그들의 상황을 조사하고 의견을 물어보는 게 필요했다. 다음에는 식물과 동물처럼 서로 대비되거나, 바다와 계곡처럼 서로 연결되는 소재를 정하고 완전히 다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이번 ‘CAT vs DOG’은 그 여정의 첫 단추라고 보면 된다.

- ‘CAT vs DOG’을 처음으로 접한 게 텀블벅인데 생각보다 복잡하더라.

= 간단하게 정리하면, ‘CAT vs DOG’은 ‘에루어 오피니언’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고양이와 강아지라는 두 가지 소재를 정한 후 일러스트레이터 100인이 각각 50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각자의 방식대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한 후 결과물을 온라인에 올려 투표 이벤트를 통해 이미지를 소비, 응원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게 목표다. 여러 펀딩 이벤트 때문에 텀블벅이 헷갈린다면 먼저 에루어 웹사이트에 접속하길 추천한다.

- 에루어 웹사이트를 한번 해부해보자.

에루어 웹사이트 애니메이션 
에루어 웹사이트 애니메이션  ⓒELUR

= 메인 화면에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다룬 일러스트레이션 2장이 서로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짝 맞추기는 랜덤이라 들어올 때마다 새롭게 조합된다. 동물 발바닥 모양 버튼은 인스타그램 ‘좋아요’ 기능처럼 투표가 가능하다. 작업 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작가에 대한 소개 글이 나온다. 웹사이트 좌측 상단을 클릭하면 에루어와 에루어 오피니언에 대한 소개가 있고, 우측 상단 ‘오피니언’을 누르면 아까 말한 5가지 질문에 대해 작가 100명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총 500개의 의견이 한곳에 모여 있다.

- 투표 개념이 재미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 투표는 진지하게 싸우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게임에 참여하는 장치로 프로젝트를 즐길 수 있게 끌어들이는 재미 요소다. 지금 투표는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에루어 웹사이트에서 ‘발바닥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 개발한 문자 투표 시스템을 활용해 특정 번호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 텀블벅에서 1000원짜리 후원 상품을 선택해 원하는 팀에 투표하는 것, 마지막으로 가상 화폐를 이용한 글로벌 크리에이터 플랫폼 ‘스팀잇(Steemit)’을 통해 ‘좋아요’를 집계한다.

투표의 또 다른 기능은 기부금 모으기다. 원래 특정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면 1000원이 소액결제되면서 기부금이 자동적으로 모이게 시스템을 설계했는데, 정부 인가 문제가 생기면서 이번 프로젝트 완료 기간 내에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다고 기부금을 포기할 순 없어서 1000원짜리 투표권을 텀블벅에서 구매한 사람에게 에루어 편집팀이 그린 ‘10초 고양이’, ‘10초 강아지’ 이미지를 선물로 준다. 외국에서 가상화폐로 기부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스팀잇’도 준비했다. 투표 결과는 문자 투표 30%, 10초 이미지 30%, 스팀잇 20%, 에루어 웹사이트 20% 비율로 합산해서 최종 우승 팀을 가린다.

- 기부금은 인기투표에서 이긴 동물과 관련된 단체에 기부한다고 들었다.

= 원래 계획은 사랑하는 동물에게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기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실제 기부금은 승패와 상관없이 동물단체에 전달해서 차별 없이 도와주는 거였다. 그래서 투표가 완료되기 전까지 철저히 비밀을 지키려고 했는데, 텀블벅 펀딩 페이지에서 후원을 언급하려면 관련 단체를 정확하게 명시해야 했기 때문에 얼떨결에 비밀이 밝혀졌다.

“인기투표에서 이긴 쪽에만 지원하면 너무 편파적인 것 아니냐”라는 말도 들었던 지라 오해가 없어져서 우리 마음은 편해졌지만 기부금에 문제가 생겼다. 기부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나. 어떤 쪽에 투표를 해도 고양이, 강아지 구분 없이 공평하게 쓰이니 ‘동물 사랑의 정신’을 발휘해 텀블벅 1000원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무척 감사하다.

- ‘CAT vs DOG’의 핵심은 100점의 일러스트레이션인데, 왜 100점인가?

= 원래 목표는 200점이었다. 한국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은 다 모아보자, 이런 청운의 꿈을 안고 시작했는데 곧 우리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웃음). 요즘 포스터 100점, 뭐 100, 이렇게 100이란 숫자로 끝나는 행사가 많다 보니 우리도 일러스트레이션 100점은 가지고 시작해야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진짜 정말 힘들었다. 100이란 숫자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근데 흥미롭게도 일러스트레이터 입장에서도 100이란 숫자가 생소했나 보더라. 같은 주제로 100명이 엮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동료 작가를 만나면 “혹시, ‘그’ 메일 받았어요?”가 안부 인사로 돌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많은 작가들이 들뜨는 기분을 느꼈다고 해서 100명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 1~25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 1~25 ⓒELUR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 26~50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 26~50 ⓒELUR
강아지 일러스트레이션 1~25
강아지 일러스트레이션 1~25 ⓒELUR
강아지 일러스트레이션 26~50
강아지 일러스트레이션 26~50 ⓒELUR

- 작가 100명의 선정 기준이 궁금해지는데.

= 온라인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목록을 모을 만큼 모은 후 이메일로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4장짜리 기획안을 보냈다. 100명에게 보내니 절반 정도 OK 답변이 오더라. 그래서 그 후로는 연락하고, 답변 받고, 연락하고 답변 받는 걸 반복하면서 100명에게 허락을 받았다. 아는 사이라 의리로 참여한 사람도 있고, 동물을 돕는다는 취지가 좋아서 참여하거나, 대중에게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싶은 경우까지 이유는 다양했지만, 영원히 변치 않는 건 참여 작가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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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점의 작업을 낱장으로 보아도 좋을 텐데 최종 결과물을 책으로 묶는 이유가 있나?

= 책은 특별한 물성이다. 특정 프로젝트의 모든 결과를 담아 완결하는 기능을 맡는다. 요즘 일러스트레이션은 너무 쉽게 소비된다. 페어에 가보면 공들여 그린 작업이 몇 천 원에 물건처럼 팔린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완성도 높고 제대로 구현한 ‘작업’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을 소비할 수 있도록 일러스트레이션 모음집과 실크스크린 포스터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작가들도 좋아서 제 작업을 싸게 파는 게 아니다.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금전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제작비라도 건져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우리 또한 책이란 형태로 작업 100점을 묶어 완결해서 소개하고 싶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에게 페이를 지불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금전이 절실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추후 페어에서 작업을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일도 염두에 두고 있다. 작업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예를 들어 작품 뒷면에 작가 소개를 넣고, 에루어 오피니언의 질문과 답이 적혀있고, 작업마다 조금씩 다른 리소그라프 인쇄의 특성을 이용해 판화의 에디션 개념으로 작가 사인을 넣는 등-으로 진행하고 싶다. 근데 지금 상황에서 이건 너무 먼 미래라...일단 텀블벅 펀딩을 성공하는 게 급선무다.

'Cat vs Dog' 책 표지는 인쇄 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파지를 모아 스테이플러로 손수 찍어 만들어진다.
'Cat vs Dog' 책 표지는 인쇄 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파지를 모아 스테이플러로 손수 찍어 만들어진다. ⓒELUR
'CAT vs DOG' 책 내지 이미지
'CAT vs DOG' 책 내지 이미지 ⓒELUR

- ‘리소그라프’로 인쇄하는 이유가 궁금한데.

= 일단 우리가 리소그라프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하. 리소그라프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리소라는 인쇄기 회사에서 만든 프린터다. 우리에게 익숙한 컬러 인쇄는 오프셋인쇄라고 하는데 핀이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리소그라프 인쇄는 핀이 자주 나가서 작업 하나를 인쇄한 후 그 위에 다른 색깔로 인쇄하는 걸 반복하면 의도치 않게 색이 겹치는 경우가 생긴다. 리소그라프가 교회 주보 만들 때 자주 쓰이던 기법이라 옛 느낌도 나고. 잉크도 바랜 색깔부터 쨍쨍한 비비드 색깔까지 스펙트럼이 유연하다. 약간 바랜 듯한 질감에 잉크가 묻어나는 느낌이 꽤나 묘하다. 완벽한 기성 출판 느낌이 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MINJUNGKIM
ⓒANDYKHUN
ⓒCHOIYEONJU

- 고양이와 강아지 작업에 쓰이는 색이 정해져 있더라.

= 작가 100명이 다들 개성이 강한데 색까지 다양하면 팀끼리 구분도 안되고 섞일 것 같아서 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고양이는 눈에서 따온 노란색과 이에 잘 어울리는 초록색을, 강아지는 혓바닥에서 따온 분홍색과 이와 조화로운 하늘색을 선택했다. 기본적으로 블랙이 들어가니까 각 팀마다 3가지 색을 쓸 수 있고 농도 조정도 가능하다. 리소그라프가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들에게 익숙한 장비가 아니라 이에 맞는 작업을 새롭게 구상한다는 점도 중요했다. 도구가 달라지면 작업도 달라지는데 수작업을 고집하던 사람이 리소그라프로 작업하려면 무언가 다른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규칙을 가지고 노는 에루어의 철학과 맞닿는 부분이다. 리소그라프는 대부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장비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푸리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는 곳이라 우리 취지에도 맞고 작업을 더 알차게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리소그라프 인쇄 파트너로 선정했다.

ⓒCHOIHAERYUNG
ⓒCAUCHEMARMAGAZINE
ⓒHEOJIYOUNG
포푸리에서 배포하는 리소그라피 인쇄가이드
포푸리에서 배포하는 리소그라피 인쇄가이드 ⓒ포푸리

- 아까 말한 실크스크린 포스터가 궁금해진다.

= 사이즈는 30cm X 40cm, A3 정도의 포스터는 액자까지 맞춰서 하나의 작품으로 다룬다. 실크스크린 포스터는 SAA와 함께 진행한다. SAA는 PaTI 졸업생인 이산하, 정성훈이 운영하는 실크스크린 스튜디오로 PaTI의 실크스크린 장비를 관리하면서 동시에 그 장비를 활용해 스튜디오 활동도 병행한다. 학교에서 쓰는 장비인 만큼 품질도 좋고, 서로 동문 사이라서 말도 안 되는 소량 인쇄-예를 들어 1~2장-도 가능해 우리에게는 최고의 파트너다. 수익 배분과 가격 조정이 용이하기도 하고. 특히 SAA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때문에 실크스크린을 통해 작가의 작업을 정성 들여 제대로 구현하는 걸 굉장히 중시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와 방향점이 같았다.

- SAA를 보니 에루어와 상당히 유사한 느낌이다. 혹시 PaTI에서 공부한 게 영향이 있나?

= 에루어 편집팀 중 정연지, 손아용은 PaTI 한배곳 1기다. 학교에서는 책을 만들 때 특정 기술을 가르치기 보다 기획, 서체, 사진, 종이, 인쇄 등 책을 둘러싼 모든 것을 다각도로 탐구하길 종용했다. 이런 프로세스는 책뿐만 아니라 어떤 작업을 하든 본질적인 부분에 다가가는 방법을 궁리하게 한다. 예를 들어 책에 텍스트가 들어가면 서체를 정해야 한다. 시중에 나온 서체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아서 고르는 것도 일인데 우리는 작업에 필요한 서체를 직접 만들어 쓰곤 했다. 사진도 인터넷에서 찾는 게 아니라 해당 작업에 어울리는 소스를 직접 찍고 편집해서 활용했고.

리소그라프, 실크스크린 같은 인쇄 기법도 학교 다니는 4년 내내 끊임없이 접한 터라 너무 익숙해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이 낯설어할 때 주도적으로 규칙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었다. 수업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사실 우리가 얼마나 알겠나. 결국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시작하고 실수를 연발하며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걸 몸으로 체득하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번 에루어 오피니언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도 겁 없이 덤빌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하하.

'CAT vs DOG' 실크스크린 포스터 수익률
'CAT vs DOG' 실크스크린 포스터 수익률 ⓒ텀블벅

- 실크스크린 포스터와 관련된 수익률을 적나라하게 밝혀서 깜짝 놀랐다.

= 실크스크린 포스터 가격이 15만 원이다. 디자인 업계 사람들은 인쇄 공정을 아니까 상황을 이해할 텐데, 혹 다른 분들이 진정성에 대해 오해를 할까 봐 아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수익률에 납득이 가야 일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작비 항목을 보면 9만 원으로 60%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액자 값이 그리 비싸냐고 물어보는데, 현실은 정 반대다. 실크스크린 포스터를 1~2장 세심하게 만들려면 정말 가격이 비싸다. 맞춤형 인쇄나 마찬가지라 9만 원 중 대부분은 실크스크린 공정에 드는 최소한의 작업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포스터에 액자가 끼워지니 배송비도 올라가고, 텀블벅에도 수수료를 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절대 비용을 제외하고 가장 높게 책정한 부분이 아티스트 피다. 그게 20%라는 점이 안타깝긴 한데...아티스트 피를 더 높이면 포스터 가격이 비싸다고 구매를 망설일까 걱정이 되어 이렇게 정했다.

- 아무리 봐도 수익 날 구멍이 없다. 텀블벅 펀딩에 100% 성공하면 완전 적자, 200% 성공해도 실질적인 적자다. 대체 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 외국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란 장르는 소외된 느낌이다. 그래픽 디자인, 사진에서는 신선한 매체가 계속 출현하지만 이쪽에는 관련 매체도 빈약하다. 이번 <CAT vs DOG>을 시작으로 에루어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프로젝트를 기록하며 앞으로 좀 더 나아가는 플랫폼이 되기를 희망한다. 금전적인 면에서는 실패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꼭 실패만은 아니다. 100명이라는 엄청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외국에 있는 분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텀블벅 펀딩이 성공하면 그 뒤에 어떻게든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자고로 사업에 성공하려면 3번의 실패는 겪어야 한다던데....아 괴롭다. (웃음)

- 손해가 뻔히 보이는 데 두렵진 않나?

= 당연히 두렵다. 예상 손해액도 짐작이 간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일은 적자 나기 쉬워서 보통 후원을 받는다. 근데 우리는 후원 없이 텀블벅 펀딩과 자비로 막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손해를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둘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점을 찾기까지는 계속 도전이 필요하다. 물론 적자가 나면 돈도 돈이지만 마음이 지친다.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니까. 그래서 더더욱 적자를 내지 않으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는 묘수를 꼭 찾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에루어라는 일러스트레이션 플랫폼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많은 것을 기획하고 실현할 예정이니 세상이여 기다려달라, 정도? 하하. 근데 일단 텀블벅 편딩부터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후 할 말을 이어보겠다. 행운을 빌어달라. (웃음)

‘CAT vs DOG’ 텀블벅 페이지 

https://tumblbug.com/catvsdog

에루어 

http://el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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