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9년 07월 29일 10시 24분 KST

한국당의 '노딜' 전략으로 넉달 째 국회가 사라졌다

올해 쟁점법안은 1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한겨레
28일 오후 국회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나라 안팎의 악재들이 겹치며 해결이 시급한 현안이 쌓여가고 있지만, 정작 입법과 예산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는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29일 7월 임시국회 소집이 예고돼 있지만,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원포인트 안보 국회’에 이견이 있는 여야는 주말 사이 어떤 의사일정도 잡지 못했다. 국회의 책임 방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올해 국회가 법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를 연 날은 단 사흘이다. 통과된 법안들은 모두 비쟁점 법안들로, 여야 간 이견이 있는 쟁점 법안은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지지층 결집에만 집착하는 정치지형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에선 ‘강 대 강’ 대치 국면, 여야의 적대적 공생이 굳어지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 법안 성사 ‘0’인 상임위 5곳

28일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중 올해 들어 법안 제·개정을 1건도 해내지 못한 상임위가 5곳이나 된다는 점은 국회가 얼마나 본업에 손을 놓고 있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곳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문화체육관광위원회·정보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다.

본회의 통과 법안 수도 참담한 수치다. 총선이 있었던 2016년(4~12월) 720건을 처리한 20대 국회는 2017년에 2121건, 2018년에 2723건의 법안을 처리했다. 올해 들어서는 200일이 넘도록 425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마비 상태인 셈이다. 지난 4월5일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뒤 115일이 흘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월25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95일째 표류 중이다. 2조3천억원 규모였던 2000년 추경안(106일) 이후 역대 두번째 장기 표류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추경이 더 급해졌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일본 규탄 결의안도 의결하지 못했다. 미국의 중재 등을 요청하러 지난 24일 출국한 국회 방미단은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한 결의안만 손에 들고 떠났다.

 

한겨레
2018 정부 부처별 결산보고서가 28일 오후 국회 본관에 쌓여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 제1야당의 ‘노딜’ 전략

여야의 대치는 흔한 일이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어떤 것도 합의해주지 않는’ 자유한국당의 기조가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추경안 협상 과정에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보여준 태도가 대표적이다. 추경 처리 조건으로 사실상 수용 불가능한 ‘패스트트랙 철회’ 등을 요구하다가 이후 ‘경제실정청문회 개최’, ‘북한 목선 국정조사’,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 등 요구사항을 추가하며 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갔다. 협상 과정을 잘 아는 한 민주당 의원은 “계속 새로운 조건을 붙이니 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당 안에서도 나 원내대표의 협상 태도에 불만이 많다. 국회 공전으로 야당 의원들의 법안도 함께 멈춰 섰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수도권 재선 의원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하는데 잘 안된다. 당내 강경파와 협상파 사이의 조율이 쉽지 않고, 나 원내대표가 빨리 결정하는 스타일도 아니다”라고 짚었다.

한국당이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진박’ 세력에게 장악되면서 예견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 정부의 손발을 묶어 놓는 게 목표처럼 되다 보니, 현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국회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황 대표의 인식 자체가 경직돼 있고 수구적인 면이 있다. 모든 걸 반대하는 ‘국회 보이콧’ 기조를 유지하다 보니 (한국당이) 얻는 게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번 대통령-5당 대표 회담에 응한 것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것일 텐데, 결국 회담 뒤엔 다시 ‘반대’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지적이다.

 

■ 큰 의지 없는 여당

여당의 ‘절박하지 않음’도 한국당의 이런 태도와 맞물리면서 국회 경색을 장기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이 7월 임시국회의 조건으로 추경 처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도 이중적인 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추경 규모가 너무 작고, 타이밍도 놓쳤다. 7월이 지나면 본예산으로 하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겨우 6조7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하려고 대단한 걸 양보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당내에 파다하다”고 전했다. 한국당 원내지도부 출신 한 의원은 “정부·여당은 예비비로 8월까지 쓰고 9월부터 추경을 투입해도 된다는 계산이 끝난 것”이라며 여당의 ‘의지 없음’을 비판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민주당이 추경 지연을 방치하며 ‘국정 발목잡기’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려는 것이라는 불만이 많다.

여당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법안 중 일부가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점도 여당의 나태를 부르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당 한 의원은 “지난해 연말엔 예산안 통과를 위해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등 눈에 안 보이는 양보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총선을 잘 치러 좀더 유리한 국회 지형을 만든 뒤 개혁 입법을 시도하는 게 낫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국회 지형에선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취지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청와대와 친문 핵심 그룹은 영남세력이 주도하는 자유한국당이 본인들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본다. 양보해서 뭔가를 받아내겠다는 생각이 크지 않고, 이는 현재 국회를 작동하지 않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도 “청와대가 독주하면서 정당들이 소외되고 있고 이에 대한 퇴행적 반응이 국회 공전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며 “정당의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청와대가 통합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국면에서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국민도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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