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 1952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첫 번째 총리는 영국의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 경(Sir Winston Churchill)이었다. 버킹엄궁에서 상징적인 ‘손에 입을 맞추는’ 의식을 마친 이후, 이제 보리스 존슨은 여왕이 열 네번째로 맞이한 총리가 됐다.
브렉시트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아직 브렉시트가 벌어지지 않은 지금, 영국은 1945년 이래로 가장 큰 국내적, 국제적 격변을 마주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에서 제기되는 핵심 질문은, 과연 알렉산더 보리스 디페펄 존슨에게 그럴 역량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고, 그가 이끄는 정부는 전임자인 테레사 메이의 정부와 어떻게 다를까?
존슨에 대해 잘 모르는, 영국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답은 그가 “더 나은 조크와 더 나은 두뇌를 갖춘 트럼프”라는 설명일 것이다.
분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그리고 포퓰리스트이자 정치계의 이단아라는 그의 브랜드를 좋아한다. 이번주 워싱턴 연설에서 트럼프는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터프하고 똑똑하다. 사람들은 그를 ‘영국의 트럼프’라고 부른다.”
실제로 몇 년 전 뉴욕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존슨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려는 사진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때 한 여성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는 이 광경에 매료된 그 여성이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와, 트럼프예요?”
센트럴파크 인근에서 벌어진 이와 같은 사건은 한 번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그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트럼프와 존슨에게는 신체적으로, 정치적으로, 정서적으로 공통점이 정말 많다. 두 사람이 그토록 잘 지내는 이유, 혹은 미국인들이 두 사람을 혼동하는 이유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사람의 표면적인 유사점들은 빤하다. 특히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코믹한 금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 두 사람은 모두 뉴욕에서 태어났다. 트럼프는 퀸즈에서, 존슨은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존슨은 2016년에야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홍보에 능하며, 자신들의 유명세를 - 보기에 따라서는 거부감과 매력을 거의 똑같이 뿜어내면서 - 정제되지 않은 정치적 힘으로 바꿔내는 재능이 있다.
보리스 존슨의 전기 <보리스 : 보리스 존슨의 부상(Boris : The Rise of Boris Johnson)>을 쓴 앤드류 김슨은 런던 시장과 외무장관을 지낸 존슨에게는 다른 영국 정치인들이 갖지 못한 트럼프와의 연결점이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오늘날 그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가 항상 일종의 쇼에 출연하는 위대한 연기자(performer)이기 때문이다. 보리스도 연기자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고 재밌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런 점에서 자신들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거다.” 김슨의 말이다.
“또다른 연결점은 두 사람 모두 멸시당하고 수많은 똑똑한 대도시권 (엘리트층)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름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은 ‘그들이 무언가 옳은 일을 하고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드름 피우는 진보 위선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그들에 대한 일종의 복수와도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반(反)기득권 훼방꾼이다. 그들은 정치는 매우 근엄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 어떤 것도 절대 트윗으로는 발표하지 않을 이른바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보리스도, 트럼프도 따분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기술‘에는 영민한 면도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적 모험들 중 상당수가 끔찍한 실패로 끝났으며,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파산을 면했음에도 ‘성공한 사업가’라는 억지로 꾸민 TV 셀러브리티 이미지를 활용했다.
존슨 역시 실제로는 대단한 야심가이자 경쟁심 강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 동안 ‘갈팡질팡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실수 투성이의 악의없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공적 ‘페르소나’를 만드는 데 공을 들여왔다.
그는 체면을 차리지도, 고상하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우아한 액센트도, 젠체하는 기색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덕분에 존슨은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했고, 친숙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영국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성(last name) 대신 그저 이름(first name)으로 불리는 매우 드문 정치인이다.
옥스퍼드대 재학 시절 때부터 시작된 이같은 행동 덕분에 그는 많은 보수당 지지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웃음짓게 만드는 드문 재주가 보리스 존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그의 위태로운 농담이나 현란한 언변 만큼이나 친숙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를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와 같은 퍼포먼스가 실제로는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또다른 전기 <저스트 보리스 : 금발 야망의 이야기(Just Boris : A Tale of Blond Ambition)>의 저자 소니아 프루넬는 1990년대 초반 브뤼셀에서 보리스와 함께 기자로 일했다.
“그는 대단한 배우이자 쇼맨이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그 모든 행동은 너무 야심 있는 인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수’는 정말로 실수가 아니라 대본에 짜여진 것들이다.” 프루넬은 말한다.
2007년 보수당 전당대회 때 초청 연사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동안 존슨이 연설하는 걸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비록 마이크는 켜져 있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두서없이 말을 더듬는군.”
그러나 프루넬은 아놀드가 존슨의 행동에 속아 넘어간 또 한 명일뿐이라고 지적한다. “장황하고 두서없는 말들은 다 대본에 써있었다.” 프루넬이 말했다. “이건 그가 다음날 다른 청중들 앞에서도 똑같은 식으로 장황하고 두서없게 떠들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예행연습을 거친 연설이었다.”
그는 대단한 배우이자 쇼맨이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그 모든 행동은 너무 야심 있는 인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실수’는 정말로 실수가 아니라 대본에 짜여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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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람, 또는 도발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보리스 존슨의 열망이 나중에 그의 발목을 잡은 사례도 꽤 있다. 그가 기자 시절 썼던 칼럼은 비판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분노를 초래했는데, 특히 인종차별적 비방으로 빠진 글들이 그렇다.
2002년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썼던 칼럼에서 그는 순방에 나선 여왕을 향해 ‘국기를 흔드는 파카니니(piccaninnies ; 흑인 어린이를 비하하는 표현)’에 대한 농담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토니 블레어 당시 총리가 해외 순방만 다닌다고 비아냥거리면서 콩고 군인들이 “영국 시민들의 세금이 들어간 하얀 새(전용기)를 탄 이 위대한 백인 우두머리가 내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수박 미소(흑인을 비하하는 표현)를 터뜨릴 것”이라고 적었다. 이후 그는 사과했지만, 보리스의 지인들은 그의 아이러니와 사캐즘(sarcasm)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