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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고 싶다면 릴 나스 엑스의 엄청난 성공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음악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잘 봐야 한다

  • 박세회
  • 입력 2019.07.24 18:02
  • 수정 2019.07.24 18:06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릴 나스 엑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릴 나스 엑스.  ⓒHGL via Getty Images

릴 나스 엑스를 모르다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처의 작은 도시에 사는 1999년생 비트 메이커 영키오(Young Kio)는 유튜브의 바다를 돌아다니다 아름다운 벤조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노래가 없는 연주곡이었다. 아티스트의 이름이 낯설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 30~40세대에게는 익숙한 이 이름을 영키오는 전혀 몰랐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전까지는 나인 인치 네일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19살 소년이 1998년에 데뷔한 노장밴드가 2008년에 발표한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Ghosts I–IV’의 34번 트랙을 발견하면서 음악의 역사가 작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영키오는 이 음원을 샘플링 해 ‘나인티’라는 비트로 만들어 인터넷 비트 시장에 내놨다.

조지아 애틀랜타에 사는 1999년생, 영키오와 동갑내기인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비트스타즈(BeatStars)에서 영키오의 비트 ‘나인티’를 30달러에 리스(임대)했다. 릴 나스 엑스는 영키오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그는 그저 컨트리 풍이 섞인 벤조 반주의 트랩 비트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리스’는 말 그대로 리스다. 리스한 비트에 노래나 랩을 얹어서 일정 수익 이상을 내려면 비트 임대료를 더 내야 한다. 릴 나스 엑스는 한국 돈 약 3만원에 임대한 영키오의 비트에 컨트리 풍의 버스와 랩을 얹어 사운드 클라우드와 아이튠즈에 올렸다. 노래 녹음은 자신의 침실과 할머니 방에서 했다. 음원을 올릴 때 살짝 노림수가 있었다. 박 터지는 힙합 카테고리의 전장에서 싸워서는 눈에 띄지도 못하고 사라질 거라 예상했다. 비교적 한산한 ‘컨트리’ 카테고리를 노리고 장르를 ‘컨트리’로 정했다. 작은 시장에서 이름을 날려 먼저 바이럴의 파도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Youtube/Lil Nas X

첫 파도는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 중이던 ‘틱톡’에서 불어왔다. 당시 틱톡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선 ‘이호 챌린지’(Yeehaw challenge)가 유행이었다. 와일드 웨스트 백인 문화의 상징인 카우보이 모자, 체크 무늬 셔츠, 가죽 부츠에 로디오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넘쳐났다. 

특히 틱톡 같은 영상 위주의 플랫폼에서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다가 ‘짠’하고 카우보이 풀착장으로 변신하는 트릭 영상들이 넘쳐났다. 카우보이 복장으로 변신하는 영상에 무슨 노래가 어울릴까? 카우보이 모자를 쓴 흑인 래퍼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라고 아니? 빙고! <올드 타운 로드>는 이호 챌린지의 거의 모든 영상의 공식 배경음악처럼 쓰이며 빛의 속도로 퍼져나갔다.

세상이 릴 나스 엑스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106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저스틴 비버가 “<올드 타운 로드>라는 노래 좋아”라고 자기 인스타그램에 밝혔다. 3월에는 빌보드가 “현대 컨트리 음악의 특징적인 요소를 충분히 포함하고 있지 않다”라며 <올드 타운 로드>를 컨트리 차트에서 빼야겠다고 발표했다. 흑인 가수가 부른 컨트리-트랩 노래를 컨트리 장르 카테고리에서 빼겠다고 나서니, 당연히 인종차별 논란으로 난리가 났다. 라인 댄스(미국 남부에서 주로 추는 단체 춤)를 추는 세상의 모든 컨트리 클럽에서 나오는 노래 ‘Achy Breaky Heart’를 부른 빌리 레이 사이러스가 “릴 나스 엑스의 노래는 컨트리가 맞다”며 나서더니 심지어 릴 나스 엑스와 같이 음원까지 발표했다. 그 노래가 지금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5주째 정상을 찍고 있다. 빌리 레이 사이러스의 딸이 마일리 사이러스라 글래스톤베리에서 셋이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건 아주 작은 해프닝 정도로만 기억하자.

콜롬비아 레코드가 배포한 릴 나스 엑스의 사진.
콜롬비아 레코드가 배포한 릴 나스 엑스의 사진. ⓒ콜림비아 레코드 제공

최근 엘튼 존을 제치고 빌보드 정상에 가장 오래 머무른 퀴어 아티스트의 자리를 차지한 그는 커밍아웃도 멋지게 했다. 한창 첫 싱글 <올드 타운 로드>가 빌보드 1위를 달리는 중인 6월 20일에 데뷔 EP <7>을 발매하고 같은 달 말에 “대놓고 티를 낸 것 같다”라며 앨범 재킷 사진을 올렸다. 재킷 사진에서 말을 탄 릴 나스 엑스가 향하는 도시의 네온 사인은 무지갯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의 커밍아웃 사실은 물론 “(릴 나스 엑스는) 커밍아웃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사람들이 릴의 음악보다는 게이라는 사실만 말할 것”이라는 영 서그(Young Thug)의 걱정 섞인 푸념까지 모든 게 기사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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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나스 엑스의 첫 EP <7>의 앨범 재킷.  ⓒColumbia Records

닐로의 <지나오다>가 바이럴 마케팅으로 멜론 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 ‘한국 시장이 작아서 가능한 일’, ‘미국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릴 나스 엑스는 이 엉성한 논거를 뒤집는 반증이다. 일각에서는 릴 나스 엑스를 진짜 뮤지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케팅의 천재’로 깎아내린다. 릴 나스 엑스의 반응은? 그는 트위터에 “루머는 사실이다. 나는 마케팅의 천재”라고 받아쳤다. 그렇다. 어쩌면 그가 지난 반년 사이에 이룬 ‘아메리칸 드림’은 우연을 가장한 마케팅 전략의 승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뮤지션이 마케팅을 잘 해서 나쁠 게 무언가? 아리아나 그란데가 지미 키멜 쇼에 나가서 자기 앨범 홍보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나? 릴 나스 엑스가 음원을 발표한 직후부터 11살짜리 컨트리 가수 메이슨 램지를 바이럴 스타로 키워낸 음악 마케팅 전략가 대니 강(Danny Kang)과 함께 일해 온 것은 사실이다.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줄 최고의 짝을 찾은 셈이다. 실제로 그가 바이럴의 흐름에 큰 관심을 뒀다는 증거도 있다. 2019년 1월 4일 미국의 디시인사이드 격인 게시판 형태의 웹사이트 레딧(Reddit)에는 “‘take my horse to the old town road’로 시작하는 노래 제목 아는 사람?”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릴 나스 엑스 본인이다. 릴 나스 엑스의 기사를 찾아 읽을 때면 항상 읽는 내 눈이 얼어버릴 만큼 쿨하다. 마케팅이 뭐? 마케팅으로 성공한 게 우스운가?

*해당 블로그는 힙합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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