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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15일 22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7월 15일 22시 22분 KST

2개의 직장에 소속을 두고 일하는 'N잡' 실험을 해봤다

조언을 구할 만한 어른들은 걱정을 먼저 했다.

Nora Carol Photography via Getty Images

2017년 3월부터 1년 1개월 정도, 두개의 직장에 소속을 두고 일하는 ‘엔(N)잡’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하나의 직장이 개인을 대변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고,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서 좀 더 주도성을 가지고 일을 설계해보고 싶었다.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하는 투잡, 스리잡이 아니라 ‘내 일을 내가 구성한다’는 의미로 N이라는 기호를 붙여 나를 설명하는 이름을 만들었다. 다행히 함께 할 수 있는 두개의 회사를 만나 일주일을 반으로 나누어 일할 수 있었다. 두 군데에 소속을 두고 4대 보험 및 제반 사항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워, 한 직장에서는 정직원으로, 다른 직장에서는 계약직으로 일했다.

해보고 싶어 시작했지만, 이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 없었던 일의 형태였기 때문에 계약에서부터 일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 휴가와 복지까지 스스로 알아보고 챙겨야 했다. 관련해서 물어볼 수 있는 이들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배가 없었다. 조언을 구할 만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걱정을 먼저 했다. 안정적이지 않고, 누군가에겐 커리어로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이제는 하나의 직장에서 끈기있게 일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들었다.

오히려 당시 내게 도움을 준 것은 나와 비슷한 연차이거나 같은 고민을 하며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었다. 나의 상황을 걱정하고, 이게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판단하기보다는 이 실험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에 머리를 모아주었다. 시스템을 잘 만들지 않으면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엔잡러’임을 지적하며 일하는 환경을 함께 고민해준 것도 이들이었다. 이들 덕분에 엔잡러로 일을 잘할 수 있었고, 엔잡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나이나 일반적인 경험, 지위로 보면 나를 걱정했던 어른들이 선배다. 하지만 엔잡을 하는 데서는 동료들이 선배로 느껴졌다. 이들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줄 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한 답을 함께 찾는다는 느낌으로 손을 보태주었다. 이건 1인가구가 살기 좋은 동네를 찾을 때도, 부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상사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할 때도, 분절된 일의 경험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가는 노력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감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동료이자 선배가 되어주고 있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은 청년들만은 아닌 듯하다. 총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지, 정부 기관이든, 당이든, 청년들의 마음과 생각을 모으겠다는 취지로 목소리를 듣겠다고 한다. 플랫폼을 마련하거나 간담회를 여는 등 목소리를 듣기 위해 쏟는 자원과 에너지 역시 만만찮다. 하지만 이미 오랜 기간 목소리를 들어오지 않았던가. 이 정도 들었으면 정책과 시스템을 직접 만들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혹자는 정책 입안에 관한 전문성이 청년에게 없고, 그 전문성을 가진 선배들이 대신 해주는 것이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대신 할 수 있는 것일까. 전문성이 걱정이라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기회는 정책 입안자의 자리에, 의사 결정권자의 자리에 더 많은 청년들이 설 때 가능해진다. 이제는 ‘청년을 위한’ 정책 대신에 ‘청년에 의한’ 정책이 필요하다. 스스로 할 기회를 달라. 이것이 진짜 목소리를 듣는 길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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