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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27일 17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7월 27일 17시 25분 KST

국회의원들 해외출장이 ‘외유’인 것만은 아니다

의원외교도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금태섭 의원
이낙연 국무총리의 지난 13~22일 방글라데시·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타르 순방에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기선 자유한국당 의원,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갔다. 지난 14일 방글라데시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주최하는 공식만찬에서 (왼쪽부터) 금태섭 의원, 셰이크 하시나 총리, 이낙연 총리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국외순방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타르를 다녀왔다. 자유한국당 김기선 의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그리고 무소속 이용호 의원이 함께 갔다. 첫번째 방문국인 방글라데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주최하는 공식 만찬에 참석했는데 헤드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국내에서라면 초선 의원이 공식행사에서 다른 나라 정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외국에 가서 제한된 수의 대표단에 포함되어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쪽 인사들은 대부분 장관급 고위직이었다. 내 옆에 앉은 분은 여성인데 명패를 보니 국회의원이었다. 혈세를 쓰면서 온 출장인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직무유기 아닌가. 말을 붙여봤다.

몇선 의원이시냐고 물었더니 3선이라고 한다. 나는 초선이고 의원이 되기 전에 검사, 변호사였다고 했더니 그쪽은 초선 때 외무부 장관, 재선 때는 의회 외교위원장을 지냈고, 3선 의원이 된 지금은 교육부 장관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다방면에서 쌓은 눈부신 경력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전공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방글라데시에서 의학 학위를 딴 뒤에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다시 학위를 했고, 런던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초선 의원으로 외무부 장관을 할 때는 인도, 미얀마와 분쟁이 있었는데 국제재판소에 가는 것으로 합의해서 직접 소송을 수행했고 두 건 다 승소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이셨다.

경력으로나 학력으로나 완전히 밀리는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대로 기가 죽을 수는 없는 일.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심 끝에 이렇게 물었다. “주말에 지역구 활동 하시느라 힘드시죠?”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결혼식, 장례식 다 참석하느라 죽겠다, 주말이고 뭐고 가정생활이 전혀 없다, 얼굴 안 비치면 유권자들이 난리난리 한다 하소연을 하신다. “저도 그렇답니다. 내년에 선거가 있어서 동네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축구 행사에도 가야 하고….”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대국 주요 인사와 개인적 친분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우리나라와 방글라데시 사이에 긴급한 현안이 있지는 않지만 변화무쌍한 외교판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방글라데시의 도움이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연락을 해볼 수 있다. “안녕하세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낙연 총리가 방문했을 때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금아무개 의원입니다. 긴한 부탁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세금 낭비일 뿐일까

그러나 의원 외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다. 국회의원이 국외출장을 다니는 것을 흔히 ‘외유’(外遊)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외국에 가서 놀다’라는 뜻이다. 그런 용어가 쓰일 만큼 인식이 좋지 않다. 없어져야 할 대표적인 특권 중 하나로 꼽힌다. 잊을 만하면 언론에는 해외출장 중인 국회의원들이 관광지에서 희희낙락하는 사진이 실린다. 기사에 나온 의원들은 업무상 필요한 출장이었다거나 혹은 출장 기간 중 주말이어서 공식 일정이 없었다는 등의 변명을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특별한 용무도 없으면서 아까운 세금을 낭비한 사례로 여론의 융단폭격을 받게 된다.

인터넷에는 물의를 일으켰던 ‘외유’ 사례들을 연도별로 정리한 자료도 돌아다닌다. 몇몇 예를 들어보면, “1994년 극심한 가뭄으로 나라가 힘들어하는 가운데 ○○당 일부 의원이 외유 길에 나서 논란”, “2011년 새해 예산안 날치기와 구제역 사태로 나라가 시끄러운데 대거 해외 순방”, “2012년 한 의원이 국회 임기 1주일을 남기고 해외 출장. 마지막까지 혈세를 낭비함”, “2017년 박근혜 탄핵에도 국회의원들은 외유” 등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들은 국외출장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다. 국회가 파행 중이거나 중요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등 시기상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 것 같으면 출장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일도 잦다. 심지어 아예 안 가는 경우도 있다. 재선 의원 한분이 자신은 초선 때 4년 임기 동안 한번도 해외출장을 안 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오히려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업무 중 하나인 의원외교 활동을 특권의 일종으로 여기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가 아닐까. 크게 논란이 되었던 장면을 하나 보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7월22일, 여야는 지루한 공방 끝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하고 본회의 표결에 부쳤다. 문제는 이때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많은 의원들이 해외출장 등의 사유로 회의에 불참했고 의결정족수(국회의원 300명 중 과반수, 즉 151명이 참여해야 표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를 채우기 위해서 회의를 2시간이나 늦추어야 했다. 간신히 투표가 이루어지고 예산안은 통과되었지만 티브이 화면에서 이런 모습을 본 지지자들은 격분했다. 언론들은 중요한 표결을 앞두고 국외출장을 떠난 의원들을 강력히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추경 겨우 통과할 때 의원님들 어디 계셨나요’가 그때 한겨레 기사 제목이다.

언론 보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네티즌들은 의원들의 출석 여부가 표시된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고 의원들의 페이스북 계정에 댓글을 달면서 해명을 요구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출장 중이던 의원들이 줄줄이 해명과 사과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지지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이 간곡하게 요청한 첫번째 추경 예산안이 오랜 진통 끝에 표결에 부쳐지는 날 한가하게 외유나 다니는 국회의원들이라니! 불똥은 내 발등에도 떨어졌다. 나도 이때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가정폭력 관련 출장을 떠나서 워싱턴DC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억울한 사정도 없지 않았다. 국회의원은 국외출장을 가기 전에 소속 정당의 원내 지도부를 거쳐 국회 사무처에 ‘국외활동 신고서’를 제출한다. 신고서는 국회의장이 직접 결재를 한다. 즉 미리 출장 내용을 알려서 승인을 받아야만 떠날 수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찾아간다고 상대 국가의 고위 관료나 의원들이 그냥 반갑게 만나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길게는 몇 개월 적어도 주 전에는 약속을 잡고 일정을 짜야 한다. 그렇지만 추경 예산안 처리같이 중요한 표결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면 당 지도부에서 출장 연기나 취소를 요청했을 것이고 의원들은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여야 지도부도 그 시점에 합의가 이루어질지 예측을 못했던 것이다. 출장 일정도 빡빡했다. 가정폭력 사건을 전담한 경험이 있는 판사, 검사 그리고 시민단체 대표 한 분과 의원 두 명이 간 출장이었는데 거의 쉴 틈 없이 관련 단체 및 전문가들과 회의가 잡혀 있었다. 미국 정부 초청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예산을 쓰는 출장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표결에 불참하게 된 점에 대해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정치인은 유권자들의 질타를 한없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법이다. 출장 내용과 일정표를 페이스북에 올려서 소상히 설명을 드린 다음 “혹시라도 의결정족수 미달로 추경이 통과되지 못할까봐 마음을 졸이셨을 분들에게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썼다. 국회 사무처와 각 정당도 이 사건 이후 출장 심사를 좀 더 엄격하게 하기로 하고 제도 개선도 했다.(문희상 의장은 2018년 1월 ‘국회의원의 외교활동 등에 관한 규정’을 전면 개정했다. 해외출장 결과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출장 성과 및 소요 예산 등을 국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외부 전문가들을 참여시킨 ‘국외활동 심사자문위원회’와 ‘의회 외교활동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금태섭 의원
이낙연 국무총리의 국외순방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지난 16일 타지키스탄을 방문한 금태섭 의원이 아짐 이브로힘 부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의원외교도 조금씩 진화

그러나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국외출장이나 의원외교 활동이 다른 의정활동에 비해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날로 격해지는 일본의 경제 도발과 관련해서 유력한 특사 후보로 꼽히는 이낙연 총리는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을 지내면서 인맥을 넓히고 경험을 쌓았다. 만일 이 총리가 의원 시절 외국출장을 안 다니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국회의원이었다면 우리는 대표적인 일본통 한 사람을 놓쳤을 수도 있다. 이낙연 총리는 이번 순방을 수행하는 후배 의원들에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일관계에서 겪었던 일화들과 주요 인사들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의원외교 활동도 조금씩 진화한다.

국회의원들의 국외출장이 지탄의 대상이 된 것에는 무엇보다 의원들의 책임이 크다.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물의를 일으켰던 과거의 사례들을 듣다 보면 우리부터 얼굴이 붉어지는 때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원들의 외교활동을 심사하는 제도도 상당히 정교해졌을 뿐만 아니라 의원들 스스로도 나름의 노력을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국내에서 싸움만 일삼는 것 같은 의원들도 외국에 나가면 한목소리를 낸다. 국회 예산으로 출장을 떠날 때는 반드시 대표단에 여야 의원이 함께 참여하게 하는데 상대 국가 대표들과 회의할 내용을 논의하다 보면 평소 몰랐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국회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순방에서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기 전에는 그곳의 국민작가라고 할 수 있는 친기스 아이트마토프의 대표작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읽고 갔다. 400쪽짜리 소설을 굳이 다시 찾아 읽은 것은 키르기스스탄 의원들과 면담을 할 때 “친기스 아이트마토프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키르기스스탄은 인구 600만의 작은 나라지만 역시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도움이나 지지를 필요로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럴 때 그 나라의 의원이 우리 일행을 기억하게 할 수 있다면, 책 한권 읽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 해외출장이 ‘외유’인 것만은 아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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