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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가너 : '목조르기'로 흑인 숨지게 한 백인 경관 최종 불기소 처분

5년 전, 가너는 '숨을 못 쉬겠다(I can't breath)'는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 허완
  • 입력 2019.07.17 16:32
  • 수정 2019.07.17 16:39
에릭 가너의 모친 그웬 카가 미국 법무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에릭 가너는 5년 전 백인 경찰관과의 대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법무부는 오랜 조사 끝에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뉴욕, 미국. 2019년 7월16일.
에릭 가너의 모친 그웬 카가 미국 법무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에릭 가너는 5년 전 백인 경찰관과의 대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법무부는 오랜 조사 끝에 경찰관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뉴욕, 미국. 2019년 7월16일. ⓒDrew Angerer via Getty Images

″숨을 못 쉬겠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

2014년 7월17일, 미국 뉴욕 스태튼아일랜드의 한 거리를 걷던 흑인 에릭 가너(당시 43세)는 이렇게 외쳤다. 그 순간, 그는 바닥에 얼굴을 댄 채 경찰관들에게 ‘목조르기’를 당하고 있었다. 

백인 경관 대니얼 판탈레오(당시 29세)는 가너를 체포하려고 했다. 불법으로 낱개 담배를 판매한 혐의였다. 경관이 길 가던 자신을 잡아 세우자 가너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안 팔았다고요. 왜 맨날 볼 때마다 저를 괴롭히는 겁니까. (...) 제발 저를 내버려 두세요. 제발 좀 내버려 두라고요.”

판탈레오 경관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가너는 강하게 저항했다. ”제 몸에 손 대지 마세요.” 그는 당시 총기나 흉기 등을 소지하지 않은 비무장 상태였다.

 

판탈레오 경관은 팔로 가너의 목을 졸랐고, 바닥에 넘어뜨렸다. 팔을 뺀 뒤에는 동료 경찰관 네 명이 가세해 가너를 제압했다. 이 모습은 그의 지인과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으로 촬영됐다.

가너는 목이 꺾인 채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을 정확히 11번 남긴 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심폐소생술 같은 조치도 없이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한 시간 만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비슷한 사건들은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숨을 못 쉬겠다(I can’t breath)’는 가너의 마지막 말은 그대로 ‘Black Lives Matter’ 시위대의 구호가 됐다.

흑인에 대한 경찰관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시위에 등장한 '숨을 못 쉬겠다' 팻말. 에릭 가너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뉴욕, 미국. 2016년 7월7일.
흑인에 대한 경찰관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시위에 등장한 '숨을 못 쉬겠다' 팻말. 에릭 가너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뉴욕, 미국. 2016년 7월7일. ⓒNurPhoto via Getty Images

 

꼭 5년이 지난 16일(현지시각), 판탈레오 경관이 사실상 최종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내려진 판단이다.

애초 뉴욕대배심은 3개월 간의 조사 끝에 판탈레오 경관을 불기소 처분하기로 했었다. 대대적인 시위가 이어지는 등 논란이 거세지자 그 해 12월 법무부는 이 사건에 대한 독립적 조사에 착수했다.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시민권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고, 법무부 장관과 조사팀 수장이 바뀌는 동안에도 조사는 계속됐다. 결론은 쉽사리 내려지지 않았다. 

FBI 수사관들과 뉴욕의 연방 검사들은 판탈레오 경관을 기소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공무집행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혐의가 입증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조사에 참여한 또다른 한 축이었던 법무부 시민권국과 워싱턴DC 검사들은 기소를 주장해왔다. 결국 최종 결정은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 의해 내려졌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법무부는 판탈레오 경관이 의도성을 갖고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에릭 가너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뉴욕 브루클린 검찰의 리처드 도너휴 연방검사가 법무부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러나 감정이 우리의 결정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는 게 연방검사들의 책무다.”

뉴욕 브루클린 검찰의 리처드 도너휴 연방검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법무부의 불기소 결정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욕, 미국. 2019년 7월16일.
뉴욕 브루클린 검찰의 리처드 도너휴 연방검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법무부의 불기소 결정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욕, 미국. 2019년 7월16일. ⓒDrew Angerer via Getty Images

 

가너의 유족과 지지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즉각 법무부의 결정을 규탄했다.

가너의 모친 그웬 카는 ”법무부가 우리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5년 전 내 아들은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을 11번 했다. 오늘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들이 우리를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트위터에 ‘끝나지 않았다’는 문장을 정확히 11번 적었다.

 

가너 가족의 변호인 조너선 무어는 시민권 침해 소송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대통령과 다음 법무장관은 똑같은 팩트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그들이 옳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 정의가 구현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흑인인권운동가 알 샤프턴은 “5년 전 가너는 목졸려 숨졌다. 오늘 연방정부는 자유의 여신의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강하게 분노하는 이유다.”

반면 뉴욕경찰노조(PBA)의 패트릭 린치 위원장은 법무부의 불기소 결정을 반겼다. ”배운대로 직무를 수행하던 성실하고 정직한 경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는 이 사건이 이 도시 전체에 가져다 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사건 이후 내근직으로 근무중인 판탈레오 경관에 대해서는 경찰 내부의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징계를 위한 재판은 종료됐으나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경찰청장은 판결이 나온 뒤에 공식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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