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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국인 영화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우익을 만났다

위안부 다룬 다큐 영화 ‘주전장’ 감독 미키 데자키 인터뷰

  • 박수진
  • 입력 2019.07.20 09:00
  • 수정 2019.08.14 17:19

“일본 사람들은 학교를 다닐 때 위안부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얻는 정보들은 모두 뉴스에 나오는 것들이고, 뉴스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소녀상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소녀상이 뉴스에 나오면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자극하려고 또 만들었구나’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내 친구들조차 내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자 ‘아, 그거 거짓말이잖아’라고 반응했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소녀상에 관한 뉴스는 (그 자세한 뒷이야기보다) 언론이 혐오 정서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36세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는 2003년 처음 일본 대학에 공부하러 간 것을 계기로 죽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일본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며, 그는 일본 사회에 대해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2013년, 데자키가 ‘일본에는 인종차별이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영상들을 올리자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당신은 일본을 모른다”, “당신은 차별이 뭔지 모른다”. 여기에서 나아가 “한국인 아니냐”, “중국인 아니냐”는 댓글들이 달렸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3년 동안 오가며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의 출발점이었다.

‘주전장’은 일본의 보수 우파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논쟁의 주요 싸움터를 미국으로 확대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 위안부 문제는 그들에게 그렇게도 중요한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직접 찾아본 데자키 감독을 만났다.

 

미키 데자키
미키 데자키 ⓒ이윤섭

 

“위안부에 대한 논의가 생산적으로 흘러가길 바랐다”

 

-여러 이슈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취재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인종차별에 대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국수주의자들의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 그런 일이 있고 2년 정도 지난 후에 우연히 아사히신문에 한국인 위안부 관련 기사를 썼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가 나와 비슷한 종류의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궁금해졌다. 왜 그들은 일본의 인종차별을 지적한 내 영상을 숨기려고 한 것처럼, 위안부 문제를 숨기려고 하는 것인지. 왜 그렇게까지 많은 노력을 들여 부인하고, 숨기려고 하는지 흥미로웠고 궁금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취재해 보도했던 전직 <아사히신문> 기자가 일본 우익들의 협박 공세를 이기지 못해 재직하던 대학에서 물러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30일 오사카부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오사카사야마시에 자리한 데즈카야마학원대학에 재직하던 <아사히신문> 출신 문학부 교수(67)가 지난 13일 “그만두지 않으면 대학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의 복수의 협박문을 받고 대학을 그만뒀다고 보도했다.

대학의 법인 이사장과 총장 등 앞으로 배달된 에이(A)4 용지 두 장 분량의 협박문에는 이 기자가 요시다 세이지의 허위 증언을 근거로 기사를 썼다고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그만두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나쁜 일을 겪게 하겠다. 못을 넣은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서를 담은 봉투에는 협박문 외에 못 한개가 동봉돼 있었다.

-2014년 9월 30일, 한겨레

  

-인종차별에 관한 영상에는 어떤 댓글들이 달렸나?

=”반일이다”, “이 사람 분명 한국인일 거다”, “중국인일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를 한다”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댓글들이 내세운 근거는 기본적으로 “나는 인종차별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백인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덜 인지하는 것처럼, 자기가 다수자에 속하면 인종차별을 경험하거나 보지 못 하는 법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일본에 인종차별이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 하는 또다른 이유는 미디어가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미디어에서 어떻게 다뤄지나.

=없는 이야기를 꾸며낸다기보다는, 특정 사건만 집중적으로 보도해 정확히 무엇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전체적인 배경을 알려주지 않는다. 한국의 미디어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한 가지에 집중해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 것.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도 언론이 보여주지 않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과 맥락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뉴스는 짧은 시간 안에 보도해야 하고, 그래서 한 부분에만 집중하곤 하는데 그런 보도는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본에서는 위안부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얻는 정보들은 모두 뉴스에 나오는 것들이고, 뉴스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소녀상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소녀상이 뉴스에 나오면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자극하려고 또 만들었구나’라고 쉽게 생각해버린다. 내 친구들조차 내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자 ‘아, 그거 거짓말이잖아’라고 반응했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와 한국인들의 이해에 워낙 차이가 있다. 나는 그 차이를 좁히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생산적으로 흘러가길 바라서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일본의 우파는 왜 전쟁 범죄를 부인하나

 

-영화에는 스기타 미오 자민당 의원부터 자칭 역사학자, 민간단체 수장까지 일본의 우익 인사들의 인터뷰가 여럿 등장한다. ‘반일 유튜버’로 알려졌는데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내가 일본계 미국인이고, 조치대학에 다닌다는 소개에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일본의 우익 인사들은 미국인들의 생각, 특히 일본계 미국인 2세·3세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아주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와의 인터뷰가 그 매개점, 시작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듯 하다.

또 조치대학이 일본에서 명문대로 유명하기 때문에 대학 간판을 보고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고 판단했지 않을까 싶다. ‘(주류 세계의 일반인이) 우리의 의견을 알아주는구나,’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영화 '주전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우익 인사들
영화 '주전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우익 인사들

 

-그들과 직접 이야기하며 받은 인상은 어땠나.

=위안부와 같은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이들을 소위 ‘(역사)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이 ‘수정주의자’들이 그렇게 열정과 노력을 들이는 기저에는 “일본은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다. “일본은 잘못을 하지 않는다.” “선조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리 없다.” 여기에 또 일본은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우등하다는 생각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종주의도 당연히 있다.

이 생각을 중심에 두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들을 모으며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모든 논쟁거리들의 결론 역시 ‘일본인은 특별하다’는 생각 하나로 모인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강하게 믿는 것인가?

=그렇다. 일본군이었던 이들이 위안부가 성노예였다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것에 대해, 전쟁 당시 중공군에 잡혀 세뇌되어 그렇게 말하는 것일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가해 군인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깎으려고 한다. 그들은 일본인이 난징대학살 같은 걸 했다고 상상조차 하지 못 한다. 인종차별, 파시즘, 성차별이 모두 있다.

 

-말한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은 위안부 여성, 그리고 여성 일반에 대해 매우 차별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위안부는 존중받을 필요가 없고, 그래서 그들을 기리는 동상을 모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일으킨 것은 못 생긴 사람들이었다”고 말하는 극우 인사가 있었다.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다. 심지어 그때 인터뷰를 진행한 건 여성이었다.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세상에 많지만 그런 식의 생각까지 겉으로 드러내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완전히 마음 속에서 그런 차별적인 생각을 합리화한 것 같았다.

 

-차별주의자인 국회의원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듣는 것은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가 가진 제도적, 대중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는 훨씬 더 편협하거나 아예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늘어놓는 민간 우익 인사들의 인터뷰도 꽤 긴 시간 등장한다. 그들의 주장을 듣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독일 나치 추종자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보도 준칙 같은 게 있지만, 일본의 극우주의자들과는 경우가 다르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하지만 일본에서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건 소수의견이 아니다. 많은 이들에게 퍼져있는 생각이다.

 

ⓒ영화 '주전장' 중 히사에 케네디 인터뷰 장면

한때 ‘수정주의자’로 활동했던 히사에 케네디는 우익 활동을 시작했던 이유와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비난을 받으면, 마치 제가 공격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뭔가 반론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한 것 같고 안심이 되니까요.”

“일단 국수주의자들의 집단에서 빠져나오면 그때부터 당신에게는 적이 없어집니다. 활동을 그만둔 후 그런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이야기하지 않는데 나아질 수는 없다”

 

-일본에서 먼저 개봉했는데, 일본 관객들 반응은?

=일본 관객들은 엄청나게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싫어한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실 그들은 영화를 보지조차 않은 사람들이다. 소름 돋았다는 젊은 관객도 있었고, ”올해 본 영화 톱10 중 하나”라고 평가해준 관객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위안부’라는 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영화를 적극적으로 보고 싶어하고, 반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도 한다는 게 매우 특별했다.

나이든 관객들보다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이 더 큰 것 같았다. 젊은 세대는 윗세대에 비해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다시 처음 이야기한 유튜브 영상으로 돌아가보자. 당신이 ”일본에도 인종차별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걸 인지하지조차 못 한다”고 말한 것이 6년 전이다. 그 사이 일본에서는 혐한집회의 규모가 커졌고, 이에 대항해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의 집회까지 열렸다.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3년 전에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규제하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도 국회에서 통과됐다. 지난 몇 년간 일본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어왔다고 보나?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은 미디어와 학교에 있다.

미디어와 학교가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교과서에는 부정적인 역사가 실리지 않고, 외국인과 소수민족 등 일본 안의 소수자들이 겪는 일에 대한 심층 보도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야기하지 않는데 나아질 수는 없다.

최근 한국과의 무역 분쟁이나, 강제징용 관련 쟁점들이 뉴스에 나오지만 사람들에게 전후맥락을 알려주는 ‘좋은 방식’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그저 더 많은 혐오를 만들뿐이다. 미디어와 학교가 바뀌지 않는 한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관객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왜 뉴스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기를 바란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서로를 혐오하도록 만들지 않고, 혐오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도록 보도하길 바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소녀상을 들어섰을 때 시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우익 성향 일본계 미국인 단체에 공식 지지 성명을 작성해 글렌데일시에 보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소녀상을 들어섰을 때 시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우익 성향 일본계 미국인 단체에 공식 지지 성명을 작성해 글렌데일시에 보냈다. ⓒNo Man Productions LLC/시네마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한 이유

 

데자키 감독은 영화를 위해 양편의 활동가들과 역사가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측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와 전쟁 당시 일본 분위기에 대한 소년병 출신 노인의 충격적이고 강렬한 증언도 있다. 하지만 데자키는 이들 중에서도 ‘피해자들의 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인터뷰 영상은 정말 파워풀하다. 침묵을 깨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논의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은 직접 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은 7월 25일 개봉한다.

 

*인터뷰 답변은 명료한 전달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진행/ 박수진, 김한강
사진/ 이윤섭
글/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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