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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남긴 꿈, 제7공화국

그가 우리에게 가리킨 방향만은 선명하다.

ⓒ뉴스1

며칠 뒤면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아직도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다행히 때맞춰 그를 기리는 책도 나오고 여러 행사도 열린다고 한다. 너무 안타깝게 떠나보낸 서러움과 아쉬움뿐만 아니라 작금의 현실을 그라면 어떻게 헤쳐 나갔을지 짐작해보려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특히 촛불 항쟁 이후 뜨겁게 타올랐던 사회 개혁의 기대가 거듭 배반당하는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과연 어떤 답을 내놓았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와 관련해 그의 궤적 가운데 유독 강렬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다. 이때 경선에 뛰어든 노회찬은 인상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바로 ‘제7공화국 건설운동’이었다.

우선 ‘제7공화국’이라는 말은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제6공화국을 살고 있음을 환기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뒤에 좀처럼 다음 단계를 향해 전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아프게 드러냈다. 노회찬은 흔히 ‘신자유주의’라 이야기되던 외환위기 이후의 약탈적 경제 질서 역시 제6공화국 기득권 세력의 지배가 강화된 결과라 진단했다.

이런 현실을 넘어서려는 숱한 열망을 집약한 구호가 곧 ‘제7공화국’이었다. 제7공화국이 실현해야 할 양대 가치로는 평등과 통일이 꼽혔고, 경제와 복지를 비롯해 생태환경, 소수자 인권, 노동과 농업, 평화와 통일, 국민주권에 이르는 비전이 망라됐다.

지금 봐도 인상적인 대목이 많은데, 가령 국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4대 기본권으로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를 꼽은 점이 그렇다. 토지공개념의 선례에 따라 아예 교육공개념, 의료공개념, 주택공개념, 일자리공개념이라 했다.

국가가 어떻게 책임진다는 말인가? 주택공개념을 위해서는 한 가구가 주택을 두채 이상 보유하지 못하게 하고 일정 규모가 넘는 대토지 또한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했다. 일자리공개념은 비정규직을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고 국가가 공공부문을 통해 이런 일자리를 공급할 의무를 지게 함으로써 실현하겠다고 했다. 의료공개념을 위해서는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를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 같은 조세 지출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고, 교육공개념은 대학까지 무상 교육, 전면적인 대학 평준화, 대학 입시 폐지와 입학자격시험 도입으로 실현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런 복지 체계를 뒷받침할 새로운 경제 질서도 제시했다. 제7공화국에서는 정부, 재계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 대표들이 참여하는 ‘평등경제위원회’가 경제 전체의 기본 계획을 짜고 시장을 조절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특히 노회찬은 제헌헌법에 명시됐던 이익균점권에 주목했다. 영리 목적의 사기업에서 노동자가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는 제헌헌법 제18조를 오늘날에 맞게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단, 기업별 이익 격차가 커서 특정 기업 노동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으므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초기업 단위에서 관리 배분하여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원대한 구상은 오랫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2007년 대선 후보로 선택받지 못했고, 그래서 제7공화국 구상도 대중에게 다가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10여년간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퇴행에 맞서는 일이 급선무가 돼버렸기에 노회찬도, 진보정당운동도 제7공화국 같은 자기만의 비전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다.

작고하기 얼마 전에야 노회찬 의원은 정의당 개헌안을 만들며 제7공화국 구상에 담았던 이상과 과제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가 없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가리킨 방향만은 선명하다.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마지막 말에서 그 “앞”은 어디를 향하는가? 그것은 평등과 평화의 나라, 제7공화국 건설운동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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